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고전읽기

낮은 자리, 더불어 높아지려는 이들의 자리

야곱보의 편지, 더불어 읽기

by 유대칠 자까

낮은 자리, 더불어 높아지려는 이들의 자리


9. 또 낮은 자리의 형제는 자신의 높음 가운데 있음을 자랑하라.

(Καυχάσθω δὲ ὁ ἀδελφὸς ὁ ταπεινὸς ἐν τῷ ὕψει αὐτοῦ)

[카우카스토 데 호 아델포스 호 타페이노스 엔 토 휩세이 아우투]

더 높은 곳에 있으려 한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더 높은 곳에 서 있다 생각되면, 자기보다 낮은 이들 보며 즐거워한다. 그들을 보며 자신의 높음을 확인하니 말이다. 결국 낮은 자리의 사람은 그들에게 자기 즐거움의 수단이 될 뿐이다. 그리 생각하면 높은 곳의 즐거움이란 참 이기적이다. 더 많이 배웠다며, 덜 배운 이를 쉽게 무시하는 이를 보기 어렵지 않다. 덜 배워서 그렇게 산다는 참 나쁜 말도 아무렇지 않게 한다. 많이 배웠지만, 지혜롭진 않아서다. 더 많은 재산을 가졌다며, 쉽게 덜 가진 이를 무시하는 이도 있다. 자본의 세상에서 자신이 너무나 당연히 행복한 사람이고, 더 정답을 아는 사람이란 생각에 아무렇지 않게 가지지 못한 이를 무시하거나 조롱한다. 많이 가졌지만, 지혜롭진 못해서다.


입으로 진보(進步)를 이야기해도 막상 자기 구체적 삶에서 무시와 조롱으로 남을 대하는 이에게 행복은 참 잔인하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진보의 가치는 참으로 서글프다. 스스로는 진보의 길이 '선'이라 자평하지만, 그 진보는 입에서 나와 바람 소리와 함께 사라진 진보일 뿐이다. 참 진보는 비록 복잡한 논리와 이론으로 가득하지 않아서, 나만이 홀로 높은 자리에 올라가 스스로 선지자가 되려는 게 아니라, 결국 모두가 더불어 역사의 주체가 되어 평등이란 이름으로 더불어 나아감이다. 더불어 높아져 감이다. 자기 눈 아래 부조리의 삶에서 힘겨움 이를 보며 자신의 높음을 즐기는 게 아니라, 자기 옆 자신과 더불어 울고 웃으며 나아가는 같은 높이의 걸음, 그 걸음의 벗, 그 벗의 얼굴에 보이는 땀, 그 땀에 비친 자기 모습에 즐거워하는 거다. 자기 땀에 비친 벗의 모습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게 역사의 주체가 되어 더불어 높아져 감이 참 행복인 이들이 더불어 삶의 주체들이다.


홀로 높은 이의 걸음을 따라가기 힘들지만, 낮은 자리에서 더불어 높아져 가는 이를 슬퍼할 필요가 없다. 그 걸음이 참으로 역사의 뜻을 품으로 홀로 외로지 않은 걸음으로 더불어 가는 참 행복의 걸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낮은 곳, 더불어 있음을 자랑스러워해야 할 것이다.


높디높은 성당과 교회 그리고 권력의 자리를 부러워할 이유 없다. 화려한 학벌과 큰 소유를 부러워할 필요 없다. 지금 그 낮은 자리, 온갖 아픔이 눈물이 되고 그 눈물에 서로 손을 잡고 더불어 나아가는 그 자리가 가장 참된 뜻의 자리이며 가장 자랑스러운 자리이니 말이다. 정치가가 아니라도 성직자나 목회자가 아니라도 수도자가 아니라도 철학자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자기 삶의 자리에서 더불어 높아지려는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의 걸음이 더 가치 있는 걸음이기에 말이다.


유대칠 옮기고 씀



20211209_141839.jpg 운문사에서 유대칠 사진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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