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칠의 기도 읽기
성호경
Formula Trinitaria
(포르물라 뜨리니따리아)
In nomine Patris, et Filii, et Spiritus Sancti, Amen.
(인 노미네 빠뜨리스, 엣 삘리이, 엣 스삐리뚜스 상띠, 아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이 글은 온전한 문장이 아닙니다. 주어도 없고 술어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저는 그래서 이 글이 참 좋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어쩌면 제법 긴 부사구인 이 글귀를 우리 삶에 적용해 봅시다. “저는 오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부끄럽지 않게 살겠습니다.” “저는 오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빛과 소금이 되는 삶을 살겠습니다.” 저는 부사구뿐인 이 글귀가 이렇게 ‘나’라는 주어와 ‘살겠다’라는 술어와 만나 내가 항상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겠다는 다짐으로 들립니다.
라틴어를 하나씩 볼까요. 라틴어 In은 전치사입니다. 명사의 탈격을 지배할 때는 ‘~안에’라는 의미이고, 목적격을 지배할 때는 ‘~안으로’라는 뜻으로 많이 쓰입니다. 뒤에 이어 나오는 ‘이름’이란 뜻의 라틴어 명사 nōmen의 중성 단수 탈격이 nomine입니다. 그러니 in은 탈격을 지배하고 있는 거죠. 그렇게 ‘이름 안에’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런데 그냥 편히 ‘이름으로’라고 읽습니다. Patris는 아버지라는 뜻의 pater 명사의 남성 단수 소유격입니다. 소유격이니 뜻은 ‘아버지의’가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선 ‘성부의’가 됩니다. 그러면 이제까지 말을 다 합하면 ‘성부의 이름으로’가 되겠네요. et은 접속사입니다. 영어의 and와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Filii는 ‘아들’이란 뜻의 명사 fīlius의 남성 소유격입니다. Spiritus는 ‘심령(心靈)’, ‘숨결’, ‘호흡’ 등을 의미하는 spīritus의 남성 단수 소유격입니다. Sancti는 ‘성스러운’, ‘거룩한’이란 의미의 형용사 sānctus의 남성 단수 소유격으로 지금은 Spiritus를 꾸며주고 있습니다. 즉 ‘성스러운 숨결’ 혹은 ‘성스러운 심령’ 등이 되지만, 지금 여기에선 ‘성령’이 됩니다. 이제까지의 것을 정리해 보면, 이렇게 직역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성스러운 영의 이름으로”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 교리를 감안(勘案)하면,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령의 이름으로”가 되겠습니다.
아! 발음, 발음이 무엇이 그리 중요할까요. 라틴어 발음은 크게 고전 라틴어 발음과 그레고리안 성가 등에서 볼 수 있는 교회 라틴어 발음이 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교회 라틴어 발음을 따랐습니다. 하지만 이 기도, 이 글로 우리와 대화하실 분은 하느님이시죠. 그리고 어쩌면 하느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향한 다짐이기도 할 것이고요. 그러니 발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발음 제대로 못 한다고 우릴 미워할 하느님은 아닐 겁니다.
유대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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