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25일
주올(株杌)
작은 화단에 꽃씨를 뿌리고 채소를 심었다. 그리고 매일 물을 주고 이런저런 것을 살핀다. 어느덧 그냥 나의 일상, 그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어느새 심은 장미에서 꽃이 피고, 저마다 다른 크기와 모양의 씨앗이던 해바라기, 코스모스, 나팔꽃 등등의 여러 꽃씨가 싹이 되어 올라와 서로 다른 크기와 모양으로 자라고 있다. 보고 있으면 참 마음이 편하다. 종종 길고양이가 화단을 지난다. 마시라고 물을 두고 먹으라고 약간의 밥을 둔다. 종종 나의 화단 구석에 앉아 쉬기도 하고, 이젠 나를 보면 멀리 달아나지도 않는다. 그 역시 보고 있으면 참 마음이 편하다.
그냥 보고 있으면 좋다. 그냥 더불어 있는 듯하여 말이다. 내가 물을 주고 거름을 준다고 하여 그냥 받기만 하지 않는다. 꽃으로 나를 웃게 하고 싹으로 나를 평안하게 한다. 무엇이 잘못되어 마르면 내 마음도 편하지 않고 아프다. 그러니 그냥 보고 있으면 좋고 편한 것이 아니라, 더 정확한 것은 그냥 더불어 있으면 좋고 편하다. 엄청나게 많은 채소를 주지 않아도 된다. 장미꽃이 아주 많이 피지 않아도 된다. 그냥 그들이 있는 대로 그렇게 있으면 그만이다. 더는 바라지도 않고 바라지 않으며 실망하지도 않는다. 그냥 매일 더불어 있는 시간이 나에겐 명상의 시간이다.
주올(株杌)이란 말이 있다. 그냥 말 그대로는 경작에 방해가 되는 거다. 많은 수확을 위해 그냥 두면 안 되는 거다. 밭과 논 가운데 쓸모없이 놓인 나무 밑동이나 어디에도 쓸데없어 보이는 잡초의 밑동과 뿌리가 주올이다. 더 많은 걸 얻으려는 마음에 걸리는 것, 그것이 주올이다. 그것이 번뇌가 된다. 없애야 하는데 없애지 못하니 말이다. 그런데 없애려는 마음, 어쩌면 그 마음이 이미 주올일지도 모른다. 사람도 주올이 세상이다. 친구도 주올인 세상이다. 내 일에 방해가 되면 사라지길 바라는 주올말이다. 홀로 성공하길 바라는 이에게 더불어 살라는 말도 주올이다. 홀로 앞서 성공하기 바쁜 데 자신의 길을 막아서니 말이다. 그렇게 다 뽑아버리고, 잘라버리면 그냥 홀로 있다. 나는 그냥 매일 나에게 명상의 시간을 주는 화단의 친구들이 좋다. 잡초가 있어도 크게 도를 넘어서지 않으면 그냥 둔다. 자기도 살려는 것이니 그 삶의 치열함을 굳이 주올이라 여기며 죽이고 싶지 않다. 더 많이 수확하려는 마음이 없어 주올이 크지 않다. 주올이 없으니 그냥 더불어 있을 수 있다. 내가 그들을 보며 좋듯이 그들도 나를 보며 좋은, 서로 주올이 아닌 더불어 있음 속에서 나는 참 편하다.
2022년 5월 25일
유대칠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