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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숨 Dec 30. 2023

프랑스에 살며 내 몸맘 지키기

신년 새해 목표를 새우는 것은 내 일이 아니지만, 올해 2024년은 그래도 좀 달라지고 싶다. 무엇보다 내 몸과 마음을 우선순위로 두고 싶다.


프랑스에 공식적으로 살게 된지도 어느덧 1년이 지났다. 학교에서 나보다 어린 프랑스애들과 같이 있노라면 내 유학생활이 좀 늦은걸까라는 생각에 초조한 마음으로 불안해지기도 했다. 인턴으로 근무한지 어느덧 한달정도 지났고, 적은 월급과 말그대로 열악한 근무환경, 주거환경, 적응되지 않는 프랑스의 추위(한국보다 덜 추운것은 분명하다. 춥지 않다고 느끼고 돌아다니다가 집에오면 꼭 앓아눕는 이상한 추위), 소화 불량, 스트레스, 압박감, 돈, 돈, 돈에 대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나날이다.


나는 씀씀이가 크지 않지만, 내가 사고 싶은것들은 살면서 살자 주의이다. 그러나 현실은 일을 안한지 기간이 오래됨 + 아직 첫 월급 못받음 등으로 인해서 음식, 옷 등 여러가지들을 부실부실하게 먹고 입고 살았다. 괜찮다고 생각하고 다독이며 커피 드링킹을 하고 어젯밤에 결국 탈이나서 새벽에 잠도 못자고 두번이나 토했다. 아침에는 토하니라고 뒤집힌 속 달래기 +  일 연락오는거 받아내지 못하고 쇼파에서 다시 잠들어버림 + 학교에 대한 스트레스등으로 도대체 내가 여기에서 뭘 하나라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었다.


프랑스의 고약한 행정처리때문에 체류증은 마냥 기다리는 중에, 돈없음, 아픔, 나이 먹음, 프랑스에서 크리스마스에 혼자임, 데이트하고 있는 남자랑 싸움아닌 싸움등의 콜라보로 인해 결국 병났다고 봐야겠다. 이렇게 힘들다가 문득 한국 돌아갈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예전보단 덜 하지만... 그러다가 한국에서의 내 삶도 별반 다를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그냥 여기에 있고 싶은것 같다. 그냥 한국 생각, 한국과의 비교를 아예 안하려고 한다. 돌아가버린다... 이런 생각. 한국에선 상황이 더 나을텐데, 절대 이렇지 않을텐데 이런 생각을 하면 끝이 없다. 


현재 프랑스에서는 내가 잘하고 있는지, 내가 사람들과의 관계는 잘 쌓고 있는지 이런 것들이 다 모두 희미하게만 느껴진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지가 않으니까. 지금은 학생의 신분이고 배우는 입장이긴 하지만, 과연 더 좋아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들이 불현듯 자주 들곤 한다. 이렇게 하나씩 글로 적어 보니 내 스스로가 지난 한달간 스트레스 속에 허덕였구나 싶다. 좋은 점도 있을테인데. 


이제 조금 더 좋은 점에 집중해볼까. 엄마에게 SOS를 쳤다. 옷과 신발살 돈도 없어서 결국 좀 보내달라고 하기로 했다. 옷장에 있는 옷, 신발장에 있는 신발들, 올리브영에서 구매한 선크림들, 휴대폰 케이스 등 귀엽고 예쁜 한국 물건들을 주문하였고 엄마가 사진찍어 보내주며 이거 맞냐고 하신다. 우리엄마 든든하다. 귀찮을텐데 아무런 내색없이 날 위해 애써주신다.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들, 가족들에게 받는 사랑들이 너무 그립지만 이곳에서 내가 나를 더 챙기고 보살펴주자. 지금 겪는 내 마음의 불안과 우울들은 지나갈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그에 대한 나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진 모르겠다. 학교에서 만났고 같이 공부를 하며 친해졌다. 처음엔 정말 아무런 생각도 없이 친구처럼 지냈다가, 어느 순간 그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키 크고, 긴 머리에, 말 없고, 나에게는 잘 웃는 그 남자. 나에게 마음이 있는건가 싶다가도 늘 아무런 연락도 없어 나도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계속 학교에서 내 옆자리에 묵묵히 앉아있고, 배고프다고 하면 같이 레스토랑에 가자고 하거나 빵집에 가자고 하며 늘 나를 따라다니는 이 남자에게 마음이 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느날, 둘이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고 레스토랑에서 이야기를 하며 자연스럽게 서로 손을 잡게 되었다. 너무 이상했다. 그와 손을 잡고 레스토랑에서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는게. 자기는 부끄러움을 많이 타며 말수가 없다고 했다. 메시지 하는것을 싫어하며 알림을 다 꺼놨으니 알림이 있는 휴대폰 메시지가 낫겠다며 내게 연락처를 물어왔다. 그렇게 내 마음에 어떤 남자애가 들어왔다. 나보다 4살이나 어린 남자. 그러나 어리다고 느껴지지 않는 이 남자의 수줍은 미소가 너무 좋다.


프랑스인들과의 수다가 너무 좋다. 한국에서 살다가 외국에 처음 나갔을 땐, 외국인들의 끝없는 수다가 너무 힘들었다. 다른 나라 언어인데다가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문화는 침묵이 금이라고 여겨지는 문화에서 자고 나란 내게는 익숙해지지 않았다. 말을 아끼라고, 조신해지라고 배우며 자란 내가 이젠 수다 그 자체를 너무 즐기고 있다. 꼭 만나는 사람들의 삶을 자세히 알지 않더라도, 그들과 많은 것들을 공유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중 몇몇 마음 맞는 친구들과 여러가지 생각들을 교환하기도 한다. 코딩에 관한 것일때도있고, 프랑스 특유의 문화 - 시간을 들이는 문화, 한국에서의 삶 이런 여러가지 들에 대해 의논하고 타인을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그냥 그 수다자체를 즐기게 되었다. 가끔 수다가 너무 길어지고 지루해질때가 있는데, 이제는 스킬이 생겨 아 나는 프랑스어 수업을 듣는다 이렇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려고 한다. 외국어로 말하면 얼마나 진이 빠지는지 ! 


한식당에 오랜만에 한국인 친구들과 같다가 옆자리 테이블의 프랑스인 가족(할머니-어머니-아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한국말을 배우신다며 우리에게 말을 걸어 왔고 마침 42를 고려하고 있는 아들, 한국말을 공부고 BTS를 좋아하는 어머니, 페미니즘에 대해 엄청나게 흥미로운 이론을 제시하시는 할머니들을 보며 정말 세대를 아우르며 프랑스인들과는 수다가 가능하다는 것을 배웠다. 한참 어린 한국인들과 얘기를 함에도 절대 구식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세련된 사고방식과 유머가 너무 인상 깊었다. 가끔씩, 내가 나이가 한참 어림에도 마음을 닫고 있음을 느낀다. 내 스스로를 가두는 것은 나라는 사람인것같다. 학교에서 어린애들과 비교하며 나 스스로 나이 먹었다고 나를 깎아내렸으니 흑흑 ㅠ. 아무튼 헤어지기 너무 아쉬워 그들과 번호교환을 했고 언젠가 다시 볼 수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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