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의 커피타임
매주 금요일 아침 11시.
'Relish'라는 카페 앞을 서성이며 그녀를 기다린다. 저만치서 뚜벅뚜벅 걸어오는 서로의 실루엣이 보이면 반가워 손을 흔들고 이내 가볍게 포옹하며
"Good morning! How are you?"
"Good!"
마치 영어 교과서의 첫 챕터 같지만 진심이 담뿍 담긴 아일랜드식 아침인사를 나눈다. 하루의 첫 모닝커피가 무척 고픈 우리는 금단현상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손을 벌벌 떠는 시늉을 하며 늘 같은 메뉴를 주문한다. 그녀는 진한 아메리카노에 브라운 슬라이스 토스트 두 장을, 나 역시 그녀와 같은 토스트에 부드러운 카페라테를.
주문한 토스트가 나오면 그녀의 손이 바빠진다. 빵이 식기 전에 재빨리 나이프로 버터를 떠서 토스트 위에 싹싹 바르는 그 손놀림은 마치 어릴 적부터 내가 늘 해온 숟가락과 젓가락질처럼 익숙하고도 야무지다. 한국에서는 하얀 식빵에 잼만 발라서 대충 먹기만 했던 내가 갓 구운 바삭한 토스트와 아일랜드 버터맛을 제대로 알아버린 것도 그녀 덕분이다. 진한 커피 향을 맡으며 모락모락 김이 나는 빵 위에 얹어놓은 버터가 스르르 녹기를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의 행복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빵을 먹기 전 그녀는 부스럭부스럭 가방에서 작은 플라스틱 통 하나를 꺼낸다. 안에는 꿀 같기도 하고 엿기름 같기도 한 까만 무언가가 담겨있다.
"너도 먹어 볼래? 이건 마마이트(Marmite)라는 스프레드야. 처음엔 아주 조금만 시도해보는 게 좋을 거야. 먹어본 사람들의 호불호가 꽤 강하니까."
새로운 음식을 두려워하는 나는 소심하게 조금만 떠서 빵 위에 얇게 발라본다. 짭조름하고도 씁쓰름한 맛과 고소한 버터가 어우러지는 묘한 풍미를 음미하는 사이, 그녀는 이 잼이 맥주를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스트로 만들어졌다는 친절한 설명을 덧붙여 준다. 마치 우리나라로 치면 청국장이나 된장 같달까.
빵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는 동안에는 되도록 얘기를 하지 않고, 혹시 말을 꺼내야 할 때는 손가락을 들고 내게 미안하다며 음식물을 꿀꺽 삼키고 난 후 말문을 여는 똑 부러지는 매너와, 커피를 절반 이상 마시고 나면 잔에 따뜻한 물을 부어 연한 커피를 마지막까지 즐기는 모습이 이제는 익숙하다. 그녀와 그렇게 한두 시간 커피를 즐기며 떠들다 보면 나도 모르게 볼이 발갛게 상기되어 들뜨곤 한다.
헬렌과 내가 금요일 아침마다 모닝커피를 함께한지도 어느새 1년이 지났다. 전형적인 아이리시 엑센트에 활달한 그녀는 나의 영어 선생님이자 친구이다. 아일랜드에 온 후 영어가 그다지 늘지 않아 고민하고 있을 때 지인이 헬렌과의 만남을 주선해주었다. 처음 그녀를 만나던 날 어찌나 떨렸던지 나는 계속 손으로 입을 가리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한국사람들은 대부분 나처럼 부끄러움이 많다며 이해해주던 그녀는 헤어지면서 내게 물었다.
"우리 다음 주에도 만날까요?"
"좋아요!"
그 대답 이후 우리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금요일마다 만나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필요한 것은 오로지 커피 한 잔과 토스트 두 장뿐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헬렌은 나 외에도 꽤 많은 외국인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주기적으로 여러 명과 함께 만나는 클래스도 있고 특별히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이 있으면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서 도와주기도 하였다. 따로 영어를 전공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저 자신이 좋아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무료로 가르쳐주고 있었다.
나보다 적어도 열다섯 이상은 더 많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와 얘기를 나누다 보면 나이에 대한 벽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일랜드에서는 나이가 적건 많건 누구에게나 상대의 이름을 부르며 대화를 하다 보니 한국에서보다 더 폭넓고 친근하게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롤링 스톤즈'가 아일랜드에 왔을 때
"꽤 나이 많은 사람들 아닌가요?"하고 물었다가 헬렌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게
"old? old!?"
하고 되물으며 어쩜 자신에게 그럴 수 있냐는 듯 장난으로 눈을 흘겼을 때 말고는 우리 사이에 세대차이를 느끼는 일은 많지 않았다.
물론 우리의 대화는 그다지 원활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내가 잘하는 한국 음식을 만드는 방법이나, 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 과정, 혹은 한국과 아일랜드의 다른 점 등의 주제를 미리 정해주었다. 그러면 나는 혼자서 미리 이야깃거리를 써서 읽어본 후 약속 장소로 향했지만 막상 얼굴을 마주하면 머릿속이 하얘지고 기억이 나지 않아 버벅대기 일수였다. 한동안은 서로의 발음이 귀에 익지 않아 다시 되묻기도 하고 단어를 노트에 쓰고 확인하며 대화를 이어가느라 바빴다. 아무리 굴려도 굴려지지 않는 굳은 혀와, 오늘 열 개의 새로운 단어를 알아도 내일이 되면 열다섯 개를 까먹는 퇴화하는 내 머리가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 없었다.
그렇게 좌충우돌의 시간이 서너 달 흘렀을까, 언제부턴가 우리는 특별한 주제 없이 만나고 있었다. 지난 한 주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자연스레 서로 안부를 묻고, 휴일에 여행이라도 다녀온 후에는 사진을 보여주며 밀린 여행담을 늘어놓기도 했다. 재미있게 본 영화 이야기나, 한국의 새로운 뉴스, 특히 그녀는 남북한 관계에 대한 기사나 BTS와 같은 한국의 유명 연예인 소식이 실린 신문이 있으면 나에게 가져와서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서로 만나지 못하게 되면 문자와 사진으로 서로의 안부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사이 내 영어실력이 일취월장한 것은 아니었다. 평소에 영어보다 한국어를 쓰는 일이 많은 나는 매주 리셋되는 디바이스처럼 한 주가 지나고 나면 다시 제자리에 돌아오곤 했지만 그러는 중에도 마음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이야기할 때 나는 더 이상 손으로 입을 가리지 않았고, 발음을 틀리거나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도 전만큼 얼굴을 붉히며 창피하지 않았다.
어떤 때는 나보다 헬렌이 더 얘기를 많이 하는 날도 있었다. 한참 신이 나서 떠들던 헬렌은 갑자기 손으로 자기 입을 가리키며 "Oh, Shut up Helen!"하고 소리쳐서 둘이 깔깔 웃기도 했다. 덕분에 리스닝 실력이 좋아지고 있다며 그녀에게 감사를 표했지만 솔직히 버벅대는 내 얘기보다 그녀의 끝없는 수다를 듣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가끔씩은 매주 만나던 카페를 벗어나 새로운 장소로 데이트를 떠나기도 했다. 차가 없는 나를 태우고 헬렌은 아일랜드의 역사와 연관 있는 장소로 안내했다. 오랜 시간 영국의 지배를 받아온 아일랜드와 일본의 식민지였고 전쟁을 겪었던 한국은 닮은 점이 참 많아서 알면 알수록 서로에 대한 공감 또한 깊어졌다.
어떤 날은 나의 아이들을 위해 집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쿠키를 들고 오기도 하고, 집에서 키우던 알로에 모종을 우유팩에 심어서 전해주기도 한 그녀는 정도 많고 발도 넓어서 언제나 스케줄이 꽉 차 있었다. 아픈 친구들이나 연세가 많아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방문하기도 하고, 그녀가 속해있는 '퀘이커' 모임에서 진행하는 평화와 관련된 시위나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평생을 전문직으로 일하다가 은퇴한 후 오히려 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헬렌을 알면 알아갈수록 나는 그녀의 삶을 동경하게 되었다.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여덟 명의 조카들을 자식처럼 아끼며 자랑하는 모습은 여느 할머니들과 다르지 않으면서도, 늘 누군가를 위한 시간과 체력을 따로 예비해두는 넉넉함과 지혜를 무엇보다 닮고 싶었다.
더블린에 온 후 매일 하는 기도가 있었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단 한 사람이라도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좋은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사랑을 배울 수 있고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따뜻한 사람이 곁에 있게 해달라고 늘 마음으로 빌었다. 되돌아보니 감사하게도 필요할 때마다 우리에게는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고 속상하거나 답답할 때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친구들이 이곳에서도 하나둘씩 곁에 늘어났다.
하루하루 생활하며 별 거 아닌 소소한 일이지만 무언가 얘기하고 싶은 것들이 생길 때마다 이제 나는 속으로 헬렌과의 대화를 준비한다. 한국에서 슬픈 소식이 들려오거나, 이곳을 찾아온 가족, 친구들이 다시 떠난 후 마음이 아팠을 때, 그리고 가끔씩 아이들이 학교에 적응하기 힘들어할 때에도 헬렌을 종종 떠올린다.
그녀에게 문자를 보내고, 얼굴을 마주하고 서툰 영어로 내 속내를 털어놓다 보면 어느새 내 얘기를 듣는 그녀의 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그렇게 말없이 나를 토닥토닥 위로하던 따뜻한 표정과 손길을 잊을 수 없다. 그녀 역시 가족이나 친구에게 생긴 슬픈 일이나 개인적인 가족사를 허심탄회하게 내게 얘기해줄 때면 나 또한 뭔지 모를 울컥함이 올라와 눈가가 촉촉해지곤 한다. 나의 언어 자체는 겉핥기처럼 여전히 주변을 맴도는 듯했지만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으로 우리의 마음은 어느새 물들어가고 있었다.
살아보니 함께 웃을 수 있는 사이도 특별하지만, 함께 울어주는 사이는 더욱 각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같이 흘렸던 따뜻한 눈물과 맞잡았던 손의 온기는 시간이 흘러도 투박한 뚝배기처럼 오래오래 은근히 남는 법이다.
더블린으로 날아올 때 우리 가족에게 주어진 시간은 5년이었다. 이국에서의 삶이 마냥 낯설어서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의논할 일이 있으면 누구를 찾아야 하나 고민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마치 반환점을 돌듯 절반 정도를 지나고 나니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이별의 순간을 가끔 상상하게 된다. 그것이 결국 현실로 다가와 한 사람, 한 사람과 손을 잡고 포옹하며 작별인사를 나누어야 할 때 가장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날 것 같은 사람은 누구일까, 어느새 그런 것들을 생각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고맙고 친절했던 친구와 이웃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그들 중 환하게 웃고 있는 헬렌의 모습 역시 또렷하게 보이다가 이내 두 눈 사이로 흐려진다. 그녀와 마주 앉아 함께 나누었던 진한 커피와 그 온기에 마음까지 따뜻하게 데워졌던 시간들은 이다음에 한국에 돌아간 후에도 문득문득 그리울 것 같다.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날들을 떠올리기만 해도 미리부터 마음 한편이 아린 것을 보니, 아일랜드와 이곳의 사람들에게 꽤 많은 정이 들었나 보다.
앞으로 더블린에서 보내야 할 남은 시간은 지금까지 지낸 시간보다 훨씬 더 빨리 흘러갈 것이다.
무언가에 익숙해진다는 건 그런 것이니까.
매일 두발로 밟고 걷는 길목들
타고 다니는 버스와 루아스
얼굴이 마주치면 인사하는 낯익은 얼굴들
어떤 날은 굼뜨게 어떤 날은 바쁘게 걸어가는 구름
곳에 따라 때때로 내 어깨를 두드리는 빗줄기
계절에 따라 피고 지는 아는 얼굴의 꽃들
봄 여름 가을 겨울 언제나 파릇파릇한 우리 동네의 잔디
내 곁을 감싸고 있는 당연한 것들을 조금 더 찬찬히 들여봐야겠다. 떠나온 후에도 충분히 그리울 만큼, 그리울 때마다 또렷이 떠올릴 수 있도록 말이다.
새해에도 매주 금요일이 오면 우리는 만날 것이다. 헬렌을 기다리며 이제는 내가 먼저 마음에 작은 불 하나를 미리 켜 놓는다. 누군가를 위해 내 안에 작은 공간을 비워놓는 일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를 나도 이제 그녀에게 배웠다. 동그란 불빛 에워싼 그 속에서 온기를 주고받는 데는 언어도, 나이도, 시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따뜻한 차 한 잔과 빵 두 조각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