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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May 18. 2023

'우리'

더불어 울때 눈물로 증명되는 것이 우리다.

우리     


너의 아픔이 남의 아픔일 때

나에게 너는 우리가 아니다.

너의 아픔이 남의 아픔이 아닌 나의 아픔일 때 

나에게 너는 우리다.

나의 아픔은 나의 아픔이다.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나의 억울함은 온전히 나의 억울함이다.

정말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왜?

억울해 아파 울고 있는 나, 

그렇게 당하는 나,

그런 나와 

그렇게 울고 있는 나를 바라보는 내가 다르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아픈 나는 나에게 그냥 구경거리가 아니다.

그것을 보는 내가 아프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의 아픔은 그렇지 않다.

너의 아픔은 너의 아픔을 바라보는 나에게 나의 일이 아니다.

남의 일이다.

구경거리다.

그러니 조금 슬픈 광경에 잠시 슬프기도 하지만

온전히 나의 슬픔은 아니다.

그냥 슬픈 영화 한 편의 슬픔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게 너의 아픔이 나에게 남의 아픔인 곳

그곳에 우리는 없다.

우리는 나와 네가 만나 더불어 대화함이다.

참으로 제대로 만나 대화한다면,

나는 나이고 

너는 너라고 하지 않는다.

너의 아픔이 우리 가운데 나의 아픔이다.

나에게 그 아픔은 구경거리가 아니라,

우리라는 주체의 아픔이며

나는 그 우리라는 주체의 한 겹이기에 

그 아픔을 피할 수 없다.

너의 아픔은 그렇게 우리 가운데 나의 아픔이 된다.

참으로 제대로 만나 대화한다면, 

그렇게 우리라는 주체가 되어 

나의 아픔이 너의 아픔이고 

나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다.

서로의 아픔이 서로에게 구경거리가 아니다.

그게 우리다.

너의 아픔을 내가 의심해 따진다면

이미 그곳에 우리는 없다.

너는 나에게 남이고 

나도 너에게 남이다.

그저 물리적 공간에 함께 있을 때

더불어 있지 않다.

우리는 우리인가?

너의 아픔은 우리 가운데 나의 아픔인가?

여전히 우린 우리가 아닐지 모르겠다.

...

어쩌면 

우리의 존재는 더불어 울 때 눈물로 증명되겠다.     


2023. 05. 18

유대칠... 비오는 날... 어제 심은 해바라기를 걱정하며 글을 적는다.



금호강가 유대칠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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