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35세 무직. 그리고 일에 대한 마음
삶 전체를 통틀어의 기간을 80년이라 가정했을 때 사람이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사건은 일하는 시간이라는 영국 신문사의 기사가 있었다. 처음 이 내용을 접했을 때 일하는 시간은 26년, 잠자는 시간은 25년으로 잠자는 시간보다 일하는 시간이 더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놀라웠다. 모두에게 해당하지는 않겠지만 일반적으로 일이라는 게 사람들의 삶의 시간 대부분을 투입하는 사건인 것이다. 그러니 일은 모든 사람에게 정말 중요한 삶의 일부다. 일이 곧 삶 전체를 대변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하는 일만큼 스스로를 잘 설명할 수 있는 수단도 드물다. 그러니 언제 일하는지, 어디서 일하는지, 누구와 일하는지, 어떻게 일하는지, 왜 일하는지 요목조목 따져서 그게 자신과 잘 맞는지 맞혀갈 여지가 있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할 중대 사건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애써 고민하고 노력해서 직업을 구하고도, 일을 하다 보면 만족스럽지 않은 순간들도 종종 찾아오게 되는 것이다. 그런 때 왜 일하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쉽사리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문득 "다른 사람들은 왜 일을 할까? 왜 그 직업을 가졌을까?" 궁금증이 들어 한번 찾아보게 된다.
대학내일에서 발표한 2022년 자료 중 '현재 직업을 선택하게 된 이유'의 순위는 이와 같다.
1. 전공 또는 공부한 분야라서(30.3%)
2. 쉽게 취업할 수 있는 분야라서(25.6%)
3. 이 직업 외에 선택지가 없어서(23.5%)
4. 특별히 잘할 수 있는 분야라서(22.0%)
5. 흥미·적성에 잘 맞아서(20.7%)
6. 업무 강도가 높지 않아서(20.2%)
7. 돈을 많이 벌 수 있어서(14.6%)
앞선 순위의 이유가 내게도 곧 잘 적용되는 것 같다. 교육학을 전공해 기업교육컨설팅 회사에 다녔다. 다른 직업으로의 선택지가 크게 다양하지는 않았고 무엇보다 교육이라는 분야가 내게 잘 맞았다. 다만 업무 강도는 상당히 높았으며 돈도 박봉이었지만 그럼에도 직업적 만족도는 높았다. 그렇지만 직업의 만족이, 내 전공이라는 이유가 내 일의 이유를 온전히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가수이자 영화감독인 이랑은 돈, 명예, 재미 중에 둘을 주는 일을 한다고 하는데 재미를 제외한 돈과 명예는 내게 그렇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굳이 꼽자면 "마음이 움직이는가?"가 내 일의 이유였다. 심리학에서는 마음의 움직임을 '동기'로 표현하는데 결국 나는 일이 삶 자체에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어느 정도 막연한 개념으로 일의 이유를 정의하다가 내 마음을 잘 정리해 준 동기부여이론을 발견했다. 바로 Ryan &Deci의 자기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이다. 최근 교육심리학 분야의 가장 떠오르고 있는 동기부여 이론인데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의 핵심을 축약하자면 자율성, 유능성, 관계성이 충분히 확보될 때 일의 동기가 오른다고 하는 것이다.
돌아보니 한창 일 그 자체를 즐겁게 하던 시기에 위의 요소들이 아주 잘 들어맞았었다. 코로나 초창기 모든 산업이 그랬지만, 내가 있던 교육시장에도 엄청난 타격이 있었다. 당연하게 대면으로 진행하던 수많은 기업교육들이 일순 멈춤을 경험하고 모두 패닉에 빠져있었다. 회사는 긴급회의에 들어갔고 대응을 위해 온라인 실시간 강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당시에 나는 일이 한창 손에 익어가던 시점이기도 했고 인터넷 방송 시스템에 대해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던 터라 순식간에 온라인 교육 담당자로 배정받게 되었다. 그때 팀장님과 팀원들의 신뢰를 등에 업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주도해서 하다 보니 힘든 줄도 모르고 거의 한 달을 야근하며 과정을 준비했었다. 다른 업체에 비해 발 빠른 대안 제시와 실제 적용사례등을 공유하자 고객사들은 크게 만족했고 이후 교육과정으로 많은 연계가 이뤄지는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 당시를 떠올려보면 이론에서 말하는 자율성, 유능성, 관계성을 어느 하나 빠짐없이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