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주간 제주도에서 부지런히 읽고 쓰고, 운동했다. 사실 거의 매일이 비슷한 일상이었다. 여덟 시쯤 일어나 간단히 세수하고 스킨 로션과 선크림을 발랐다. 아는 사람을 마주칠 일도 없으니 면도는 패스. 바삭하게 구운 토스트에 딸기잼과 버터를 발라 디카페인 커피와 함께 먹었다. 에코백에 노트북과 아이패드, 물병을 챙겨 도서관으로 향했다. 묵고 있던 친동생 집 근처에는 항상 공유 자전거가 있어 어려움 없이 자전거를 타고 우당도서관으로 갔다.
도서관은 제주시내 근처인 사라오름 옆에 있어 접근성뿐 아니라 독립성도 좋다. 가는 길의 상쾌한 풍경도 큰 장점이다. 다만 오름 근처라 오르막길이 만만치 않지만, 전기 자전거 덕분에 경치를 음미하며 편하게 도착할 수 있다. 도착하면 곧장 3층 4열람실로 간다. 공간도 넓고 한라산 뷰가 훌륭해서 매번 비슷한 자리를 고집한다. 자리를 잡고 아이패드로 성경 말씀을 묵상한 뒤 일기를 쓰면,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난다. 그 후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요즘은 ‘일’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대단한 실무 기술이나 노하우를 전수하는 건 아니고 그저 푸념을 정리하는 중이다. 업무 속에서 느꼈던 배움과 열정, 피로나 회의감을 들여다보며 진짜 내가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다시 고민하는 중이다.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었고, 무엇을 위해 다시 일해야 하는지를 구구절절 적어보며 내 안의 열정이 여전히 살아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글쓰기에 몰두하다 보면 어느새 배가고파온다. 목표한 분량을 채우고 집으로 돌아가 동생과 함께 점심을 먹는다. 동생의 요리 실력은 엄마를 닮았는지 꽤 훌륭하다.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나면, 바로 설거지를 하고 잠시 숨을 돌리며 오후 일정을 조율한다. 동생이 일을 쉬거나 별다른 약속이 없다하면, 내가 거의 매일 바다에 가자고 꼬드긴다. 혼자 가도 좋지만 함께하는 게 더 재밌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수영바지로 갈아입고, 윗옷은 나시나 남방으로 가볍게 걸친다. 선크림을 꼼꼼히 바르고 모자와 선글라스를 착용하면 나갈 준비는 끝난다. 가장 중요한 오리발과 스노클 세트를 챙겨 집을 나선다. 30분간 버스를 타고, 10분을 걸어가면 잘 알려지지 않아 인적이 드문 바다에 도착한다. 이미 걸어가며 땀을 충분히 흘렸으니 준비운동은 생략한다. 윗옷을 벗어 던지고 바로 바다로 뛰어든다.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헤엄쳐 가면 어떤 물고기가 있는지 익숙해질 정도로 자주 찾아 온 바다다. 물속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나고, 때로는 저녁 노을이 물결에 일렁일 때까지 바다에 몸을 맡긴다.
수영을 하지 않는 오후에는 직장을 알아보거나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마치 긴 방학의 끝을 준비하듯, 밀린 일기를 쓰는 마음으로 일에 대한 글을 쏟아냈다. 다시 직장생활을 준비하는 마음을 다잡으려 책으로 엮을만큼 글을 써내려야 하는 피곤한 삶이다. 그럼에도 이런 내게 차츰 익숙해져 삶을 점점 더 잘 활용하고 있다. 사람들이 흔히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여전히 스스로를 이해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는 말에 있다고 믿는다. 말이라는 매개 없이는 찰나에 스치는 오만가지 생각이 유형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백 가지 생각이 떠오르면 열 마디는 말하고, 열마디는 말해야 한 마디 글이 나온다. 그래서 요즘은 ‘일’에 대한 내 마음을 여러 마디로 차곡차곡 쌓아 모쪼록 좀 더 오래,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저녁에는 바닷가를 끼고 있는 탑동광장을 산책하거나 달렸다. 때를 잘 맞추면 아름다운 저녁 노을과 함께 달릴 수 있었다. 부모님과 산책을 나온 아이들, 무리지어 농구하고 있는 소년들, 저마다의 솜씨를 뽐내는 버스커들과 함께 달리고 나면 몸은 땀에 흥건해 지지만 마음은 그렇게 상쾌하다. 집에 돌아와 하루를 정리하며 영화나 영상을 보다 잠이 오면 자기 전에 하루에 대한 감사기도를 드린다. 이 후 누워서 이불을 턱까지 끌어당겨 안으면 행복감이 온 몸을 포근히 감싼다. 단출한 일상이 나를 살린다. 읽고, 쓰고, 운동하고, 일하고, 이야기 나누는 소박한 습관 가운데 나는 나의 취향을 더 더 알아간다. 그렇게 내 삶을 지탱해주는 굳건한 땅을 또 한 뼘 넓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