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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비 오는 날의 교훈

내 삶을 뒤흔든 찰나의 기적들

by 수미소

19화. 비 오는 날의 교훈


나는 오래전부터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

빗방울이 지붕 위를 두드리며 내려앉을 때,


어릴 적 시골집 마루에 앉아 바라보던 풍경이 늘 떠오른다.


마당 가득 고인 빗물은 작은 연못처럼 반짝였고, 길너머 논밭에서는 벼들이 새파랗게 익어가며 출렁였다.


빗줄기와 바람이 만나면 논의 벼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흔들렸다. 그 모습은 어린 나에게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왔고, 지금의 나에게는 삶의 교훈으로 다가온다.

논에서 자라던 벼들이 바람이 불면 바람을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삶도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바람은 우리가 막을 수 없는 세상의 변화이고, 벼는 그 속에서 꺾이지 않고 버텨야 하는 우리 자신이다.


억지로 버티려다 꺾이는 것보다는, 잠시 고개를 숙이며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 오히려 더 지혜로운 길일지 모른다.


나는 그 사실을 늦게야 깨닫고, 이제는 삶의 바람 앞에서 예전처럼 조급해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시절의 풍경은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다. 집 앞은 재개발로 인해 삽시간에 변해버렸고, 넓던 들녘은 아파트와 도로로 메워졌다. 빗줄기와 함께 출렁이던 벼들의 물결은 사라졌다.


그럼에도 비가 오는 날이면 나는 여전히 그 장면을 떠올린다. 눈앞의 풍경은 달라졌지만, 가슴속 풍경은 여전히 살아 있다.


빗소리가 들려오면 어릴 적 시골 마당에서 본 논의 푸르름과 바람 따라 흔들리던 벼들이 상징처럼 내 마음에 피어난다.

비 오는 날의 추억은 내 삶을 지탱해준 하나의 의식 같은 것이 되었다.


어떤 날은 그리움으로, 어떤 날은 교훈으로, 또 어떤 날은 위로로 다가온다.


삶은 늘 원하는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원치 않는 변화가 닥치고, 예기치 못한 바람이 불어도 결국 흘러가야 한다.


그때마다 나는 시골 마당에서 바라보던 그 풍경을 떠올린다. 바람을 따라 흔들리던 벼들, 그리고 그 위에 내리던 빗방울. 그것이 내 삶을 지켜내는 지혜를 가르쳐주었다.

어쩌면 그 시절 내가 본 것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삶의 비밀이었을지도 모른다.


비 오는 날마다 다시 꺼내 보는 그 기억은 나를 단단하게 붙잡아주고, 동시에 부드럽게 풀어준다.


나는 그 덕분에 삶을 조금은 유연하게 대할 수 있게 되었고, 시련 속에서도 따뜻함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기적은 멀리 있지 않았다. 그것은 늘 곁에 있었다.”

당신에게도 비 오는 날 떠올리면 따뜻해지는 기억이 있나요?
그 기억은 지금의 삶에 어떤 힘이 되어주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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