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섬콩 Dec 10. 2018

당신은 비었어요

나에게서 엄마를 빼면 무엇이 남을까, 영화  <툴리>


엄마가 된 후 들었던 말 중에 가장 속상했던 말
"그래서 엄마는 지금 백수인 거야?"

아이의 질문에는 별다른 악의가 없었다. 아마 TV나 유튜브를 통해 '백수'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을 테고, 때마침 별다른 직업이 없어 보이는 엄마가 그 말에 해당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런 아이에게 구구절절 내가 너희를 낳은 후 어떻게 서서히 일을 놓을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엄마는 백수가 아니라 엄연히 '전업주부'라는 것을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아이가 엄마에 대해 나름 판단할 만큼 자라 버린 현실이 너무 와 닿아서 생각에 많아지는 날이었다.


살면서 내가 들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말
"엄마는 요리를 제일 잘하는 것 같아"

솔직히 나는 요리에 재능도 없지만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족을 먹이기 위해, 매일 먹고살기 위해 한두 가지씩 메뉴를 늘리다 보니 그나마 할 줄 아는 것이 요리가 되어버렸다. 그건 정말 내 솜씨가 좋다는 것이 아니라, 이제 할 줄 아는 다른 것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씁쓸한 얘기이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가장 듣기 싫은 말
"이거 내가 한 것도 아닌데 왜 내가 해야 해?"

내가 먹던 것 아냐, 내가 버린 것 아냐, 내가 어지른 거 아냐. 무언가가 필요할 때는 서로 '나도 나도, 내가 내가'를 외치던 녀석들이 뒤돌아서면 자기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얄밉게 발뺌을 하곤 한다.  


그럴 때 내가 아이들에게 하면서도 정말 하기
싫은 구차한 말
"그럼 엄마는 왜 너희들 밥을 하고 너희들 옷을 빨고 너희들 방을 치워줘야 해?"

그러면 아이들은 더없이 의아하게 바라본다. '여느 엄마들도 다 하는 일들인데, 원래 엄마라면 당연히 해주는 거 아니었어?' 아이들의 표정은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아일랜드에 온 후 처음 위로가 되었던 말
"당신은 풀타임 잡이군요."

몸이 좋지 않아 큰 맘을 먹고 병원에 갔을 때 의사는 대뜸 직업이 뭐냐고 물었다. 괜스레 기가 죽어서는 작은 목소리로 '전업주부'라고 대답하자, 그는 '가장 바쁜 full-time job'이라며 나를 이해한다는 듯 웃어주었다. 아주 간단한 그 한 마디에 나는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울컥할 뻔했다.




한국의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툴리>라는 영화에 대한 기사가 링크되어 있었다. 살짝 클릭해보니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 대한 내용이었다. 대충 훑어보고는 얼른 기사를 접어버렸다. 아이를 키우기 시작한 후로 나는 오히려 아이들이 나오는 영화를 잘 보지 못한다. 아이가 아프거나 다치거나 혹여 잘못되거나 하는 내용은 더더욱 엄두를 못 낸다.

육아에 허덕이는 엄마들의 이야기는 너무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힘들 때가 있다. 고달팠던 산후 우울증의 늪에서 이제 겨우 빠져나왔는데, 다시 그 시절을 되새기는 것이 유쾌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영화 <툴리>의 한 장면

<툴리>는 딱 그런 영화였다. 아이 셋을 낳고 퉁퉁 부어버린 여성이 매 순간 정신을 놓아버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소름 끼칠 만큼 실감나게 그려낸 영화.

남들이 아주 완곡한 표현으로 ’기이하다(quirky)’고 부르는, 조금은 다르고 조금은 비정상적인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영화.

평소 같으면 보지 않았을 이 영화를 택한 이유는

'툴리’라는 이름의 야간 보모가 과연 어떻게 그녀를 도와줄지 무척 궁금했기 때문이다.

세 아이의 엄마인 마를로보다 한참은 어려 보이는 툴리는 한밤중에 조용히 찾아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셋째 아이를 능숙하게 돌보며 마를로에게 꿈같은 밤잠을 선물한다. 아이에게 밤중 수유가 필요할 때만 조용히 마를로에게 젖을 물리게 하고 배를 채운 아이를 안고 조용히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아주 괜찮은 방법으로 말이다.

그뿐인가, 밤사이 말끔하게 거실을 청소해놓는가 하면, 미니언즈 컵케이크를 뚝딱 만들어놓기도 한다. 덕분에 마를로는 아이들의 학교 친구들에게 컵케이크를 나누어 주며 자신이 그토록 바랐던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젊고 자유분방한 툴리는 아이까지 똑부러지게 돌보는 현명한 보모의 역할에 충실한다


"나는 당신을 돌보러 왔어요.”

마를로에게 건넨 툴리의 이 말은 헛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툴리를 의심의 눈초리로 주시했지만, 아이를 맡기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된 마를로는 누구에게도 터놓지 않았던 속내를 툴리와 공유하면서 서서히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그녀의 작은 변화들은 나비효과처럼 가족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남편도 아이들도 조금씩 안정감을 찾는 듯 보인다.

그러나 야간 도우미 한 명의 투입으로 그렇게 가족 모두가 힐링을 받고 행복해졌다는 아름다운 결말은 이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어쩌면 판타지라는 것을 알기에, 감독은 좀 더 잔인하면서도 현실에 가까운 반전을 말미에 남겨둔다


이 영화에서 가장 아팠던 말
"You are empty.”

가만히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마를로에게 툴리가 이 말을 건네자 허공을 응시하던 마를로는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이미 아이가 다 먹어버린 오른쪽 젖이 비었다는 의미였지만, 마를로는 자신이 이미 텅 빈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스크린 속 그녀는 누가 봐도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데도 야간 도우미를 보내주겠다는 오빠의 호의를 받아들일지 망설이고, 바로 곁에 있는 남편에게도 직접적인 도움을 별로 요구하지 않는다. 몸이 부서져도 온전히 스스로 해보겠다는 그 고집스러움이 안쓰러우면서도 조금은 수긍이 가는 이유는 나 역시 비슷한 몸부림에 괴로웠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육아가 힘들다는 것을 누구나 알기에 당연한 그것을 하소연하고 드러내는 것이 구차할 때가 있다. 주변을 돌아보면 나만 빼고 출산 후 얼마 되지 않아 다들 감쪽같이 몸매를 회복하는 것만 같고, 아이가 서넛인데도 말끔하고 화사하게 집안을 가꾸는 엄마들이 TV 속에서 웃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절망감에 고개를 떨구게 된다.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는 '좋은 엄마, 괜찮은 아내'라는 허상의 이미지 속에서 자유로운 엄마는 많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더 잘해야 하고, 남만큼은 해야 한다는 압박과 자존심에 스스로를 옭아맬 때도 있다.

어릴 적 세 명의 계모 아래에서 자란 마를로는 누구보다 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욕심이 내면에 자리 잡은 듯 보인다. 그래서 맑은 소녀에서 자유로운 청년기를 지나 충만한 여성으로 성숙해져 가야 할 '나 자신'은 정작 텅 비어 가는지도 모른 채 엄마와 아내라는 역할을 채워가느라 정신이 없다.

어렸을 때는 무얼 하고 싶었냐는 툴리의 물음에 "이뤄지지 않을 꿈이라도 있었다면 세상에 화라도 났을 거야."라고 말하는 마를로는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화가 나 있다. 자신은 처음 자전거를 타보는 소녀처럼 안전하지도 완벽하지도 않은데 비틀거리지 않으려 애를 쓰며 흔들림을 감춰야 하는 그 현실이 너무 무섭고 힘들어서 자신의 상태를 직시하는 대신 그저 눈을 감아버렸다.




8년 전, 둘째 콩이를 낳은 후 점점 살이 빠져야 하는데 이상하게 자꾸만 몸이 붓기 시작했다. 병원에 가보니 갑상선 저하증 때문이라고 했다. 머리는 오후만 되면 깨질 듯이 아파오고 몸은 한없이 무겁고, 두 아이를 돌보는 일은 점점 힘에 부쳤다. 다들 겪는다는 산후 우울증이고, 이러저러한 통증 없는 사람이 없다지만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변화와 상황들이 나를 어떻게 할 것만 같아 너무 막막하고 무서웠다. 가족들이 잠들고 난 밤이면 아무도 없는 아이들 장난감 방에 가만히 앉아 미워하고 원망할 존재를 찾고만 있는 나 자신이 너무 싫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가장 잘했던 일은 남편에게 솔직히 내 상태를 털어놓고 주변의 도움을 구한 일이었다. 남편 역시 직장 일로 몸이 부서질 듯 바쁜 나날이었지만, 일주일에 한 번뿐인 휴일을 반납하고 내가 1년 가까이 미술치료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여러모로 도와준 덕분에 살면서 나를 가장 세세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때 내가 나를 내버려뒀더라면, 욕실 안의 매일 똑같은 자리에 아무렇게나 걸린 젖은 수건 같았던 내 모습을 계속 미워하고 외면했더라면 그 아픔은 고스란히 나의 가족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섬이와 콩이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엄마에게 더더욱 사랑받지 못했을 것이고, 남편을 향한 알 수 없는 원망과 열등감은 나를 더욱 짓누르고 결국엔 삼켜버렸을지도 모른다.


물론 내게도 툴리와 같이 도움을 주는 이들이 종종 있었다. 덕분에 가끔씩 숨통이 트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엄마라는 모드로 전환된 삶을 계속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솔직히 ‘엄마’라는 역할을 해내는 것보다 그것을 뺀 순수한 ‘나’를 되찾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찾아올 때가 더욱 괴로웠다.

직장에서 하던 것처럼 다시 일을 시작하고 돈을 벌면 조금 마음이 채워지지 않을까 싶어 한동안은 집으로 일감을 뭉텅 들고 오기도 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하다 보면 하루가 금세 지나갔고, 돌아온 아이들에게 저녁을 먹이고 씻기고 나면 빨리 재워야 뭔가를 쓸 수 있다는 생각에 초조했다. 그렇게 쌓여가는 날카로움은 고스란히 아이와 남편에게 돌아갔고, 집은 집대로 엉망, 내 몸은 너덜너덜, 가족들과도 불편한 나날이 이어졌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헛헛한 나를 채울 수 있을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딱 떨어지는 정답을 찾지 못한 채 엄마로도 아내로도, 나로도 제대로 살아내지 못했던 시기가 꽤 길게 이어졌던 것 같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에 대해 아주 깊이, 그리고 찬찬히 들여다보는 때가 오는 것 같다. 사람에 따라 그 시기가 각기 다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 후 그런 시간들이 문득문득 찾아왔다. 신기하게도 내가 무언가로 충만하고 빛날 때가 아니라 내가 한없이 옅어지고 사라질 것만 같을 때,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을 때 나는 나를 더욱 갈구하고 찾게 되었다.

'나'에게서 '엄마'와 '아내'를 빼면 무엇이 남을까?"

아주 오랫동안, 그리고 지금도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계속 던지곤 한다. 그 세 가지가 모두 나 자신이라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어느 하나의 역할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는 자책 때문이다. 하지만 그 자책이 커질수록 더욱 나는 어둡고 거대한 터널처럼 텅 비어갈 뿐이었다.


그 터널에서 조금씩 빠져나오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했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면 될 일이었다. 음식을 하기 싫어하는 나, 청소를 잘 못하는 나, 체력이 약한 나, 그리 날씬하지 않은 나,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이 서툰 나, 남편에게도 그리 살갑지 못한 나.

하지만 아직 마음은 소녀처럼 어리고, 이루지 못한 꿈을 여전히 꾸고 있으며, 모성애에서 벗어나 아주 이기적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 또한 나였다.

속된 말로 내가 이렇게 생겨먹었으니 '배 째라'는 식이 아니라, 이런 부족한 나를 누구보다 나도 잘 알고 있으니 이해하고 도와달라는 부탁을 가족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이다. 그 고백은 나뿐만 아니라 남편과 아이들 역시 서로를 있는 모습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도움을 주었다.

나를 인정하는 것이 곧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고, 그 사랑이 가족들을 사랑할 수 있는 물길을 열어준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눈치 보지 않고 나를 더욱 떳떳하게 사랑할 수 있었다.

마를로의 딸이 엄마의 머리를 감겨주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다시 봐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 다음에 나도 딸아이와 꼭 해보고 싶다.




비단 나와 같은 엄마뿐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나 툴리와 같은 존재가 필요하다. 가족이든 이웃이든 나를 알아주고 돌봐주고 이해해주는 존재가 현실 속에 단 하나만 있어도 비틀거리는 순간을 견뎌낼 수 있다.

요즘 나에게도 서로에게 툴리가 되어주는 친한 엄마가 생겼다. 그녀에게는 세 명의 아이가 있는데 그들 중 둘은 우리 집의 섬이와 콩이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기도 하다. 우리는 일주일에 이틀씩 서로의 아이들을 하교 후 교대로 픽업해주고, 필요에 따라 집에서 돌봐주기도 한다. 아이를 키우며 고민이 생길 때면 조언을 나누며 토닥토닥 위로한다. 나보다 아이 하나가 더 있는 그녀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전쟁터가 따로 없다. 아이들끼리 갈등과 싸움이 일어나는 일이 다반사인데도 그때마다 이성을 잃지 않고 차근차근 말로 아이들을 설득하는 그녀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한 팀이야! 우린 가족이잖아. 우린 한 배에 탔어."

처음에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흔히 듣던 식상한 대사라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턴가 나도 섬이와 콩이가 서로 싸울 때마다 이 말을 건네게 되었다. 우리 중 하나라도 불행하면 가족 모두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내가 힘들 때 충분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툴리의 조언
"전체를 치료하지 않고는 부분적인 것을 고칠 수 없어요."
마를로의 슬픈 대답
"내 몸 전체를 치료했던 사람은 오랫동안 아무도 없었어."


마를로에게 필요한 것은 툴리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 전체를 들여다보고 어루만지는 치료였다. 나 역시도 몸과 맘이 아플 때 제일 먼저 했던 일은 마치 진단하듯 나의 안과 밖을 구석구석을 뒤집어 보는 일이었다.

어쩌면 가족이란 공동체도 하나의 몸과 같다. 어느 하나가 아프면 모두가 함께 상처를 받기에, 그 한 사람만의 치료만으로는 온전한 회복이 불가능하다. 정기적으로 해야 하는 건강검진처럼 꾸준히 서로를 살펴주고 돌봐줘야 한다. 우리는 각기 다른 지체로 이루어진 한 몸이니까.


그래도 여전히 엄마라는 이름은 무겁고 부담스럽다. 나에게서 그 이름을 빼버리면 조금 삶이 가벼워질 수도 있겠지만 대신 '나'란 존재의 의미가 다시 희미해질 것이 분명하다. 처음부터 엄마가 될 줄 알고 태어난 사람은 없듯이 나 역시 내 삶에 엄마라는 이름이 보태질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서툴더라도 이렇게 겪어내지 않았다면 이 경험이 더없이 소중하고 특별한 기회라는 것을 깨닫지도 못했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집으로 돌아온 마를로가 남편과 나란히 이어폰을 끼고 요리를 하는 모습을 보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이제 그녀가 엄마라는 무게에서 조금 더 자유로웠으면, 그렇게 잘 해내지 않아도 스스로에게 기꺼이 괜찮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비어있는 자신을 채우기 위해 전전긍긍하지 말고

’나’에 대한 사랑으로 그 여백을 천천히 채워가는 그녀의 모습을 계속 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편애하는 엄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