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칠의 기도 읽기
주님의 기도
Pater Noster
(빠테르 노스떼르)
Pater noster, qui es in coelis,
(빠떼르 노스떼르, 뀌 에스 인 쳴리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 아버지, 당신은 하늘에 계시며
sanctificetur nomen tuum.
(상띠피쳬뚜르 노멘 뚜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당신의 이름은 거룩히 빛나시며,
Adveniat regnum tuum.
(앗베니앗 레늄 뚜움)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당신의 나라가 오시며,
Fiat voluntas tua,
(피앗 볼룬따스 뚜아)
아버지의 뜻이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sicut in caelo et in terra.
(시꿋 인 쳴로 엣 인 떼라)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말입니다.
Panem nostrum quotidianum da nobis hodie.
(빠넴 노스뜨룸 꾸오띠디아눔 다 노비스 호디에)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오늘 우리에게 우리 하루의 양식을 주시고
Et dimitte nobis debita nostra,
(엣 디믿떼 노비스 데비따 노스뜨라)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듯이
그리고 당신께선 우리 짐을 우리에게서 덜어주시고,
sicut et nos dimittimus debitoribus nostris.
(시꿋 엣 노스 디밋띠무스 데비또리부스 노스뜨리스)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마치 우리가 우리의 짐을 덜어주듯이 말입니다.
Et ne nos inducas in tentationem:
(엣 네 노스 인두까스 인 뗀따치오넴)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그리고 우리를 유혹에 이끌리지 않게 해주시고,
sed libera nos a malo. Amen.
(셋 리베라 노스 아 말로. 아멘.)
하지만 우리를 악에서는 자유롭게 하소서. 아멘.
하느님은 하늘에 계신다고 했습니다. 그 하늘의 땅의 밖이 아닌 땅을 품은 거대한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그 품에 온전히 안기면 어쩔까요? 그 사랑 안에 온전히 안기려면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지 않고 서로 다투는 이들이, 서로 조금이라도 더 이기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거대한 사랑의 품 안에 안길 순 없습니다. 그 거대한 사랑의 품 안에 안긴다는 건, 우리 존재 자체로 사랑이 된다는 말입니다. 사랑이 된다는 건, 계산하지 않는 겁니다. 계산하기 위해 우린 관심법을 사용합니다. 남의 마음을 마음대로 읽고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 자기에게 손해 되지 않는 길을 선택합니다. 그것도 아니면 그의 마음을 마음대로 읽고 그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나와 다른 방식으로 나와 가치로 살아가는 그와 대화 한번 대로 하지 않았지만 그를 온전히 다 안다는 듯이, 그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를 비난하면서 자신을 돌아보진 않습니다. 자기의 잘못은 돌아보지 않고 자기를 돌아보는 시점마다 누군가를 조롱하고 비난하며 시선을 남을 향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면 하느님의 품 안에 안길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그 사랑 안에 안길 수 없습니다.
너를 위해 죽을 줄 알지만, 너와 더불어 온전히 너의 기쁨과 희망의 거름이 되고자 자신을 내어놓은 이가 예수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이렇습니다. 계산하지 않고 안습니다. 뿌리쳐도 또 안습니다. 안고 또 안습니다. 우리 발길질이 십자가의 못질이 되어도 그렇게 뿌리치고 뿌리치며 내 하나의 욕심을 살려합니다. 그래도 예수는 우리 발질의 못질에도 우리를 안습니다. 아파도 안습니다. 그렇게 자기 내어줌을 보이며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욕심으로 다가오는 게 아니라, 자비의 마음으로 다가오십니다. 어느 순간 우리도 조금씩 변합니다. 어느 순간 우리도 예수와 같이 누군가의 발길에도 그와 더불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참고 참으며 계산 없이 그를 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에 산다는 건, 하느님의 그 큰 사랑에 온전히 안기어 산다는 건, 바로 이렇게 참고 참으며 사랑하고 사랑하며 산다는 겁니다. 계산기로 아무리 계산해도 돌아오는 이득이 없지만, 그래도 참고 참으로 사랑하고 사랑하며 사는 겁니다. 아픈 발길질에 내 손과 발에 못질이 되고 독한 말이 내 머리에 면류관이 되어도 그렇게 예수를 따라 사는 겁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나라는 잔치의 나라가 아니라, 서로를 안으며 참고 참으며 사랑하는 더불어 있음의 나라입니다. 너의 아픔이 남의 아픔이라 고개 돌리지 않고 함께 울고 웃는 더불어 있음의 나라, 함부로 남의 마음을 읽고 계산기로 자기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나라, 나만이 주인공이 아니라, 나의 밖, 내 밖으로 초월해 너와 더불어 하느님의 자리를 일구는 나라, 그런 나라가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그런 나라가 아니라, 우리가 애써 이루어야 하는 그런 나라입니다.
라틴어를 읽어볼까요.
Adveniat regnum tuum.
(앗베니앗 레늄 뚜움)
당신의 나라가 오시며,
Adveniat은 ‘도달하다’ 혹은 ‘오다’라는 의미의 동사 adveniō의 접속법 현재 능동 3인칭 단수입니다. regnum은 ‘왕국’을 의미하는 중성 명사 rēgnum의 단수 주격입니다. ‘너의’, ‘당신의’라는 의미를 가진 1/2변화 형용사인 tuus의 중성 단수 주격으로 이 글에선 regnum과 함께 ‘당신의 나라’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왕국, 즉 regnum이 주어인 글입니다.
당신의 나라가 오시길 그냥 기다려선 안 됩니다. 우리가 더 아름답게 사랑해야 합니다. 더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애쓸 때 하느님의 나라는 이곳에 이루어집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글도 우리 스스로 다짐하는 글이 되기도 하겠네요.
다시 기도해 봅시다.
Adveniat regnum tuum.
(앗베니앗 레늄 뚜움)
당신의 나라가 오시소서.
유대칠 옮기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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