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0 05
저는 오랜 시간 과외 선생으로 살았습니다. 고액 과외 선생이 아니라 저액? 과외 선생이었습니다. 그러니 어느 정도의 소득을 위해선 많은 학생을 가르쳐야 했습니다. 아침 10시 공무원 영어 과외를 시작해서 저녁엔 중학생과 고등학생까지 그리고 집에 들어가면 11시 정도가 되었습니다. 새벽에 들어간 경우도 많았습니다. 지방대 철학과 출신이 과외 시장에서 살아남기는 참으로 힘듭니다. 매달 더 이상하지 않는 학생들이 생겼습니다. 이유는 성적 때문이었습니다. 그냥 그렇게 말해도 되는데... 참 모욕스러운 이야기를 하고 과외를 그만두는 사람들도 참 많았습니다. 나름 자존감이 놓은 사람이지만 거의 20여 년 그렇게 살면서 딱 한번 부모의 그 과도한 무시에 대답을 하였고 그 이외엔 항상 미안하다 했습니다. 혹시나 그 가운데 아주 드물게 다시 과외를 시작하는 경우도 있어서 말입니다. 출신 대학을 지적하며 모욕을 주는 부모도 있었고 학생이 욕을 하자 저에게 욕을 배운 것이 아닌가 라는 말을 하는 부모도 있었습니다. 한 달에 한두 번은 집에 가는 길... 버스에게 나도 모르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집에 바로 들어가기 힘들어 놀이터에 앉아한 참 동안 마음을 달래고 들어간 적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많은 학생들의 성적으로 올린 나름 좋은 과외 선생이었습니다. 사실 거의 대부분 부모와의 약속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고맙다는 말을 들은 경우는 전체를 통해 2-3번입니다. 돈이 없는데 잘해서 그냥 도와준 학생이 공무원이 된 경우도 몇 있지만 공무원 시험 합격만을 전할 뿐 그 뒤로는 연락도 없고 고맙다는 말도 없었습니다. 길게는 2년을 그냥 가르쳐 주었는데 말입니다. 한때는 참으로 섭섭했는데 지금은 상관 없습니다. 무엇이라도 받기 원하고 가르친 것이라면 처름부터 수강료를 받고 가르쳤을 것입니다. 그냥 아무 것도 원한 것 없이 시작한 것이니 고맙다는 말도 이젠 기대하지 않습니다. 저도 살아오면서 받은 고마움들이 너무 많으니 말입니다. 하여간 저는 무시에 익숙하고 고맙다는 말을 들은 적은 거의 없습니다. 저의 30대는 생존과의 싸움이었습니다. 무시와 조롱의 말이 많이 심하면, 그런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가는 집은 힘들었습니다. 달려오는 지하철을 보면 그냥 죽어 버릴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우울감은 그냥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나기도 했으니까요. 대구 앞산 아래 어느 아파트에서 영어 수업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나기도 했습니다. 학생이 당황했었지요. 저도 이유를 모릅니다. 그냥 그렇게 항상 서러웠습니다. 사실 처음엔 유학 가서 자리 잡고 성과를 내는 이들을 보면 부러운 마음도 컸습니다. 학원에서 강사 아르바이트할 때 외국으로 유학 간 어느 학우가 학술지에 글을 올린 것을 보았습니다. 아... 같이 기차 타고 오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학우는 이렇게 성공하는데 나는 중학생들 앞에서 문제집 풀이 강사를 하면서 고맙다는 말도 듣지 못하는 하지만 무시를 밥 먹듯이 당하는 일을 한다는 사실이 너무 싫었습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쓰이는 날이 오겠지... 스마트폰의 워드 프로그램으로 논문 작업을 하기도 하고, 지하철 역 의자에 앉아 번역을 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살았습니다. 누구도 모르는 저의 30대는 그러했습니다. 학회에 가는 것도 참 싫었습니다. 나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열심히 공부하는데 그저 초로한 나의 모습을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싫었습니다. 진지하게 정신과 의사 선생님의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냥 지나가면서 나에게 한 이야기들이 나름 힘이 된 것 같습니다. 30대는 생존의 시간이라 했습니다. 한 사람의 가장으로 돈 못 벌어서 무능한 가장으로서 생존은 힘들었고, 죽음을 향한 우울감 앞에서 나 자신의 생존도 쉽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때그때마다 사람들은 참 독한 사람들만 하늘은 저에게 보내주었습니다.
2016년인가요. 제가 광주의 전남대에서 중세 철학 강의를 2번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정말 제가 중세철학으로 사람들 앞에 서는 마지막이라 생각해서 강의의 내용보다 그냥 그 자리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만 두려 할 때, 저의 책을 읽은 저를 모르는 누군가에게 받은 필통은 저를 잡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름 열심히 지금도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40대 중반... 이젠 30대의 그 힘겨운 생존의 시간을 이렇게 적어 내려갈 수 있을 만큼 나 자신에 대해서도 조금은 담담합니다. 그래서 더 나 자신에게 열심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저는 무시에 익숙합니다. 얼마 전 공무원 영어 과외에서도 철학과 출신이란 말에 절 향한 모욕을 이야기들은 생각만 해도 심장이 아파옵니다. 얼마 전 공무원 영어 과외 선생으로 매번 '도시락'이란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던 편의점 앞으로 지나면서 지난 삶이 그렇게 머리를 그쳤습니다. 컵라면을 좋아서 먹지 않습니다. 싸고 싸서 먹을 뿐입니다. 그래도 그렇게 살아온 시간.. 여전히 무시에 익숙하고 고마움은 멀고 먼 남의 이야기 같은 저의 삶.... 이 삶을 조금 더 치열하게 사랑하려 합니다. 나라도 사랑하지 않으면 정말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는 그런 불쌍한 삶이니 말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더욱더 치열하게 쓰임 있는 철학자이고 싶습니다. 누군가를 향한 나의 쓸모가 나에게 보이면 나도 행복할 듯합니다. 누구도 무시하지 말고 작은 일에도 고마워하고... 그렇게 살아가면 나도 누군가에게 무시받지 않고 고마운 사람이 될 것이라 믿으며 저에게 주어진 철학자의 삶에도 최선을 다해 보려 합니다. 철학자로 여러분에게 무시받지 않고 고마운 사람이고 싶습니다. 요즘 논문과 번역 그리고 책 원고로 힘들지만 아직도 저는 수고하라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ㅎㅎ 지나다 저를 보면 수고한다는 말 해주세요. ㅎㅎ 힘들어도 당장 돈이 되지 않으면 쓸모없는 세상에서 철학자로 살아가는 것 쉽지 않습니다. 철학자로의 생존도 지방대 사라진 철학과 출신 과외 선생으로의 생존만이나 힘들고 서러운 길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는 저의 길을 갑니다.
2020 10 06
유대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