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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Feb 17. 2022

아직 때가 차지 않았으니 기다리세요.

유지승의 주역 읽기 건위천 2022년 2월 17일

잠긴 용이니 쓰지 마세요.

潛龍勿用

(잠룡물용)     


생각: 대학생 때 이 구절을 읽으며 이게 무슨 소리인가 궁금해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갑자기 잠긴 용이라니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앞서 본 ‘원형리정(元亨利貞)’이 떠오르더군요. 씨앗은 아직 때에 이르지 않은 존재입니다. 참으로 대단히 큰 가능성을 가진 존재이지만 다르게 보면, 아직 현실로 드러난 것이 없는 텅 빈 존재입니다. 그런데 텅 빈 존재이니, 그 텅 빈 크기만큼 대단한 존재인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잠긴 용’은 어쩌면 ‘씨앗’과 같은 것이 아닐까요? 아직 양(陽)과 음(陰)으로 규정되는 움직임과 멈춤도 없는 그런 ‘무극(無極)’의 모습으로 있는 그런 것은 아닐까요? 온전히 순수한 가능성으로 있는 텅 빈 무엇 말입니다. 잠겨 있으니 이 세상 힘든 것은 알까요? 언제 나서야 하고 언제 멈추어야 하는지, 음양의 흐름을 알고 있을까요? 아닐 겁니다. 그저 가능성만 믿고 나서면 큰일이 날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아직 텅 빈 가능성의 순간은 온전히 가능성으로만 있기에 당장 자신을 지키고 싸울 현실의 무기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극이고 그것이 잠든 용일까요? 이미 잠에서 깬 용이고 이미 나서고 멈추는 태극(太極)이겠지요.     


돌아봅시다. 우리의 자녀 혹은 우리 자신은 잠든 용일지 모릅니다. 아직도 말입니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아직 잠든 용일지 모릅니다. 아직 때가 차지 않아 그 텅 빈 가능성의 광대함이 여전히 채워지지 않은 그런 존재 말입니다. 한자 潛(잠)은 땅속으로 흐른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잠기어 있다는 뜻도 있습니다. 감추어져 있다는 뜻도 있습니다. 아직 땅에 오르지도 못한 용, 아직 자기 존재를 드러내지 못하고 감추어져 있는 용, 아직도 잠겨 있는 용은 어찌 보면 아직 기다리고 있는 용입니다.      


지금 자기 자신이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은 지금 감추어진 용으로 있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드러날 곳을 찾아 땅속에 머무는 용일 수 있습니다. 보이는 것은 비록 대단한 것 없이 작지만 보이지 않는 그 대단함을 믿으며 더욱 단련하며, 때를 기다려야겠습니다. 단련한다는 것은 드러나 있다는 게 아니라, 드러나기 위해 준비한다는 겁니다. 지금 잠든 용이라면 보이는 게 초라하다 절망하지 말고, 때를 기다려야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자녀의 대단하지 않은 모습으로 자녀의 전부를 너무 쉽게 규정하지 마세요. 어쩌면 때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잘 단련하며 기다릴 수 있게 응원해야겠습니다. 그것이 이때 부모의 일입니다. 


2022년 2월 17일

유지승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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