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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Jul 21. 2023

지혜는 말이 아닌 삶이 되어야 한다.

야고보의 편지, 더불어 읽기

지혜는 말이 아닌 삶이 되어야 한다.     


4. 그런데 그 참고 기다림이 완성된(τέλειον) ‘행위(ἔργον)’를 갖게 하세요즉 당신이 부족하지 않도록 완성되고(τέλειοι온전하게(ὁλόκληροι하려는 겁니다.

(ἡ δὲ ὑπομονὴ ἔργον τέλειον ἐχέτω, ἵνα ἦτε τέλειοι καὶ ὁλόκληροι, ἐν μηδενὶ λειπόμενοι.)

(헤 데 휘포모네 에르곤 테레이온 에케토 히나 에테 텔레이오이 카이 홀로클레로이 엔 메데니 레이포메노이)     


‘있는 것’은 ‘가능하게 있는 것’과 ‘현실적으로 있는 것’이 있다. ‘씨앗’은 아직 ‘나무’가 아니다. 나무가 될 가능성으로 있으며, 현실적으로 씨앗일 뿐이다. 씨앗은 나무를 품고 있지만 그냥 가만히 있다고 나무가 되진 않는다. 나무가 되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흙의 양분을 열심히 받아야 하고, 지나는 물기 하나 놓치지 않고 품어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자기 살을 가르고 싹을 내어야 한다. 아직 끝이 아니다. 햇빛을 받고 바람을 이기고, 지나던 짐승이 잎을 먹고 가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잎을 내어야 한다. 그 모든 고난의 끝에 씨앗은 드디어 나무가 된다. 끝(τέλος)에 도달함으로 완성된단(τέλειος) 말이다.      


‘참고 기다림’이 그저 생각에 그친다면, 그건 진짜 ‘참고 기다림’이 아니다. 누구도 생각할 수 있다. 누구도 모두의 좋음을 위해 참고 기다리는 자신을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생각에 그친다는 점이다. 생각에만 그친다면, 그것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현실이 되어야 한다. 씨앗이 고난 끝에 나무를 완성하듯이 그렇게 생각 속 ‘참고 기다림’은 애씀의 끝에 현실의 ‘참고 기다림’으로 완성되어야 한다. 그때 서야 진짜 ‘참고 기다림’이 된다.     


이기심으로 살아가기가 가장 편하다. 아집 속에서 남을 무시하며 자기만 대단하단 착각으로 살아가면 가장 편하다. 오직 자기 욕심만 생각하고, 오직 자기가 아는 것만 정답이라 생각하면 얼마나 편한가. 대화할 필요가 없다. 대화해도 결국 자기 답이 가장 확실한 정답이란 아집에 빠져 살아가니 말이다. 남의 생각을 이해하고, 그의 조건 속 애씀을 돌아볼 필요도 없다. 어차피 자기 답만 정답이고 그들의 답은 못 배우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의 오답이니 말이다. 그러니 굳이 그들 가까이 갈 필요도 없다. 말로는 가난한 이와 함께 하자 강론하고 설교해도 자기는 높은 자리 앉아 현실감 없이 그저 듣기 좋은 따스함이라곤 조금도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그만이다. 그도 아니면 오답만 아는 어리석은 이들이라며 자기 정답을 그들에게 명령하면 그만이다. 그런 건방진 명령조차 그들은 자신의 선행이라 착각하며 살아갈 게 분명하다. 그러곤 그냥 자기와 생각 비슷한 이들끼리 모여 자기 우월감에 취해 살아가면 그만이다. 자기들만 천국 가고, 자기들만 천국 갈 이들을 알아본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애써야 하는 게 바로 이 모든 걸 참고 기다리는 거다. 그게 좋은 사람이다. 좋은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많이 배운 티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모르는 아프고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의 아픔을 더불어 느끼며, 자기 이기심을 참고 모두의 좋음을 위해 애써 노력하며 기다리는 사람 말이다. 그렇게 생각 속 참고 기다림을 현실 속 참고 기다림으로 애써 노력하며 그 끝을 이루어 완성하는 이, 바로 그가 조금씩 더 온전한 사람이 되어가는 거다.     


지혜란 말이나 생각이 아니라, 현실 속 완성된 무엇이 되어야 한다. 삶이 되어야 한다. 그때 지혜는 제대로 진짜 지혜가 된다.


유지승 옮기고 씀

2023년 7월 21일

2021년 부석사 사진 유대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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