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고전읽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대칠 자까 Aug 14. 2023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살기

야고보의 편지, 더불어 읽기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살기     


7. 왜냐하면 바로 그런 사람은 주님에게서(παρὰ τοῦ Κυρίου무언가를 받을 것이라 상상도 하지(οἰέσθω말아야 합니다.


(μὴ γὰρ οἰέσθω ὁ ἄνθρωπος ἐκεῖνος ὅτι λήμψεταί τι παρὰ τοῦ Κυρίου.)

[메 가르 오이에스토 호 안트로포스 에케이노스 호티 렘프세따이 티 파라 투 퀴리우]     


‘기복신앙’이란 말을 듣는다. 사실 많은 종교는 복을 바란다. 신에게 복을 바란다. 단지 그 복의 종류가 무엇인가에 따라 많은 차이를 가진다. 정말 대단해 보이는 희생을 하는 걸로 보이지만, 그 희생의 이면(裏面)엔 그 희생으로 신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을 수 있다. 혹은 다른 이들보다 자신이 신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섰다는 걸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을 수 있다. 왜 신에게 더 잘 보이고 싶어 할까? 어쩌면 구원 혹은 천국이란 행복 때문일지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희생으로 보이는 그 행위는 자기 이기심의 드러남이다. 신에게 자기 자신이 더 가까이 있다는 것을 보이고자 하는 마음도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그 역시 자기 이기심의 드러남이다.     


이기심을 저리 두고 이타심으로 살아가는 이에게 희생은 의도된 행위가 아니다.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이에겐 어떤 목적으로 그리 사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것이 자연스러운 길이기에 그렇게 행할 뿐이다. 그 목적은 자연스러운 길을 그냥 자연스럽게 따라가 도달하게 되는 그런 자연스러움일 뿐이다.     


그런데 이기심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항상 계산한다. 이 일은 얼마나 신에게 다가간 것이고, 또 저 인은 신에게 어떤 복을 받을 것인지 말이다. 그런 이기심의 신앙은 항상 의도된 목적성으로 가득하다. 결국 욕심으로 가득하다. 신에게 무엇인가를 받을 욕심, 신에게 더 다가가려는 욕심, 그리고 자기 자신이 신에 무엇을 받은 특권의 사람이란 욕심, 자신이 신에게 더 가까운 사람이라는 욕심, 이런저런 욕심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런 욕심을 내려두고서야 신은 신으로 마주할 수 있다.      


신을 만나러 가는 가장 자연스러운 길을 그저 자연스럽게 지금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과 더불어 잘 살아감이다. 더불어 잘 살아야지 하는 욕심도 없이 어느 순간 그것이 나의 삶이 되고, 그 ‘더불어 있음’ 가운데 나도 어떤 특별한 무엇도 아닌 하나, 아무것도 아닌 하나가 되는 것, 그리고 그것에 대한 아무 감정 없이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것, 그것이 가장 잘 신을 만나러 가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유지승 옮기고 씀




매거진의 이전글 '믿음'이란 무엇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