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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Feb 06. 2024

잡아함경1권 무지경(無知經) 세번째 우리말로 읽기

유대칠의 잡아함경 읽기 

잡아함경(雜阿含經)     


잡아함경 제1     


송(宋) 천축삼장(天竺三藏)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유대칠 한국어역     


잡아함경 5


무지경(無知經)

: 알지 못함에 관하여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머물고 계셨을 때 일입니다.

그때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색(色)’을 사랑하고 그것으로 기뻐하는 건 바로 괴로움을 사랑하고 그것으로 기뻐하는 겁니다. 괴로움을 사랑하고 그것으로 기뻐하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것을 깨우치지 못하고 욕심에서 벗어나지도 못합니다.      


이처럼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을 사랑하고 그것으로 기뻐하는 건 괴로움을 사랑하고 그것으로 기뻐하는 겁니다. 괴로움을 사랑하고 그것으로 기뻐하는 데 어찌 괴로움에서 벗어나 해탈할 수 있겠습니까.   

   

비구여! 색을 사랑하고 그것으로 기뻐하지 않는 것은 괴로움을 사랑하지 않고 그것으로 기뻐하지 않는 겁니다. 괴로움을 사랑하지 않고 그것으로 기뻐하지 않으면 그때 괴로움에서 벗어나 해탈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수, 상, 행, 식을 사랑하고 그것으로 기뻐하지 않으면 괴로움을 사랑하지 않고 그것으로 기뻐하지 않는 겁니다. 그렇게 괴로움을 사랑하고 그것으로 기뻐하지 않으면 해탈에 이를 수 있습니다.      


비구여! ‘색’에 관해 알지 못하고 깨우치지도 못하여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그 마음은 해탈에 이르지 못했으며,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한 마음은 해탈에 이르지 못했다면, 괴로움을 끊어내지도 못합니다. 이처럼 수, 상, 행, 식에 관해서도 알지 못하고, 깨우치지 못하고, 욕심을 벗어나지 못한 마음이라면 해탈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고, 그는 여전히 괴로움을 끊지 못하고 있을 겁니다.      


만일 색에 관해 잘 알고 잘 깨우쳤다면, 욕심을 벗어나 해탈에 이르렀을 것이고, 그는 더는 괴로움에 살지 않고 괴로움을 끊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수, 상, 행, 식에 관해 잘 알고, 잘 깨우치고, 욕심을 벗어나 있다면 그 마음은 해탈에 이르렀을 것이 분명하고 거는 괴롭지 않을 겁니다."     


그때 모든 비구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마음에 새겼다.     


유대칠은 이렇게 들었습니다.     


우리가 잘 안다고 하면 ‘색’을 잘 아는 겁니다. 지금 우리를 더 강하게 하고 더 부유하게 하고 더 높게 하는 걸 잘 아는 겁니다. 그러니 그런 것을 잘 아는 이들이 사람들 앞에서 자신 있게 이렇게 살라고 합니다. 남보다 더 강해져야 하고 더 부유해지고 더 높게 되는 삶을 소리치는 그 말에 힘을 가지는 건 그 말을 듣는 이들이 그 말이 전하는 그 모습이 자기 삶이 되길 바라는 마음, 즉 욕심이 있어서입니다. 결국 돈과 권력, 그것으로 세상을 보고, 돈과 권력, 바로 그것으로 답을 구하고자 합니다. 그 답은 항상 강자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공부도 강자가 되기 위해 합니다. 돈을 더 벌고 권력을 가지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런 삶은 항상 욕심이 긍정되고 더 욕심 가진 이가 되라고 소리칩니다. 그냥 마음 편하게 아무것도 아닌 자연과 하나 된 아집 없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하면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겁니다.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고 어느 소유도 영원하지 않으며 나 자신도 영원하지 않은 찰나의 존재일 뿐이라는 말이 어리석은 말이 됩니다. 어리석은 앎이 됩니다. 그런데 부처는 바로 이런 어리석은 앎이 바로 색을 제대로 아는 참된 앎이며, 그 참된 앎으로 살아가야 우리는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돈과 권력, 아니 다른 어떤 것이든 그것을 향한 욕심은 결국 나를 괴롭게 합니다. 그것에 더 가까이 하야하고 그것을 더 많이 차지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불안해서 충분함을 모르고 여전히 괴로워합니다.     


우리를 강자로 만들고 부자로 만드는 욕심의 앎과 말이 우리를 괴롭게 만드는 앎이고 말이란 말입니다. 오히려 그 욕심의 앎이 제대로 알지 못한 앎이었던 겁니다. 정말 제대로 알면 그것의 허망함을 보고 오히려 아무것도 아닌 자신에게 돌아와 아집을 하나씩 도려내겠지요. 그렇게 아집에서 벗어나 열반을 향한 해탈의 길, 그 구도의 길을 살겠지요. 비록 산속 출가수행자(出家修行者)가 아닌 일상 속 재가수행자(在家修行者)의 모습이라 해도 말입니다.


유대칠 옮기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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