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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May 18. 2023

'너'

나와 더불어 전체를 이루는 나의 벗

‘너’     


나는 수많은 너와 살았다. 

나의 지난 모든 순간 

나는 항상 너와 있었다. 

너는 

때론 사람으로 나에게 다가와 가족으로 연인으로 벗으로 있었고

때론 꽃으로 나에게 다가와 해바라기로 민들레로 장미로 나팔꽃으로 있었다.

나는 수많은 너를 만나 대화하며 살아왔다. 

내 삶의 어느 한순간도 나는 나만이 홀로 있지 않았다. 

너는 나와 더불어 우리를 이루는 모두다. 

나를 나로 있게 하는 우리라는 전체의 모두다. 

나는 너에게 너다. 

네가 너에게 나이듯.

수많은 네가 나를 만나 나와 대화하고 나를 자라게 했다. 

너와의 만남과 너와 대화가 나란 존재를 이루는 수많은 겹을 이루었다. 

그 겹 하나하나가 모이고

그 겹 서로 서로가 또 다른 인연으로 이루어지며

나는 내가 되었다.

나는 부분 없이 하나의 고정된 무엇이 아니라, 

수많은 겹, 그 부분으로 이루어진 전체다.

그 겹은 나 홀로 이루지 못한다.

곁은 항상 나와 너가 만나 대화할 때, 나와 너란 둘 사이가 하나 되며 생긴다. 그렇게 생긴 겹은 나는 나에게 너와 만나 이룬 나이고, 너는 너에게 나와 만나 이룬 너다.

나와 함께 있다고 모두가 나와 더불어 겹을 이루지 못한다.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만나지 못하고 대화하지 못할 수 있다.

아니 그런 함께 함이 더 많다. 

그저 자기 자신의 욕심, 그 욕심으로 만들어진 관념의 틀 속에 나를 구속하려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때론 국가와 민족이란 이름으로!

때론 가족이란 이름으로!

애국이니 충성이니 사랑이니 듣고 좋은 말로 나를 자신의 관념, 자신들이 원하는 모양으로 강제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았나!

듣기 좋은 폭력이었다. 

폭력이 꼭 ‘주먹’과 ‘욕’만으로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때론 무언의 모습으로 다가와 나를 지배한다. 

마치 스스로 선택한 삶이란 듯

그 모든 건 결국 스스로 결정한 것이란 듯

자기 자신의 책임을 피하려

무언으로 다가와 나를 지배한 폭력이 얼마나 많았나!

나를 지배하려는 이 모두는 나와 더불어 우리라는 전체를 이루는 너가 아니다. 

오히려 내 영혼의 균이다. 

내 혼을 병들게 하는 내 영혼의 균이다. 

그 균이 국가이고 민족이고 가족일 때, 

그 병은 더 아프다. 

마치 심장이 균이고 뇌가 균이 되어 버린 셈이니 말이다. 

나에게 참된 너는 균이 아닌 나를 나로 있게 하는 존재다. 

나와 더불어 나를 만들어가는 내 희망의 반쪽이다. 

온전히 너만으로 내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물론 나만으로도 내가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겹은 나와 너 하나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서로를 품은 나와 네가 있어야 한다.     


2023.05.18.     

유대칠

커피 한 잔 마시며 서재에서...





바람을 찍다. (금호강) 유대칠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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