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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Feb 07. 2024

주님의 기도, 라틴어로 읽기, 삶으로 기도하기. 1

유대칠의 기도 읽기

주님의 기도

Pater Noster

(빠테르 노스떼르)     


Pater noster, qui es in coelis,

(빠떼르 노스떼르, 뀌 에스 인 쳴리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 아버지, 당신은 하늘에 계시며     

sanctificetur nomen tuum.

(상띠피쳬뚜르 노멘 뚜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당신의 이름은 거룩히 빛나시며,     

Adveniat regnum tuum.

(앗베니앗 레늄 뚜움)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당신의 나라가 오시며,     

Fiat voluntas tua,

(피앗 볼룬따스 뚜아) 

아버지의 뜻이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sicut in caelo et in terra.

(시꿋 인 쳴로 엣 인 떼라)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말입니다.     

Panem nostrum quotidianum da nobis hodie.

(빠넴 노스뜨룸 꾸오띠디아눔 다 노비스 호디에)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오늘 우리에게 우리 하루의 양식을 주시고     

Et dimitte nobis debita nostra,

(엣 디믿떼 노비스 데비따 노스뜨라)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듯이

그리고 당신께선 우리 짐을 우리에게서 덜어주시고,     

sicut et nos dimittimus debitoribus nostris.

(시꿋 엣 노스 디밋띠무스 데비또리부스 노스뜨리스)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마치 우리가 우리의 짐을 덜어주듯이 말입니다.     

Et ne nos inducas in tentationem:

(엣 네 노스 인두까스 인 뗀따치오넴)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그리고 우리를 유혹에 이끌리지 않게 해주시고,     

sed libera nos a malo. Amen.

(셋 리베라 노스 아 말로. 아멘.) 

하지만 우리를 악에서는 자유롭게 하소서. 아멘.     


「주님의 기도」는 예수께서 직접 주신 기도입니다. 사람들이 궁리해서 만든 말이 아니라, 기도를 들어주실 분이 직접 기도를 이렇게 해야 한다고 주신 기도란 말이죠. 이 기도의 라틴어를 한 번에 다 읽을 순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할 이야기도 많아서 말이죠. 우리는 ‘주님의 기도’라고 부릅니다. 혹은 ‘주기도문’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그런데 이 기도문의 라틴어 이름은 Pater noster(빠떼르 노스떼르)입니다. 우리말로 하면 ‘우리의(noster) 아버지(pater)’, 조금 편하게 ‘우리 아버지’입니다. 왜 이름이 ‘우리 아버지’일까요. 흔히 라틴어로 된 교회 문헌은 그 문헌을 시작하는 앞 단어 두 개가 전체의 제목이 되곤 합니다. 예를 들어,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 『Rerum novarum(레룸 노바룸)』은 회칙을 시작하는 앞 두 단어가 Rerum novarum(새로운 사태)입니다. 그래서 이름이 그렇게 정해진 겁니다.      


하느님, 즉 신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시작합니다. 꼭 생물학적 ‘아버지에’ 한정하지 맙시다. 하느님은 생물학적 존재가 아니니 말이죠. ‘어버이’로 이해하되 개인적으로 문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버이는 존재의 원인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어버이로 인하여 우린 지금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어버이의 보살핌 속에서 자랍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 어버이를 대신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지만 말입니다. 존재 이유이며 보살피며 사랑하는 존재가 어버이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그런 분이시란 고백으로 이 기도문은 기도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또 중요한 말은 바로 ‘우리의’라는 말입니다. 누군가는 자신만 신이 선택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그들은 자신은 남보다 더 우월한 존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자기중심으로 이해합니다. 누구는 덜 신성하고 누구는 더 신성하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물론 그 기분은 하느님이 선택한 자신이고 말입니다. 이런 세상에선 누군가만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그들만의 하느님이란 말이죠. 그런데 하느님은 그렇게 누군가를 위해 있지 않고 누군가를 위해 천지를 창조하지도 않았으며, 누군가를 더 귀히 여기며 그의 안위를 위한 수단으로 다른 이들을 창조하지도 않았다. 하느님은 나의 하느님도 너의 하느님도 아닌 모두의 하느님, 바로 우리 하느님, 우리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동일하게 하느님의 품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누가 덜 자녀인 것도 아니고 누가 더 자녀인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우리 모두의 아버지인 하느님은 우리의 옆에 우리와 더불어 있지만, 동시에 우리 모두를 품으며 하늘에 계십니다. 하늘은 땅의 밖이 아니라, 땅을 품은 거대한 품입니다. 하느님은 바로 그 품이 되어 하늘에 계십니다. 밖이라 생각하지만, 밖이 아닌 땅과 더불어 있는 바로 그곳에 하느님, 우리의 아버지가 계시는 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편히 생각하는 “우리 아버지, 당신은 하늘에 계시며”라는 구절도 참 편히 아무 생각 없이 할 말은 아닙니다.     

 

라틴어를 볼까요.     

pater noster, qui es in caelis

(빠떼르 노스떼르, 뀌 에스 인 쳴리스)     


pater는 ‘아버지’는 뜻하는 남성 명사 pater의 단수 호격입니다. noster는 ‘우리의’라는 뜻을 가진 남성 형용사 호격입니다. 같은 격이니 이 둘은 서로 수식 관계입니다. 즉 하나의 뜻을 가집니다. 바로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qui는 관계대명사이며, 남성 단수 명사 호격의 관계대명사입니다. es는 2인칭 단수 동사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다’ 혹은 ‘있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동사 sum의 직설법 현재 능동 2인칭입니다. 여기에서 단수 2인칭이란 말은 주어가 2 인칭, 즉 ‘너’ 혹은 ‘당신’이란 말입니다. 하느님을 대상으로 하니 ‘너’가 아니라 ‘당신’이겠지요. in은 전치사입니다. 탈격 명사와 함께 사용하면 ‘~ 안에’라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caelis은 ‘하늘’을 의미하는 라틴어 남성 명사 caelus의 복수 탈격입니다.     

 

그러면 다시 이 부분만 읽어봅시다.      


pater noster, qui es in caelis

(빠떼르 노스떼르, 뀌 에스 인 쳴리스)

우리 아버지, 당신은 하늘에 계시며     


하느님을 향해 ‘우리 아버지’라고 고백하는 우리는 모두 한 가족입니다. 우리 아버지의 자녀이니 우리는 모두 한 형제자매입니다. 미움의 대상이 아닌 더불어 사랑한 이들이 바로 우리 모두입니다. 그런 우리 모두를 하느님을 하늘이 땅을 품으로 땅의 모든 것을 살리듯이 그렇게 우리를 품고 우리를 살리십니다. 


유대칠 옮기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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