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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콩 Nov 09. 2018

나는 편애하는 엄마

맞추기 쉽지 않은 사랑의 저울

얘들아 학교 가자!

어느새 가을. 10월부터 해가 점점 짧아지면서 아이들을 깨우는 일이 더욱 쉽지 않다. 아침 일곱 시인데도 여전히 하늘은 어두컴컴하고 이따금씩 별도 달도 반짝거리는가 하면 저 너머 어디선가는 하늘을 불그스름하게 물들이며 먼동이 터온다. 찬 물기를 머금은 가을 아침 공기가 유난히 시려 엄마인 나조차도 일어나기 힘든데 열두 살, 아홉 살인 아이들은 오죽할까.

그래도 7시 30분에 도착하는 스쿨버스를 놓쳐서는 안 되기에 일찍부터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일명

'작업'에 들어간다. 무작정 섣불리 흔들어 깨웠다가는 아침을 짜증으로 시작하기 십상이라 조심스레 시작해야 한다. 일단 부드러운 톤과 적당한 볼륨으로 목소리를 가다듬은 후 두 녀석의 이름을 번갈아 부른다. 반응하는 기운이 영 시원찮으면 우쭈쭈 하며 뽀뽀도 한 번씩 해준다. 나름 간, 쓸개를 다 빼놓고 애를 쓰는데 두 녀석의 반응은 너무 달라서 기운이 빠질 때가 많다.


첫째인 섬이 녀석은 어떤 식으로 다가가 깨워도 반응이 곱지 않다.

"오늘은 학교 안 가고 싶다"

이불속에서 웅얼거리는 녀석의 첫 대사가 더없이 부정적일 때는 더 조심스럽다. 미리 불을 켜는 것도 싫어하고, 어느덧 사춘기에 접어든 다 큰 녀석에게 다리를 쭉쭉해 주는 것도 무리라 그저 주변을 부지런히 오가며 말로 어르고 달래준다.

"그래, 엄마도 어릴 때부터 월요일은 항상 너무 힘들었어. 아휴 그래도 기특하게 잠에서 깼네?"

맘 같아서는 이불을 얼른 걷어치우고 "거참 배부른 소리 하는구나!" 하면서 폴더처럼 일으켜 세우고 싶지만, 그러다가 옥신각신 서로 맘 상하는 언행이 오가고, 결국 녀석이 잔뜩 볼이 부은 채로 스쿨버스를 타고 떠나고 나면 하루 내내 서로 마음만 무거웠던 적이 여러 번이라, 요즘은 도를 닦는 마음으로 화를 가라앉히며 살살 달래기 시작했다.

반면 여동생 콩이를 깨우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딸칵, 방의 불을 켜주고 이불 사이로 녀석의 두 다리를 주물러주며 "쭉쭉 키 커져라. 다리 길어져라" 하며 주문만 외워도 녀석은 간지럽다며 키득키득 웃으며 잠에서 깨어난다. 엄마 입장에서는 웃음으로 아침을 열어주는 딸아이가 더 고맙고 수월할 수밖에 없다.

두 아이를 키우다 보니 이런 상반된 반응을 맞닥뜨리는 일이 수시로 찾아온다. 성별과 나이가 다르기도 하지만, 한 배에서 나왔을까 싶게 성향 또한 너무 다른지라, 둘의 다른 캐릭터를 파악하는 데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달을 보며 등교하는 섬이와 콩이


예쁘고 미운 모습도 다른 아이들

확실히 둘째는 눈치가 빠르고 애정 욕구가 남다른 데다가 질투도 워낙 많아서 오빠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빈틈을 뚫고 엄마 아빠를 공략해 포인트를 획득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오늘 유난히 날씨가 좋으니 어디 나가볼까?" 하면, 이미 옷을 후다닥 갈아입은 콩이는 "좋아 좋아!"하고 맞장구를 쳐주며 나갈 준비를 완벽히 마치는데, 집돌이인 섬이는 "싫어, 주말인데 좀 쉬면 안 돼?" 하며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직장인 코스프레를 하고 있으니 난감하다. 녀석을 겨우겨우 설득해 끌고 나오기까지 험난한 과정을 거치다 보면 출발도 하기 전에 진이 빠지곤 한다.

엄마가 빨래를 널고 있거나, 주방에서 뭔가를 하려고 서성이고 있으면 콩이는 일찌감치 달려와 같이 양말 한 짝이라도 널면서 거들거나, "무슨 요리 할 거야? 내가 할 것도 나눠주면 안 돼? 하며 적극적으로 헬퍼를 자처하지만, 섬이는 아주 나중에서야 "나한테 도와달라고 얘기 안 해서 난 몰랐지~." 하고 뒷북을 치기 일쑤다.


물론 섬이도 어릴 때는 색다른 다른 방식으로 웃음을 전해준 일이 종종 있었다. 한번은 어린이집 가방을 정리하는데 안에서 향긋한 내음이 나서 뒤져보니 하얀 꽃잎들이 그득했다.

 "오늘 채소에 물을 주러 어린이집 옥상에 다 같이 올라갔는데, 여기저기 꽃잎이 있어서 엄마 주려고 몰래 딴 거예요." 하는 게 아닌가. 오다가 주웠다는 츤데레도 아니고,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을까 싶어 한동안 팔불출처럼 감동에 젖기도 했었다.

이따금씩 마트에 가도 녀석들은 늘 정반대였다. 카트 앞자리에 앉혀 놓으면 콩이는 자기 몸보다도 더 큰 장난감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카트 안에 쓸어 담기 바빴다. 일단 많이 사달라고 졸라놔야 그중 서너 개라도 얻을 수 있다는 진리를 어릴 적부터 비상하게 터득한 녀석이었다.

그런가 하면 섬이는 맘껏 고르라고 멍석을 깔아줘도 한 개조차 잘 고르질 못했다. 일단은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은 데다가 굳이 사준다고 해도 ”너무 비싼 거 아녜요? 엄마 돈 많이 쓰는 건 싫은데.”하며 선뜻 선택하기를 꺼려해 엄마 맘을 뭉클하게 만들기도 했다.


둘뿐 아니라 셋이나 넷, 아니 열을 낳아도 절대 그중 똑같은 아이는 단 하나도 없을 것이다. 중국집에 음식을 시켜도 꼭 한 녀석은 짜장면을, 한 녀석은 짬뽕을 외치고, 스파게티를 해주는 날이면 섬이는 토마토소스, 콩이는 크림소스를 주문한다. 그뿐인가, 초콜릿케이크와 치즈케이크, 고기와 생선, 닭껍질과 살코기, 삼겹살과 보쌈, 우유와 주스 등 항상 둘은 같은 것을 묘하게 서로 비껴간다. 매일 같은 메뉴로 도시락을 싸줘도 좋고 싫고의 반응이 항상 다르다.

저마다 다른 천성과 욕구를 갖고 태어난 이상, 엄마인 나 편하자고 군대처럼 복종과 일치를 외치며 아이들을 하나로 통일시킬 수도 없고, 그렇다고 서로 다른 둘을 항상 만족시킬 수도 없는 것이 그야말로 육아의 딜레마다.


아픈 손가락에 더 기우는 마음

두 아이를 차별과 편애 없이 공평하게 키우는 방법은 무엇일까.

육아에 많은 신경을 쏟는 부모 대부분이 고민하는 그 질문을 나 역시도 스스로에게 수없이 물어보았다. 하지만 가장 먼저 되돌아오는 대답은 '부모인 우리조차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에게 옳고 그름을 반드시 알려줘야 하는 아주 기본적인 테두리는 있어야겠지만, 예측하지 못했던 세세한 일들을 겪어 오다 보니 엄마인 내가 무조건 기준이 될 수는 없었다. 나 역시 지극히 주관적인 취향을 가지고 태어난 한 사람이고, 컨디션과 기분, 상황에 따라 수도 없이 마음이 들쑥날쑥 바뀌는 변덕쟁이인지라 나를 중심으로 아이들을 좌지우지 하기에는 찜찜한 마음도 들었다.


솔직히 엄마도 사람인지라 아이들이 하는 각각의 행동과 말 가운데, 내 마음에 더 드는 것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확연히 나뉠 때가 있다.

되도록 식성이 나와 비슷하면 한 끼 밥상을 차려도 더 수월하고, 취미나 행동 패턴이 닮아 있으면 같이 보내는 시간이 즐겁고 이해가 더 쉽게 되기 마련이다. 흔히들 "누구 닮아서 그러니?"하고 아이들에게 던지는 말은 한편으로는 "나는 안 그런데 도대체 넌 왜 그러니?"라는 타박이기도 하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아이들에게는 큰 잘못이 없다. 자기의 천성을 선택해서 태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로부터 많은 기쁨과 위안을 얻기도 하고, 한 녀석이 실망을 시키면 반대로 웃음을 주는 한 녀석이 더 도드라지게 예뻐 보이기도 하지만, 깊이 생각해보면 아이들은 부모에게 무언가를 주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내가 양육하고 있으니 아이들로부터 얻는 많은 열매도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아이를 바라보는 내 눈에는 더욱 욕심이 가득해질 것이다.



지금까지 자라오면서 섬이와 콩이는 때와 상황에 따라 기쁨과 웃음을 주는 포인트가 저마다 달랐다. 어떤 때는 섬이가, 어떤 때는 또 반대로 콩이가 즐거움을 주기도 했지만, 반대로 좌절과 아픔을 주는 포인트도 달랐다.

엄마인 나를 더 편하고 수월하게 해 주고 더 많은 기쁨과 위안을 주는 아이가 더 예쁠 수도 있지만 실은 꼭 그렇지 만은 않았다. '측은지심'이라고 해야 할까. 더 많이 울고, 짜증 내고, 더 겁이 많고 자주 아프고, 부족하고 서툰 녀석에게 묘하게 마음이 기울었다. 가끔은 어디선가 여전히 울고 있을 어릴 적 내 모습 같기도 해서 녀석의 아픈 마음에 더 공감이 되기도 했다.


'편애'라는 균형의 추

그리하여 10년 넘게 두 아이를 키우다 보니 '편애'가 꽤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지만, 더 아픈 손가락은 있다고들 하지 않던가. 그 아픈 손가락 중에도 더 아픈 마디가 있기 마련이다. 아프면 어쩔 수 없다. 어루만져 주고 약을 발라주고 상처가 아물 때까지 달래며 지켜봐야 한다. 건강하고 멀쩡한 손가락을 기준으로 두고 아픈 손가락에게 왜 저렇게 씩씩하지 못하냐고 타박만 할 수는 없다.

물론 이러다가 아이를 응석받이로 키우는 것은 아닐까, 따끔한 훈육으로 늦잠 자고 징징 대는 못난 습성들을 애초에 고쳐놔야 하는 것이 아닐까 고민한 적도 많다. 하지만 몇 번의 갈등을 겪다 보니 속상한 마음이 더 커졌다.

사실 살면서 남편이나 다른 이웃, 친구들과 얼굴 붉히며 싸울 일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닌데, 왜 나는 내 아이들과 자주 불편한 상황을 겪어야 하는지 맘이 씁쓸했다. 아무리 가족 관계이고 또 어리다 해도 갈등이 생기면 상처를 받는 것은 똑같다. 한편으로는 아이와의 관계에 작은 흠집을 내면서까지 몰아붙일 가치가 있을지 반문하다 보니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나에게도 작고 사소하지만 평생 잊히지 않는 어릴 적의 상처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곱씹어보면 어떤 것이든 아이의 말과 행동에는 이유가 있었다. 타고난 천성이나 습관일 수도 있지만 내면에 자리한 상처나 아픔, 혹은 열등감이 원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녀석은 자신이 왜 화가 났는지, 슬픈지, 잘하지 못하는지 이유를 모를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어른인 나도 한참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있다가 문득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다시 되짚어보면, 나중에서야 전혀 다른 곳에서 원인을 발견하는 때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아이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왜 그러냐고 몰아붙이기 전에 스스로 자신의 감정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는 여유를 가지는 것이 중요했다.


일단은 바쁜 아침, 뭉그적거리는 녀석의 엉덩이를 찰싹하는 대신 한번 더 토닥토닥 두들겨 주고, 눈치가 없는 녀석에게 타박을 주는 대신 좀 더 자세하고 친절하게 상황을 설명해주려고 노력한다.

이유 없이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낼 때에는 나 역시도 분노 게이지가 상승하지만 가끔은 꾹 참고 아이의 입장에서 그 마음을 더 세밀하게 읽어 보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딸아이가 학교에서 칭찬을 받았다고 의기양양한 날이면 나와 남편은 안 보이는 뒤에서 아들 녀석을 한 번씩 더 안아주곤 한다. 그런 날은 잠자리에 누워서도 아들 얘기를 나누느라 밤이 깊어간다. 상황이 반대일 때는 또 기울어진 딸아이의 어깨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더 펌프질을 해야 한다.


너무 이상적이어서 쉽지 않은 일

몸과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아이에게 더 신경을 쓰는 것이 사실 쉽지는 않다. 이따금씩 인내심이 바닥이 나서 '버럭'소리를 지르며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나중에라도

"정말 미안해. 엄마도 사람이라 피곤하고 화나면 잘 못 참을 때가 있어. 이해해줄 수 있어?"

하며 용서를 구한다. 아이들도 머리가 조금씩 크다 보면 자신의 눈에 크고 완벽하게만 보였던 엄마, 아빠도 결국 보통 사람처럼 부족하고 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그러니 괜스레 목에 힘을 주느라 땀을 빼면 결국 나만 쉽게 지치고 만다. 어차피 아이를 키우는 일을 장기전이다. 죄송스럽게도 여전히 자식 걱정에 전전긍긍하는 내 엄마를 보며 얻은 교훈이다.


어쩌면 이상적인 세상도 그런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할 때가 있다. 현실의 세상은 더 뛰어나고, 많이 가지고 있고, 경쟁에서 이기는 승자만을 원하며 지지해줄 때가 많지만, 실은 약자들을 위한 일방적인 편애가 절실히 필요하다. 출발선부터 다른 이들을 더 배려하고 채워주고 이끌어준 후에야 제대로 된 공평과 균형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서글플 때는 두 녀석 중 하나가 실수를 하거나 잘못해서 혼날 적에 잘한 것도 없는 다른 한 녀석이 신이 나서 좋아할 때다. 마치 '너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도 된다는 듯이 어떨 때는 콧노래까지 부르며 '쌤통이다'하는 모습을 감추지 않을 때면 화가 나기보다는 오히려 슬프다. 내가 무엇을 잘못 가르친 걸까 자책도 들고, 이다음에 학교나 사회에서도 남의 아픔을 공감해주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한다.


아이들의 키가 자랄수록 마음의 시야도 더 넓고 커져서 혼자서 앞서 나가는 치열한 달리기보다 누구나 다 같이 어깨를 맞춰 걸어가는 흥겨운 퍼레이드 같은 삶이 훨씬 더 행복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주고 지친 사람을 기다려 주고, 이따금씩 동그랗게 원을 그리고 서로 마주 보기도 하는 그런 세상. 너무 이상적이어서 영영 불가능할 것만 같지만 그래도 꿈이라도 가져 볼 수 있지 않을까.


"있잖니, 네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을 때 세상은 아주 교활한 방법으로 네 약점을 찾는단다. 그러면 그냥 내가 옆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라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버지는 첫사랑의 상처로 괴로워하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살면서 아들이 평생 기대었을 그 말은 내게도 긴 여운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내 아이들에게도 언젠가 그렇게 말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너무나 다른 우리를 한 가족으로 맺어준 이유는 서로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고 아픈 부분은 어루만져 주라는 의미일 것이다. 세상에 사랑의 이야기가 그토록 많은 이유 역시, 내가 원하는 방법이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방식대로 각각 다르게 사랑해줘야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가끔씩 어릴 적을 돌아보면 무언가를 잘해서 칭찬을 받았던 기억보다, 잘못하거나 힘들었을 때 비난 대신 위로를 받았던 순간이 더 깊게 남아있다.

섬이와 콩이에게도 그런 기억이 하나라도 남았으면 하는 마음에 나는 오늘도 서툰 저울을 들고 아이들을 골고루 편애하려 애를 써본다. 그 작은 기억이 아이가 살면서 휘청거릴 때 잠깐이나마 지탱해주는 힘이 되어 줄 수 있다면, 그래서 다른 누군가를 또 붙잡아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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