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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Feb 08. 2024

주님의 기도, 라틴어로 읽기, 우리 삶으로 기도하기 2

유대칠의 기도 읽기 

주님의 기도

Pater Noster

(빠테르 노스떼르)     


Pater noster, qui es in coelis,

(빠떼르 노스떼르, 뀌 에스 인 쳴리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 아버지, 당신은 하늘에 계시며     

sanctificetur nomen tuum.

(상띠피쳬뚜르 노멘 뚜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당신의 이름은 거룩히 빛나시며,     

Adveniat regnum tuum.

(앗베니앗 레늄 뚜움)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당신의 나라가 오시며,     

Fiat voluntas tua,

(피앗 볼룬따스 뚜아) 

아버지의 뜻이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sicut in caelo et in terra.

(시꿋 인 쳴로 엣 인 떼라)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말입니다.     

Panem nostrum quotidianum da nobis hodie.

(빠넴 노스뜨룸 꾸오띠디아눔 다 노비스 호디에)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오늘 우리에게 우리 하루의 양식을 주시고     

Et dimitte nobis debita nostra,

(엣 디믿떼 노비스 데비따 노스뜨라)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듯이

그리고 당신께선 우리 짐을 우리에게서 덜어주시고,     

sicut et nos dimittimus debitoribus nostris.

(시꿋 엣 노스 디밋띠무스 데비또리부스 노스뜨리스)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마치 우리가 우리의 짐을 덜어주듯이 말입니다.     

Et ne nos inducas in tentationem:

(엣 네 노스 인두까스 인 뗀따치오넴)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그리고 우리를 유혹에 이끌리지 않게 해주시고,     

sed libera nos a malo. Amen.

(셋 리베라 노스 아 말로. 아멘.) 

하지만 우리를 악에서는 자유롭게 하소서. 아멘.     


하느님께선 하늘에 계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하늘은 우리 사는 땅의 밖이 아니라, 이 모든 땅을 품은 어버이의 품이라 했습니다. 그러면 하늘은 큰 품의 사랑, 하느님의 사랑이라 할 수도 있겠네요. 그 품 안에 있는 땅의 모든 것은 하늘의 밖, 즉 하느님의 밖에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품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게 바로 우리 모두의 운명입니다. 다른 길을 없습니다. 있는 모든 건 하느님과 남이 되어 있을 수 없습니다. 저기 저 돌도 저기 저 잡초도 어느 하나 하느님의 품 밖은 없습니다. 그렇게 하느님과 우리는 하나입니다. 하늘과 땅이 둘이 아니듯, 마치 둘로 보이지만 둘이 아니듯, 그렇게 하느님과 우리는 둘이 아닌 하나입니다. 서로에게 남이 아닌 하나란 말입니다.      


어버이가 자녀를 품고 사랑한다고 합니다. 사랑한다는 말에 기뻐하는 자녀의 모습이 어버이에게도 기쁨이 되어 다가옵니다. 즉 서로에게 기쁨이 되는 것이 하나로 있는 모든 것의 운명입니다. 여러 자녀가 있는데 누구의 사랑이 더 크고 누구의 사랑이 더 작다면, 그것은 바른 어버이의 모습이 아닙니다. 편애 없이 모두를 품을 사랑이 참 부모의 사랑입니다. 우리 어버이 하느님의 사랑도 그와 같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선 우리가 서로 도우며 서로를 남으로 보지 않으며 더불어 행복한 길을 스스로 가게 응원하며 계십니다. 직접 우리 하나하나의 마음을 움직여 서로 사랑하게 하고 모두가 더불어 행복하게 한다면, 그것이 정말 우리의 일일까요. 우리는 그저 조종기로 움직이는 기계일 뿐이겠지요. 자연이 자멸하지 않고 이렇게 진화의 여정을 걸치며 유지되는 건 서로를 향한 더불어 있음의 마음 때문일 겁니다. 우리 사람에게도 그런 마음으로 보고 있으십니다. 이기심을 내려 두고 이타심으로 서로를 위하며 더불어 행복하게 살라고 말입니다. 누군가에게 더 큰 복을 주지 않고 말입니다. 강대국이 더 큰 복을 받은 걸로 보이시나요. 그들이 저지른 죄악을 보세요. 지금 국제 사회에 일어나는 수많은 전쟁의 시작이 그들이 저지른 제국주의 시대의 폭력 때문입니다. 그게 하느님의 복으로 보이십니까. 아닙니다. 차라리 힘없지만, 남을 괴롭히지 않고 가난하게 자연과 더불어 산 산촌의 가난한 아무개가 더 하느님의 뜻과 하나 되어 사는 게 아닐까요.     


화려한 곳에서 화려한 말로 화려한 옷을 입은 이들이 공존이니 헌신이니 이야기하며 하느님에게 영광을 돌린다고 그것이 정말 제대로 된 영광일까요? 어쩌면 자기 자신의 화려함을 자랑하는 건 아닐까요? 그 자리에 하느님이 계실까요? 저는 그 가난한 산촌의 농부가 힘겨운 일을 하다 중간중간 “하느님이 고맙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그 작은 말에 더 귀하고 더 거룩하게 들립니다. 그 영광을 보시며 하느님께선 참 기뻐하시겠지요. 누구의 위에서 화려한 것을 세우고 화려한 옷을 입고 화려한 예식으로 하느님을 담을 순 없습니다. 하느님은 그런 한정된 곳에 담길 수 없는 무한하신 분이십니다. 무한은 유한을 넘어서니 말입니다. 그런데 유한한 우리가 무한을 향하여 나아가는 건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그 끝이 없는 무한을 향한 여전은 나라는 이기심, 나라는 아집, 그것을 하나씩 내려놓는 겁니다. 그렇게 하느님께서 아름답다 고백하셨던 창조의 그 세상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나만의 좋음이 아니라 모두의 좋음을 위해 살아가던 그 세상으로 말입니다. 그 세상에서 나란 존재의 유한한 욕심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허망한 것입니다. 그러니 자연히 모두가 모두를 위해 더불어 살아갔습니다. 유한의 욕심을 넘어선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우리 안에 품으며 또 우리 안에 놓인 하느님의 그 사랑이 그대로 우리 삶이 되게 그렇게 살아갔습니다. 온전히 우리 삶이 하느님을 드러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하느님께 돌려진 영광 그 영광은 그대로 우리 자신의 영광이기도 했습니다. 가장 온전히 가장 우리답게 존재하는 모습이니 말입니다.      


sanctificetur nomen tuum.

(상띠피쳬뚜르 노멘 뚜움) 

당신의 이름은 거룩히 빛나시며,     


하느님의 당신의 이름이 우리 삶에 빛나는 영광이 되게 하소서. 그 영광이 그대로 우리 삶이 되도록 해 주시고, 우리가 그 영광이 그대로 우리 삶이 되어 유한의 욕심에 구속된 삶을 버리고 무한한 당신의 사랑에 이르게 하소서. 부디, 당신의 영광이 그대로 우리 영광이 되어 살아가게 하소서. 저 역시 당신의 영광이 되는 삶이 내 삶이 되도록 내 욕심을 내리며 살겠나이다. 저의 귀에 이 구절은 참 귀한 고백으로 들립니다. 어찌 들으면 하느님에게 드리는 고백이며 동시에 나를 향한 다짐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라틴어를 살펴볼까요. sanctificetur는 ‘거룩하게 하다’ 혹은 ‘봉헌하다’ 혹은 ‘성스럽게 하다’라는 의미의 sānctificō 동사의 접속법 현재 수동 3인칭 단수입니다. nomen은 ‘이름’이란 의미의 중성 명사 nōmen의 단수 주격입니다. 주격이니 이 말이 sanctificetur의 주어가 되겠습니다. tuum은 ‘당신의’ 혹은 ‘너의’라는 뜻의 1/2변화 중성 형용사 tuus의 단수 주격입니다. 여기에선 nomen을 수식하면, 당신의 이름‘이란 뜻이 됩니다.     


다시 고백해 봅니다.      


sanctificetur nomen tuum.

(상띠피쳬뚜르 노멘 뚜움) 

당신의 이름은 거룩히 빛나시옵니다.


유대칠 옮기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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