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뒤흔든 찰나의 기적들》 18화
땅을 일군 대장부의 삶, 어머니
내 어린 시절, 아버지는 언제나 밖에서는 호인으로 많이 배우시고 인품있는 선비의 모습이었다.
마을 어른들과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체면과 격식을 지키는 모습은 내게 무게감 있게 다가왔다.
그러나 집 안으로 들어오면 현실은 달랐다. 밭일과 살림의 무게는 대부분 어머니의 몫이었다.
새벽이면 아직 별빛이 남아 있는 들녘으로 어머니의 발걸음이 향했다.
허리춤에 낫을 차고, 삿갓도 없이 맨머리로 땀을 흘리며 밭고랑을 누비셨다.
해가 뜨고 저물 때까지 땅을 일구고 풀을 뽑으며 흙냄새 속에서 하루를 버텨냈다.
굽은 허리는 조금도 펴지지 않았지만, 자식들 밥상만큼은 언제나 든든하게 차려내셨다.
나는 종종 아버지와 어머니를 겹쳐 떠올린다. 아버지는 검은 삿갓을 쓰고 사람들 앞에서 체면을 세웠고, 어머니는 땀에 젖은 저고리를 입고 묵묵히 밭을 지켰다.
겉으로는 아버지가 집안의 기둥처럼 보였지만, 실은 가정을 먹여 살린 진짜 기둥은 어머니였다.
어머니의 손바닥은 언제나 굳은살로 단단했다.
비에 젖어 힘없이 쓰러진 벼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장마철 썩어가는 고랑을 끝내 버티며 지켜낸 한 줌의 곡식이 자식들의 밥이 되었다.
흉년에도, 가뭄에도, 어머니는 한 번도 밥그릇을 비운 적이 없었다. 그것이야말로 기적이었고, 그 기적은 어머니의 등에서 흘러내린 땀방울로 빚어진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아버지가 지켜낸 것은 체면이었고, 어머니가 지켜낸 것은 생명이었다.
검은 삿갓 아래서 체통을 세우던 아버지보다, 거친 바람과 흙먼지 속에서 웃음을 잃지 않던 어머니가 진짜 대장부였다.
세월이 지나 어머니의 몸은 더 굽었고, 손끝은 마치 갈라진 논바닥처럼 메말랐다.
그러나 그 손으로 건네주신 밥 한 그릇에는 언제나 따뜻함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 밥을 먹고 자랐고, 오늘의 내가 되었다.
빈 밭머리에 서서 어머니의 굽은 등을 떠올릴 때마다, 내 삶 속의 기적은 멀리 있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검은 삿갓을 대신해 대장부의 자리를 묵묵히 지켜낸 어머니였다.
그리고 그 기적은 여전히 내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기적은 멀리 있지 않았다. 그것은 늘 곁에 있었다.”
“내 삶을 바꾼 것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사소한 순간이었다.”
“당신의 삶을 바꾼 찰나의 순간은 언제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