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칠의 기도 읽기
영광송
Gloria Patri
(글로리아 빠뜨리)
유대칠 씀
Gloria Patri, et Filio, et Spiritui Sancto.
(글로리아 빠뜨리 엣 필리오, 엣 스삐리투이 상또)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Sicut erat in principio, et nunc, et semper, et in sæcula sæculorum. Amen.
(시꾿 에랏 인 쁘린치삐오, 엣 눙, 엣 셈뻬르, 엣 인 세꿀라 세꿀로룸. 아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아주 유명한 글입니다. 성당 다니시는 분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기도문입니다. 바로 ‘영광송’입니다. 영광은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령께 돌려집니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가 그의 『고백록』에서 말했든 하느님 없이 내가 없고 내 있는 모든 것에 하느님 계십니다. 함께 있다는 말도 온전하지 않습니다. 있는 모든 것이 하느님 품 안에 있기에 말입니다. 떨어져 있는 것은 함께 있을 수도 있고 떨어져 있을 수도 있지만, 하느님 품 가운데 있지 않으면, 그 가운데 하느님이 계시지 않으면 모든 것이 없기에, 함께 있다는 말로도 부족합니다. 온전히 하나란 말이죠. 그 온전한 하나임을 깨우치지 못해 우리는 하느님을 남으로 두고 살아갑니다. 그러니 하느님께 영광이 남의 영광이며, 나의 기쁨이 되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영광이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령께 있다면, 그 영광에서 우리가 남으로 되어 있는 건 아닙니다. 그 영광이 나의 기쁨이고 우리의 기쁨일 때, 하느님과 나는 온전히 하나가 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요.
사실 저는 이렇게 우리말로 옮깁니다. “한 처음에서와 같이 이때도 언제나 그리고 세세토록”이라고 말입니다. ‘한 처음에(in principio)’이라면 「창세기」와 「요한복음서」가 떠오릅니다. ‘한 처음에’ 하느님께선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그 좋음을 보셨습니다. 좋지 않은 건 없었습니다. 그것이 온 우주의 실체적 진실입니다. 그런데 그만 나는 남보다 조금 더 좋아지겠다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그 마음이 일어나면 남보다 조금 더 좋은 게 좋은 것이고 그보다 못한 게 나쁜 것이 됩니다. 좋고 나쁨이 생겨낸 것이죠. 하느님께서는 온 우주를 좋음으로만 가득하게 창조하셨는데 그 하느님의 영광이 온전히 온 우주에도 가득하게 그렇게 창조하셨는데, 우리네 욕심, 남보다 조금 더 좋아지겠다는 그 욕심이 선(善)과 악(惡)을 나누어 버렸습니다. 온 우주가 천국이었는데, 천국이 생기고 지옥이 생긴 거죠. 그런데 우리의 신앙이란 이 땅을 천국으로 복원시키려는 개별적인 애씀으로 가득합니다.
「요한복음서」를 봅시다. 온 우주는 하느님 없이 있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린 그것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어둠 가운데 빛을 보지 못하는 겁니다. 하느님은 온 우주를 좋음으로 창조하셨는데, 온 우주를 빛의 영광으로 가득히 채워 창조하셨는데, 우리 욕심으로 감긴 두 눈이니, 빛 가득한 세상을 살아도 우린 빛을 보지 못합니다. 감은 눈으로 스스로 어둠 속에서 오직 자기 욕심 하나에 의지해 살아갈 뿐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어쩌면 눈을 뜨는 겁니다. 욕심을 내려 두는 겁니다. 나만이 홀로 더 좋아야겠다는 욕심, 그 욕심을 내려 두고 모두 더불어 잘 있던 그 영광을 다시 이 자리에 복원하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린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그 ‘한 처음에’에서 그랬듯이, 모든 영광이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에게 있듯이 그리고 그런 하느님 없이 있을 수 없는 하느님과 온전히 하나를 이루며 더불어 있는 우리 모두에게 있었듯이, 욕심으로 살지 않고 모두가 더불어 좋음의 물결 하나하나가 되어 온 우주를 가득 채웠듯이 그렇게, 지금도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께 영광이 돌려져야 하고 우리도 그 영광 가운데 그 영광의 드러남이 되어 살아야겠습니다. ‘한 처음에서’와 같이 이때도 언제나 그리고 세세토록 말입니다.
라틴어로 한번 읽어볼까요.
Gloria Patri, et Filio, et Spiritui Sancto,
(글로리아 빠뜨리 엣 필리오, 엣 스삐리투이 상또)
Sicut erat in principio, et nunc, et semper, et in saecula saeculorum. Amen.
(시꾿 에랏 인 쁘린치삐오, 엣 눙, 엣 셈뻬르, 엣 인 세꿀라 세꿀로룸. 아멘.)
Gloria는 영광, 경의라는 뜻의 라틴어 여성 단수 명사 glōria의 단수 주격입니다. 주격이란 ‘은’, ‘는’, ‘이’ 그리고 ‘가’와 같은 주격 조사를 라틴어 명사에 더해주는 격 어미입니다. 즉 이 낱말은 우리말로 ‘영광이’라는 말입니다. 이 글귀의 주어란 말입니다. Patri는 ‘아버지’, ‘가장’ 등이라는 뜻의 남성 명사 pater의 단수 여격입니다. ‘여격’은 ‘~에게’라는 우리말 부사격 조사를 명사에 더해주는 라틴어의 격 어미입니다. 그러니 이 난말은 우리말로 ‘성부에게’가 됩니다. et은 접속사로 ‘그리고’ 혹은 ‘~와’라는 뜻입니다. Filio는 ‘아들’이란 뜻의 남성 명사 fīlius의 단수 여격입니다. 그러니 우리말로 ‘성자에게’가 될 겁니다. Spiritui는 ‘숨’, ‘심령’을 뜻하는 남성 명사 spīritus의 단수 여격입니다. Sancto는 ‘성스러운’ 혹은 ‘거룩한’이란 뜻의 남성 형용사 sānctus의 단수 여격입니다. 지금은 앞선 Spiritui를 수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말로 ‘성령에게’가 됩니다. Sicut은 ‘~처럼’이란 뜻입니다. erat은 ‘이다’와 ‘있다’라는 뜻의 라틴어 동사 sum의 직설법 반과거 능동 3인칭 단수입니다. in은 탈격 명사와 함께 사용할 때는 ‘~안에’라는 뜻이고, 목적격 명사와 함께 사용될 때는 ‘~안으로’라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지금 이 글에선 principio와 함께 사용합니다. 이 낱말은 ‘시작’, ‘기원’, ‘원리’라는 뜻의 중성 명사 prīncipium의 단수 탈격입니다. 탈격 명사와 함께 사용하니 ‘~안에’라는 뜻이고, 두 낱말을 하나로 연결해 보면 ‘처음에’가 됩니다. nunc은 ‘지금’ 혹은 ‘이제’라는 말이고, semper는 ‘늘’, ‘항상’이란 말입니다. sæcula는 ‘세대’라는 뜻의 중성 명사 saeculum의 복수 목적격입니다. sæculorum은 같은 낱말의 복수 소유격입니다. 한자어 ‘세세(世世)’는 ‘거듭된 여러 대(代)’를 의미합니다. 이와 유사한 표현이네요.
영광송 한번 기도해 봅니다.
유대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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