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섬콩 Sep 06. 2017

별을 만날 수 있는 시간

늦은 오후의 산책

해 질 무렵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침대에 걸터앉으면 두 개의 창문으로 하늘이 보인다. 낮은 지붕들 위로 천천히 흘러가는 구름. 그 사이사이로 이제 막 넘어가는 해의 여운이 남아있다. 불그스름한 그 빛이 옅어질 때까지 가만히 하늘을 응시하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여긴 어디지? 내가 어떻게 여기에 있지?'

잠이 들었다는 사실조차 모를 만큼 깊이 곯아떨어진 어떤 날은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하얀 백지가 되기도 한다. 지금껏 내가 살아온 수많은 시간과 공간 가운데, 언제 어느 곳에서 깨어난 것인지 알 수가 없어서 눈을 뜨고도 한참 동안 천장을 응시한다. '여긴 어디지? 내가 어떻게 여기에 있지?'

 한국을 떠나온 지 1년 3개월. 나는 아직도 내가 지구 반대편의 낯선 나라에 살고 있다는 현실이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순간순간 나를 둘러싼 풍경들이 여전히 생경해서, 혹은 침대, 식탁, 의자, 세면대... 내가 매일 사용하고 있는 이곳의 물건들이 어느덧 익숙해졌다는 게 신기해서, 이따금씩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둘러본다.


나이를 먹고 다른 나라에서 살게 된 기분이 어떠냐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것 같다.

"느지막이 산책을 나온 기분이에요."

'산책'이란 단어는 지금껏 살아오며 그 어감이 계속 변해왔다. 친구들과 동네를 쏘다니며 뛰어놀기 바빴던 어릴 적엔 '산보' 좋아하시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이 하시는 그저 지루한 일이었고, 작은 골방에서 책이나 친구들과의 수다로 시간을 보내는 게 낙이었던 사춘기 때는 별 관심 없는 귀찮은 일이었다.

늦은 밤, 내가 서성이는 골목이 어디쯤인지 몰라 답답했던 이십 대 무렵엔, 기대고픈 누군가와 나란히 걸으며 위안을 받고 싶은, 그런 설레는 일이었다.


더블린에서 처음 산책을 나섰던 곳은 '디어 파크(Deerpark)'라는 곳이었다. 초여름, 이른 저녁을 먹고 슬슬 나선 길. 우리는 걸으면 걸을수록 점점 느려졌다. 몇 년을 살았을지 가늠이 안 되는 큰 나무 하나하나를 지나칠 때마다 몸의 중심은 자꾸 뒤로 처지고 고개는 위로 젖혀지고, 어느새 어르신들처럼 뒷짐을 진 채 한 걸음 한 걸음을 아주 천천히 옮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이들도 신기한지 기다란 가지를 한껏 드리운 나무의 이파리 하나하나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까르르 웃어댔다. 나무가 울창한 길을 지나 큰 성당 옆으로 예쁜 놀이터가 모습을 드러내자 남매는 함성을 지르며 달려갔다. 나와 남편은 놀이터를 둘러싼 오솔길을 따라 나무가 더 울창한 숲으로 천천히 들어가 보았다.

 

남산 산책길, 뚝섬 서울숲, 양재 시민의 숲, 담양 대나무 숲, 내소사 전나무 숲, 제주도 사려니숲... 한국에서도 참 좋았던 공원과 숲이 많았다. 바쁜 일상의 틈을 쪼개어 찾아가면 맘껏 숨 쉬고 기댈 수 있도록 우리를 감싸주었던 아름드리나무들. 숲 속을 걷다 보니 그렇게 잠깐이나마 숨통을 트고 다시 반복된 일상으로 돌아가곤 했던 분주한 서울살이가 떠올랐다.

숱한 비와 바람을 겪어서인지 마치 근육이 붙은 양 더 강하고 짙어 보이는 더블린의 나무들 사이에서 우리 부부는 중얼거렸다.

"이러고 있으니 참 이상하다."

당장이고 돌아가야 할 현실이 없어진 기분이랄까. 아직 일상이 되지 못한 타향살이가 어색해서 가만히 벤치에 앉아 빛에 따라 제각각 다른 빛으로 반짝이는 이파리들을 바라보며 초록색의 종류가 이렇게 많았던가 세어보았다.


지난가을이었나. 해가 짧아 어둠이 더 빨리 왔던 어느 밤에 혼자 집 밖을 나선 적이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아주 가끔씩 치미는 답답증을 이기기 힘들어서 그렇게 현관문이라도 열어젖혀야 조금 나아지는 때가 있다.

나이를 먹는다고 굳은살처럼 다 무뎌지는 건 아니다.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고 나서 뭔가에 미친 듯이 사로잡힐 때도 있고, 무심코 던진 가족의 한 마디가 신발에 들어간 돌멩이처럼 내내 신경이 쓰이고 아릴 때도 있다. 또 뭔가 끄적이고 싶은 게 떠오르면 온 감각의 촉수를 세우고 사춘기 소녀처럼 예민해지고 싶은데, 여느 때처럼 할 일은 여전히 널려있고, 나를 대하는 사물이나 사람들은 변함없이 무심하게 느껴질 땐 어떻게 내 맘을 다독여야 하는지 이 나이 먹도록 마땅한 해결책을 터득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 밤, 조심스레 어두운 길을 걸어보았다. 너무 조용해서 내 발자국 소리만 자박자박 들리는 것이 걸을수록 겁이 났다. 6시면 문을 닫는 달랑 하나뿐인 동네 커피숍과 역시나 불 꺼진 작은 슈퍼 앞까지 걸어왔다가 이내 발길을 돌렸다. 걸어봤자 시골마을 같은 어둠뿐. 이런 밤의 적막이 너무 오랜만이어서 뭘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문득 낮에 길을 지날 때마다 보였던 산이 궁금해 눈으로 그곳을 더듬는데 그제야 짙푸른 밤하늘과 그 사이 박힌 별들이 눈에 들어왔다. 여행프로에서 보곤 했던 은하수 같은 별 잔치는 아니었지만 어릴 적 외갓집 평상에 누워서 바라봤던 별들처럼 초롱초롱 예뻤다."엄마 하늘에 별이 네 개나 있어요!" 서울에서 살 때 그나마 인공위성일지도 모르는 그깟 별 몇 개에 들뜨곤 했던 아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나야말로 들뜨기 시작했다. 찬 공기에 눈과 코가 시렸지만 그날 밤하늘은 예민해진 나를 아주 조심스레 대해주고 있었다.

그 순간, 문득 오래전 어느 밤이 떠올랐다. 첫 아이를 낳고 산후우울증으로 기분이 한참 오락가락하던 때. 그날도 답답한 마음에 잠든 아이와 남편을 두고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삭막한 아파트 건물 사이에서 어디로 갈까 마냥 서성이다가 주차장에 세워진 우리 차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가만히 뒷자리에 누웠다. 나는 장롱면허였다. 운전도 못하는데 왜 열쇠를 들고 나왔는지 나 조차도 알 수 없었다. 갈 곳도 없고 갈 수도 없어서, 그저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을 어떤 공간과 시간이 무작정 고팠다. 좁은 시트에 누워 점점 커지는 내 숨소리만 내내 듣다가 조용히 일어나 집으로 돌아왔다. 자고 있는 남편의 옷 주머니에 차 열쇠를 다시 넣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아이 곁에 누웠다.

그때는 그렇게 자기연민에 사로잡혀 내 안의 나만 보였다. 산책이란 시간이나 마음의 여유가 있는 이들에게나 어울리는 사치스러운 단어일 뿐. 그저 내 속에 갇혀 밖으로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십 년 가까이 지나, 이제 다시 밖으로 나와보니 눈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의 문을 여는 법도 조금씩 알 것 같았다. 그 틈 사이로 드나드는 시린 바람도 좋고 나를 바라봐주는 별도 고마웠다.


밤길을 서성거린 그날 이후, 나는 비밀을 간직한 듯 별을 기다렸다. 어두컴컴해지면 잠시 문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좀 이따가 별을 봐야지'하고 혼자 약속을 했다. 그러고선 저녁 설거지와 뒷정리를 하고 애들을 겨우겨우 달래 재우고 나서 후다닥 뒷마당으로 나왔다. 설레는 맘으로 하늘을 바라봤지만 별은 없었다.

어느새 흘러온 구름들만이 하늘에 가득했다. 아니, 별은 그 너머에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나는 때를 놓치고 말았다.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별과 내가 서로를 응시할 수 있는 그 밤은 언제나 오는 것이 아니었다. 별이 나를 바라봐 주고 있을 때 나의 시선은 다른 곳에 머물러 있었고, 내가 별을 간절히 원하는 어떤 날, 별은 숨어버렸다. 그렇게 시선의 타이밍을 맞추기란 쉽지 않았다.



그날부터 나는 매 순간을 산책처럼 살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이곳이라고 해서, 매일 구름 솜사탕이나 뜯어먹고 피톤치드만 하며 유유자적하며 지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새 학기가 오고 더블린에서도 쳇바퀴 돌듯 바쁜 하루하루가 다시 시작되자, 먹고 자고 걷고 일하고 쓰고 읽고 공부하는 보통의 삶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좀 더 많이 걸어야 한다는 것. 버스 정류장과 Luas 역이 멀고, 아이들 학교도 멀고, 쇼핑할 수 있는 마트나 상점가도 멀어서 어찌 됐든 무얼 좀 하려면 일단은 나가서 걸어야 했다. 그때마다 산책을 나간다고 생각하며 설렐 준비를 했다. 매일 똑같은 동네, 그 길이지만 나무는 얼마나 자랐는지, 어느 집에 무슨 꽃이 새로 폈는지, 오늘 하늘은 무슨 색인지, 바람의 온도는 적당한지, 몸과 마음의 문을 열고 관심 어린 시선으로 주변을 바라보자 눈 앞의 모든 풍경이 그림 같았다.



지난해 가을, 친구 하나가 멀리 더블린까지 나를 찾아 훌쩍 날아왔다. 서울살이와 고된 일에 지친 그녀에겐 그저 쉼이 필요했다. 여느 관광객들처럼 알찬 투어코스를 제공할 순 없었지만, 나는 일단 아들 녀석의 방을 내주었다. 아침이면 해가 제일 먼저 뜨고 해가 지면 "엄마 오늘 밤은 달이 정말 멋져요!"하면서 녀석이 호들갑을 떠는, 우리 집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방이었다. 우리는 아침마다 뒷마당을 스치는 구름을 보며 차를 마시고, 비가 오든 해가 나든 시간이 나면 때때로 걸었다.

친구가 떠나기 며칠 전, 나는 디어 파크에 데려갔다. 더블린에 와서 내가 처음 만났던 나무, 걸어갔던 숲길, 드넓은 들판을 말없이 안내했다. 그리고 우리는 작은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눈부신 햇살과 이파리들이 서로를 비추고, 바람과 구름이 잠깐씩 스쳐가고, 이따금씩 이어지던 침묵을 새소리가 메워주던 그곳에서 친구와 나는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단 2주였지만, 서울로 돌아가자마자 벌써부터 더블린의 하늘이 그립다며 아쉬워하던 그녀. 나 역시 언젠가 이곳을 떠나게 되면 눈에 아른거릴 것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서 벌써부터 맘이 쓰리다.

몇 년 후 더블린을 떠나 어느 공간, 어느 시간에 머무를지라도 일상은 계속 이어질 것이고 그 일상에서 문득 하늘이든 나무든 별이든 사무치게 그리워 문을 열어젖히고 싶을 때가 온다면, 그때는 별과 내가 서로를 응시하던 그 밤을 한껏 떠올려야겠다.

그리고 엽서 속 풍경처럼 시간이 멈추어 있던 찰나. 그 작은 벤치에서의 산책을 친구도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