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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Mar 30. 2022

누가 진짜 제대로 된 리더가 될 수 있을까요?

유지승의 장자 읽기 2022년 3월 30일

莊子 內篇 第6篇 大宗師 第1

장자 내편 제6편 대종사 제1


깨우친 이가 군대를 일으켜 전쟁을 일으킬 때는 설령 나라가 망할지라도 민중의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그 이익과 혜택이 오랜 시간 미칠 정도로 베풀어지더라도 백성은 은혜를 입었다고 느끼지 않아야 합니다. 

기쁨이 사물과 통하면 그는 깨우친 이가 아니며, 

친애하면 마음이 어진 사람이 아니고, 천시(天時)를 일부러 살피면 그는 착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로움과 해로움이 통하지 않으면 군자가 아니며, 

명예에 치우쳐 자기 자신을 상실해 버리면 그는 선비가 아닙니다. 

자기 몸을 망치고 그 진실하지 않으면, 남에게 일을 시키는 이가 아닙니다.   

호불해(狐不偕), 무광(務光), 백이(伯夷), 숙제(叔齊), 기자(箕子), 서여(胥餘), 기타(紀他), 신도적(申徒狄)과 같은 이들은 다른 이들이 할 일을 대신합니다. 

다른 이의 기쁨을 자기 기쁨으로 여겨 스스로 자기 자신의 기쁨을 기뻐하지 못한 이들입니다.        


故聖人之用兵也,亡國而不失人心

고성인지용병야, 망국이불실인심

利澤施於萬物,不為愛人

이택시어만세, 불위애인

故樂通物, 非聖人也

고락통물, 비성인야

有親,非仁也; 天時,非賢也

유친, 비인야; 천시, 비현야

利害不通,非君子也

이해불통, 비군자야

行名失己, 非士也

행명실기, 비사야

亡身不真, 非役人也

망신부진, 비역인야

若狐不偕, 務光, 伯夷, 叔齊,

약호불해, 무광, 백이, 숙제

箕子胥餘, 紀他, 申徒狄,

기자서여, 기타, 신도적

是役人之役

시역인지역

適人之適,而不自適其適者也

적인지적, 이부자적기적자야     


 풀이: 나라를 망쳐도 민중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는 안 됩니다. 설령 전쟁을 일으켜도 마구잡이식으로 자기 욕심을 위해 일으킨다면 아무리 통치자에겐 정당한 전쟁이라도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그건 정당한 전쟁이 될 수 없습니다. 민중이 모여 나라가 됩니다. 나라가 있어 민중이 있는 게 아닙니다. 민중을 잃으면 나라는 그 존재 이유가 없습니다. 경쟁에서 이겨 그것으로 이익과 혜택을 누리게 한다 해도 그것을 자신의 것이라고 소리치고 광고하고 다닌다면 그것도 바른 게 아닙니다. 역사의 진보는 누구의 것이 아니고 누구 한 사람이 주인이 되어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역사의 퇴보(退步)입니다. 정치권력이든 종교 권력이든 권력을 가진 이가 주인이 되어 일어나는 진보는 진보로 꾸며진 퇴보일 뿐입니다. 정말 제대로 된 진보의 역사는 모두가 그 진보의 주인이 되어 나아가는 역사입니다. 그러니 누구의 덕으로 진보가 이루어졌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 한 회사가 잘 되려면 사장이 모든 발전과 성장의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장은 사장의 몫에서 직원 각자는 직원 각자의 몫에서 서로 더불어 그 발전과 성장의 주인이 되어야 그 회사는 진짜 앞으로 나아가는 진보의 역사를 만들어갈 겁니다. 

 기쁨이 사물과 통한다는 말은 사물을 통하여 기쁨을 누린다는 말입니다. 구체적인 무엇을 통해 기쁨을 누리게 되는 사람은 자칫 무엇인가를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려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덕으로 모든 역사가 진보하고 있다고 그 진보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절대 역사의 앞자리에 서서는 안 됩니다. 그는 민중의 적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 이는 정말 깨우친 사람이 아닙니다. 정말 제대로 깨우쳤다면 어찌 홀로 구체적인 무엇인가만을 소유하며 자기 자신만이 역사의 주인이라 하겠습니까. 종교 권력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난한 사람들 사랑하라 이야기하면서 스스로는 거대한 궁전에 들어앉아 금반지 끼고 이야기하니 그 종교의 밖에서 보면 웃긴 소리일 뿐입니다. 거대한 궁전도 금반지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 교회 건물도 그런 구체적인 무엇으로 자기 종교의 성스러움을 나타내고 그것을 기쁨을 누린다면 그런 종교는 이미 민중에서 멀어진 종교일 뿐입니다. 말만 가난이니 사랑이니 이야기할 뿐이죠. 그런데 날도둑놈도 그런 이야기는 할 수 있습니다.      

 ‘친애하면 마음’이란 구별해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읽힙니다. 차별하여 사랑하는 사람이 어찌 어진 사람이 되겠습니까. 그 사랑받는 이에겐 좋은 사람이지만 부당하게 제외당한 민중은 어찌 되겠습니까. 권력자의 가족이란 이유로 특혜를 누리고 살아간다면, 그것을 보는 민중은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습니까. 잘 몰라서 그렇다고 어설픈 변명으로 돌려지지 않을 겁니다. 자기 노력이 무시되고 억울함이 깊어지는 사회, 차별이 일상이 된 사회, 그런 사회는 정말 안 될 사회입니다. 그런 사회의 지도자가 아무리 자기 자신을 포장해도 그는 절대 어진 사람이 아닙니다. 위선의 존재가 되면 되었지 절대 어진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천시(天時)이란 자연이 흘러가는 시간을 이야기합니다. 사실 이 부분 한문을 읽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는 자연이 흘러가는 그 시간을 자연히 따라가지 않고 살피는 이도 착한 사람이 아니라고 읽어보려 합니다. 사실 자연의 흐름에 그냥 하나 된 이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없습니다. 날 때 나고 죽을 때 죽을 뿐, 굳이 때를 계산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자연의 시간을 살피고 하늘이 복을 더 주는 날을 살피는 사람은 사실 무척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설마 하늘이 누구에게 더 복을 줄까요? 하늘, 즉 신의 앞에 누가 더 귀하고 누가 덜 귀할까요. 그런데 그 신이 더 복을 주는 시간이란 것이 어디 있을까요? 그냥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땀을 흘리는 그 시간, 시간의 흐름도 모르고 열심히 살아가는 아무개의 삶이 그저 착한 이의 삶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한 사회에서 이로운 일이 있으면 해로운 일도 같이 일어납니다. 다르지 않습니다. 집값 올라가면 가진 이들은 좋아합니다. 그런데 가난한 이는 더 힘들어집니다. 어느 산업이 발달하면 밖에서 보면 화려합니다. 그 사업을 이끄는 기업의 총수는 번쩍번쩍 화려한 삶을 삽니다. 그 화려함에 속아 모두가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 보이지 않은 안을 보면 발전을 위하여 많은 이들이 죽어갑니다. 지금도 산업체에서 하루에 2~3명의 노동자가 죽어갑니다. 이런 잔혹한 노동 현장이 전염병보다 더 무섭습니다. 정말 제대로 된 통치자, 즉 군자라면 이 둘이 하나로 이어져 있단 것을 알아야 합니다. 화려함만 강조하며 민중을 속이고 자기 자신도 그저 그 화려함 속에서 누리며 산다면 그는 위선의 지도자일 뿐입니다. 머리 좋은 독재자일 뿐입니다.      

 잘못된 명예는 자기 아집일 뿐입니다. 권력자란 명예, 남들 앞에서 대단하다는 그 명예에 미쳐 그냥 민중의 아픔을 보지 못하면 그만큼 쓰레기 같은 권력자는 없을 겁니다. 그런 이가 무슨 선비이고 무슨 좋은 지도자 혹은 관리일까요. 그 명예 따위를 버리고 아집에서 벗어나 민중의 눈물을 향할 때 그때 진짜 좋은 지도자가 되겠지요.      

 “자기 몸을 망치고 그 진실하지 않으면, 남에게 일을 시키는 이가 아닙니다.”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지 않은 이들은 자기 자신을 혹사합니다. 자기 스스로 생각하여 살기보다 남의 이야기에 빠져 자신을 지키지 못합니다. 자기 자신도 스스로 능동적으로 이끌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남에게 일을 시키는 사람이 될까요. 된다 해도 제대로 이끌지 못할 겁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이제 돈 많은 나라라고 높여주면 스스로 대단한 지도자라 자아도취에 빠진 지도자를 생각해 봅시다. 겉으로는 그만큼 고귀한 것이 없지만 속으론 자기 아집으로 가득하고 그 아집도 남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참으로 부실한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니 그의 귀에 민중의 아픔이 들릴 수가 없습니다. 민중의 아픔을 듣지 못하는 이가 어떻게 민중을 이끌 수 있을까요? 말이 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의 기쁨도 모르고 사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 이들은 자기 자신은 그만 잃어버리고 남의 기쁨을 위하여 소비되어 버립니다. 참 슬프지요. 권력자도 남의 시선 앞에 노비가 되어 버리면 그도 스스로 민중을 위하여 고민하기보다는 자기 명예를 위하여 고민하며 민중을 이용하여 그 명예를 누리려 하겠지요. 그도 그렇게 남의 시선에 노비가 된 불쌍한 사람이지만 동시에 민중을 이용하여 좋은 걸 홀로 누리려는 참 나쁜 권력자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권력자의 시대를 살고 있는지 그리고 살게 될지 돌아보게 됩니다. 그 돌아봄은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다짐이 되어야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그저 관념의 조각으로 잊힐 그 무엇이 될 뿐이니 말입니다. 오늘 <장자>의 말이 참 좋습니다.     


유지승 옮기고 풀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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