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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Apr 25. 2022

진리의 자리는 어디죠?

유대칠의 장자 읽기 2022 04 25

莊子 外篇 第22篇 知北遊 第6

장자 외편 제22편 지북유 제6     


동곽자(東郭子)가 장자(莊子)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도는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장자(莊子)가 답했습니다. “아니 있는 곳이 없습니다.”

동곽자가 말했습니다. “조금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셔야 제가 알아듣겠습니다.”

장자가 말했습니다. “땅강아지나 개미에게 있습니다.”

동곽자가 말했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리도 낮은 곳에 있단 말입니까?”

장자가 말했습니다. “돌피나 피 따위에 있습니다.”

동곽자가 말했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럼 더 낮은 곳에 되는 것 아닙니까?”

장자가 말했습니다. “기왓장이나 벽돌 조각에 있습니다.”

동곽자가 말했습니다. “아니 어떻게 더 심해지십니까?”

장자가 말했습니다. “똥이나 오줌에 있습니다.”

동곽자는 더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東郭子問於莊子曰:

동곽자문어장자왈

「所謂道,惡乎在?」

소위도 오호재

莊子曰:「無所不在。」

장자왈 무소부재

東郭子曰:「期而後可。」

동곽자왈 기이후가

莊子曰:「在螻蟻。」

장자왈 재루의

曰:「何其下邪?」

왈 하기하야

曰:「在稊稗。」

왈 재제패

曰:「何其愈下邪?」

왈 하기유하야

曰:「在瓦甓。」

왈 재와벽

曰:「何其愈甚邪?」

왈 하기유심야

曰:「在屎溺。」

왈 재시뇨

東郭子不應。

동곽자불응


풀이: 철학을 하면 진리(眞理)의 자리에 관하여 궁리하게 됩니다. 과연 진리는 어디에 있을까요? 왠지 아주 신성하고 초월적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있진 않고 어디 초월의 공간, 즉 하늘나라 어디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여간 오랜 시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울고 웃고 미워하고 사랑하는 너무나 변덕스러운 사람의 공간에 있지 않을 것이라 믿고 산 위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산 위에서 수도 생활을 합니다. 하지만 그곳에도 진리가 없단 것을 알고, 산 아래로 내려옵니다. 동곽자(東郭子)는 장자에게 묻습니다. 진리의 자리를 말입니다. 과연 진리는 어디에 있을까요? 대단한 철학자에게 진리의 자리를 물을 때 우린 은근히 진리란 초월의 자리에 있다는 말을 기대할지 모릅니다. 신의 품이라거나 신의 옆이라거나 말입니다. 장자는 없는 것이 없다고 합니다. 아니 있는 곳이 한 곳도 없다고 말입니다. 진리가 그렇게 모든 곳에 있단 말을 들으면 우린 그 말 뒤에 무엇인가 깊은 뜻이 숨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합니다. 한자 期(기)는 구체적으로 말해 달란 말입니다. 그런데 땅강아지와 개미라고 합니다. 기어 다니는 존재에게 있단 말입니다. 당시는 지금보다 땅강아지나 개미를 보기 쉬웠겠지요. 그러나 그 말은 그렇게 흔하고 그렇게 낮은 곳에 있단 말이 됩니다. 우리 사람의 머리도 아니고 우리 사람이 쉽게 죽여 버릴 수 있는 그런 존재에게 있단 말에 조금 실망해 다시 묻습니다. 그러나 논에서 자라는 풀인 돌피라고 합니다. 이젠 동물도 아니고 식물이라 합니다. 그것도 대단치 않은 식물이라 합니다. 이것도 아니다 하여 다시 질문합니다. 그러니 그 답은 똥과 오줌입니다.      

진리의 자리는 종교를 가진 이들에겐 신의 자리입니다. “신이 어디 있는가”라고 묻는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런데 신은 개미 같은 벌레에게 있고 돌피 같은 식물에게 있고 똥오줌과 같은 배설물에 있다 한다면 참 당황스럽겠지요. 신의 자리라면 말로는 어디에 있다 하지만 어디에서나 신을 만나진 않습니다. 신을 경험하기 위해 성지 순례를 떠나는 이도 있습니다. 신을 만나기 위해 신성하게 만들어진 건물인 성전을 찾기도 합니다. 즉 말로는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디에나 있으면 신은 대단한 종교 지도자에게도 있지만, 개미와 똥오줌에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굳이 신을 만나기 위해 특정 장소를 찾을 필요도 없고 특정 대상물의 도움을 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어디에나 있으니 말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런 물을 던지는 나에게도 있습니다. 그러니 진리가 어디 있는지 굳이 찾아 자기를 버리고 갈 필요가 없습니다. 농사꾼이 일하는 밭의 개미와 논의 돌피에 있다면 농사꾼의 땀에도 있을 겁니다. 그리 생각하면 자기 삶의 공간 바로 거기가 진리의 자리란 말입니다. 진리는 우리 삶의 자리를 떠나 있지 않습니다. 아니 있는 곳이 없다면 바로 우리 삶의 자리 역시 진리의 자리이니 말입니다. 그러니 동곽자의 질문에 장자는 흔한 것을 나열합니다. 바로 당신의 자리가 진리의 자리란 것을 깨우치란 듯이 말입니다. 


유대칠 옮기고 풀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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