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뒤흔든 찰나의 기적들
20화 , 내가 남편이고, 아버지이고, 자식의 삶을 살 수 없는 이유
우리는 흔히 남편, 아버지, 자식이라는 여러 이름을 동시에 지니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 많은 이름 속에서 ‘나 자신’으로 살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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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라는 이름
나는 남편이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렸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의 기대와 믿음을 짊어진다.
남편은 늘 든든해야 하고, 가정의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누군가의 배우자로서, 삶의 동반자로서, 늘 안정감을 보여야 한다는 압박은 크다.
그러나 사실 나는 늘 불안하다.
내가 쓰러지면 이 집은 무너지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매일같이 따라다닌다.
아무리 웃고 있어도 마음속에는 “혹시 이게 마지막 힘은 아닐까?”라는 불안이 그림자처럼 깔려 있다.
남편이기 때문에 더 강해야 한다는 사회의 시선은,
내 약함을 감추고 또 감추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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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라는 이름
나는 아버지다.
아이는 나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나의 행동을 통해 어른의 모습을 그려간다.
아이 앞에서만큼은 흔들리지 않는 나무이고 싶다.
어떤 어려움에도 꿋꿋하게 서서 바람을 막아주는 그런 존재 말이다.
하지만 정작 나는 여전히 서툴고 불안한 사람일 뿐이다.
내 길조차 제대로 찾지 못한 채 하루를 버텨내며,
때로는 내 아이보다 더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흔들린다.
아이에게 “괜찮다”라고 말하지만, 내 안에서는 “정말 괜찮을까”라는 불안이 자라난다.
아버지라는 이름은 때로 든든한 울타리이지만,
또 다른 때에는 감옥처럼 느껴진다.
감정을 감추고, 약함을 숨기고, 늘 ‘모범’만 보여야 하는 가면을 씌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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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라는 이름
그러나 나는 동시에 누군가의 자식이다.
부모 앞에서는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기대고 싶고,
아무 조건 없이 위로받고 싶은 때가 있다.
하지만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부모 앞에서도 “괜찮다”는 가면을 쓴다.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
“든든한 아들”이라는 역할을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내 안의 자식은 점점 사라지고,
책임을 짊어진 ‘가장’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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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식의 삶을 살 수 없는 이유
남편과 아버지, 그리고 자식이라는 이름.
그 모든 역할이 내게 씌워진 순간부터
나는 ‘내 안의 아이’를 잃어버렸다.
책임은 무겁고, 기대는 크고, 사회의 눈은 차갑다.
“남자는 울면 안 된다.”
“아버지는 무너지면 안 된다.”
“남편은 흔들리면 안 된다.”
이 무언의 규칙들이 내 존재를 조여왔다.
어릴 적 나는 꿈이 많았다.
바람만 스쳐도 웃었고, 작은 성취에도 설렘을 느꼈다.
그러나 지금은 ‘가족을 위해서’라는 이름으로 내 꿈을 미뤘다.
내가 남편이고, 아버지이면서 동시에 자식의 삶을 살 수 없는 이유는,
내 안의 아이를 지키기보다 먼저 ‘책임’이라는 옷을 입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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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 내 안의 아이를 지켜야 한다
하지만 이제야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남편과 아버지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내 안의 자식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내 안의 아이가 살아 있어야만
가족에게도 살아 있는 에너지를 줄 수 있다.
책임을 다하는 것과 나 자신을 버리는 것은 다르다.
나는 여전히 부모님의 아들이고,
누군가의 남편이며, 아이에게는 인간적인 아버지다.
때로는 힘들다고 말할 수도 있고,
가끔은 기대고 쉬어갈 수도 있다
무겁게 짊어졌던 인생의 짐도, 시간이 지나면 찰나의 기적이 된다.
— 그때는 고통이었지만, 돌아보면 모두 선물이었다.
인생의 짐이라 여겼던 순간이, 알고 보면 나를 일으킨 찰나의 기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