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야고보서 읽기 3
야고보가 쓴 편지
유지승 옮기고 풀이함
우리가 청해야 하는 것은 어찌 더불어 잘 살 것인가에 관한 슬기로움입니다.
5. 혹시나 여러분 가운데 슬기가 부족한 이가 있다면, 그 역시 하느님께 청해 보세요. 나무람 없이 기꺼이 베푸시는 하느님께선 기꺼이 슬기를 내어주실 겁니다.
如是我聞
하느님에게 청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신에게 간청해야 할 바로 그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을 야고보는 ‘슬기’라고 합니다. ‘지혜’ 말입니다. 신에게 간청하고 우리가 이루고자 노력해야 하는 우리의 모습은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슬기로운 사람’입니다. 똑똑한데 슬기롭지 못한 이들이 얼마나 우리 민중을 힘들게 했는지 생각해봅시다. 과거 노예가 있던 세상, 노예를 지배하던 이들은 얼마나 똑똑했다요. 그들만 홀로 글을 알고, 그들만 홀로 지식을 쌓아갔습니다. 그렇게 그들만 홀로 똑똑했지만 그들은 더불어 살아가는 슬기를 가지지 못했고 가질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노예를 그리 괴롭히고도 더불어 잘 사는 방법을 궁리한 이는 많지 않았겠지요. 참다 참다 더는 참아 일어난 민중 항쟁으로 억울한 세상은 다른 세상으로 천천히 진화해갔습니다. 19세기 100년 이 땅의 민중항쟁과 20세기 전태일의 외침을 보세요. 그들이 어디 똑똑한 사람이었나요. 그들은 슬기로운 이들이었습니다. 홀로 똑똑하다고 홀로 하느님에게 더 가깝다고 홀로 더 강하다고 홀로 더 많이 가지고 있다고 아집 속에서 살아가는 이가 아니라, 가난으로 배우지 못해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돈이 없어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해 아프고 힘든 이들의 아픔을 남의 아픔이 아닌 우리의 아픔으로 살았던 바로 우리입니다. 더불어 있는 바로 우리말입니다. 슬기의 자리, 우리 역사를 진화시키는 그 슬기의 자리는 바로 여기 우리였습니다. 민중이었단 말입니다. 왜냐고요. ‘슬기’란 것은 어찌 더불어 잘 살지 궁리하는 이에게만 가능합니다. 홀로 누리는 이들에게 슬기란 처음부터 있을 수가 없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가 하느님에게 간청해야 하는 것, 그렇다고 간청하며 수동적으로 가다리 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자기 자리에서 애쓰며 궁리해야 하는 바로 그런 모습으로 간청해야 하는 것은 슬기입니다.
2022년 10월 10일
유지승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