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그냥

철학의 쓸모-'있다'는 말

2020 09 25

by 유대칠 자까

이름도 모를 잡초 하나가 '있다.' 그 잡초 하나를 위해 수많은 있음들이 자신의 있음을 내어주었다. 하나로 있기 위해서 말이다. 그 하나로 있기 위해선 그 애씀으로 그 잡초는 하나로 있다. 태양은 자신의 따스한 빛을 내어주었다. 값은 없다. 흐르는 물은 하늘로 올라가 비가 되어 그에게 자신을 내어 주었다. 그 역시 값은 없다. 그가 뿌리를 내린 흙도 자신을 내어 주었다. 그도 값을 부르지 않는다. 벌이 꽃을 날아다니며 그들을 번성하게 하지만 역시나 그 수고로움을 탓하지 않는다. 그렇게 참으로 많은 있음들이 자신을 내어 주어 그 잡초는 하나로 있게 된다. 여럿이 하나 된 것이 사실 우리 눈에 보이는 그 작은 잡초의 꽃이다. 작디작아 보아야겠다 마음먹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는 그 꽃도 우주가 하나 된 힘으로 더불어 있어 가능했다


'있다'는 것은 그러한 것이다. 잡초 하나도 그저 홀로 있지 않다. 자기를 내어주는 여럿과 더불어 있으며 자신도 언젠가 누군가의 거름으로 썩어질 것이고, 누군가의 먹이로 사라질 것이다. 그러니 그도 값을 부르지 않는다 '있다'는 것은 그렇게 하나로 '더불어 있음'이다


홀로 있겠다 생각하면 나누어지고 흩어진다. 그것이 죽음이다. 삶이란 여럿이 더불어 하나를 이룰 때 가능하다. 잡초를 이루는 그 여럿이 서로 자신의 몫을 주장하며 다툰다면 잡초 하나의 신비도 우리는 보지 못할 것이다. 생명이란 그렇게 더불어 있음으로 가능하다. 나를 이루는 수많은 세포들과 나에게 자신을 내어준 자연의 수많은 것들 그리고 나와 더불어 살아온 그 수많은 인연들이 나를 이루는 조각들이다. 그 수많은 자기 내어줌의 조각들이 모여 내가 되었다. 나로 있다. 그들이 없었다면 나는 이렇게 나로 있지 않고 살아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순수한 하나의 색이 아닌 여러 색으로 만들어진 무지개와 같다. 그 더불어 있음이 바로 나의 살아있음이다.


'있다'는 것을 부여잡고 고민하는 철학이 형이상학이다. 그 형이상학 위에 윤리학과 자연학이 가능하다. 온 철학이 가능하다. 내 철학의 그 시작인 형이상학의 '있음'은 '더불어 있음'이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말은 맞다. 그러나 그렇게 존재하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살아서 움직이고 웃고 우는 나는 항상 더불어 있다. 그 더불어 있음으로 나는 나로 있다. 그저 있음이 아닌 나로 있게 된다.


2020. 09. 25

홍성으로 강의를 가기 전

유대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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