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고전읽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대칠 자까 Feb 16. 2024

주님의 기도, 라틴어로 읽기, 삶으로 기도하기 5

유대칠의 기도 읽기 

주님의 기도

Pater Noster

(빠테르 노스떼르)     


Pater noster, qui es in coelis,

(빠떼르 노스떼르, 뀌 에스 인 쳴리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 아버지, 당신은 하늘에 계시며     

sanctificetur nomen tuum.

(상띠피쳬뚜르 노멘 뚜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당신의 이름은 거룩히 빛나시며,     

Adveniat regnum tuum.

(앗베니앗 레늄 뚜움)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당신의 나라가 오시며,     

Fiat voluntas tua,

(피앗 볼룬따스 뚜아) 

아버지의 뜻이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sicut in caelo et in terra.

(시꿋 인 쳴로 엣 인 떼라)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말입니다.     

Panem nostrum quotidianum da nobis hodie.

(빠넴 노스뜨룸 꾸오띠디아눔 다 노비스 호디에)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오늘 우리에게 우리 하루의 양식을 주시고     

Et dimitte nobis debita nostra,

(엣 디믿떼 노비스 데비따 노스뜨라)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듯이

그리고 당신께선 우리 짐을 우리에게서 덜어주시고,     

sicut et nos dimittimus debitoribus nostris.

(시꿋 엣 노스 디밋띠무스 데비또리부스 노스뜨리스)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마치 우리가 우리의 짐을 덜어주듯이 말입니다.     

Et ne nos inducas in tentationem:

(엣 네 노스 인두까스 인 뗀따치오넴)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그리고 우리를 유혹에 이끌리지 않게 해 주시고,     

sed libera nos a malo. Amen.

(셋 리베라 노스 아 말로. 아멘.) 

하지만 우리를 악에서는 자유롭게 하소서. 아멘.     


종종 기도는 지금 나에게 없는 걸 바라는 기도가 되어 버립니다. 이미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걸 바라는 기도가 되어 버린단 말입니다. 이 정도는 아니고 더 큰걸 바라는 기도 말입니다. 부끄러움 없이 더 온전히 살겠다는 다짐은 없고 아직 부족하니 가진 것을 더 채워달라는 기도 말입니다. 이미 우리 모두 하느님의 품에 있지만 하느님의 품에 더 꼭 알아달라 기도합니다. 스스로 하느님의 품에 온전히 안기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 없이 그저 꼭 알아달라 기도합니다. 돌아봄 없는 바람의 기도는 욕심입니다. 기도는 욕심이 아닌 ‘다짐’이어야 하고, 자기 돌아봄 속에서 오는 ‘부끄러움’을 직면한 나의 가장 온전한 ‘다짐’이어야 합니다. 

    

나는 과연 하느님의 품, 그 큰 사랑 가운데 모두가 더불어 행복한 그 세상에 살 자격이 있는 이타심의 삶을 살았는가. 나는 하느님의 뜻이 내 삶 곳곳에 녹아든 그런 삶을 살았는가. 나는 하느님의 존재에 참여하는 하느님의 존재로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았는가. 나는 지금도 누군가를 만나며 나의 이익을 계산하는 이기심을 살고 있진 않은가. 이런 물음과 물음의 이어짐 속 부끄러운 자신을 마주하고 스스로 자기 삶을 매 순간 새롭게 다짐하는 게 참된 기도입니다. 바로 그게 예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기도의 참모습입니다. 돌아봄 없이 나를 더 꼭 품어달라는 기도는 이미 온 힘을 다해 우리를 품고 있는 하느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기를 포기하며 우리를 품은 십자가의 예수, 그 사랑을 의미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저 나는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만이 아니라, 지금 내가 살아가는 여기 이 땅, 이 현실에서도 온전히 구현되는 삶을 살겠으니, 하느님이 이젠 매일매일 내 목숨을 이어갈 양식 정도는 부탁합니다. 주님의 기도는 이렇게 다짐 이후 부끄럽지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겠으니 내 목숨 이어갈 양식 정도 바라는 마음으로 이어집니다.      

‘일용할 양식’이라 옮기는 말의 라틴어 ‘일용할’은 ‘매일의’ 혹은 ‘일상의’라는 뜻의 라틴어 cōtīdiānus(코티디아누스)에서 나온 quotidianum(꾸오띠디아눔)입니다. 거창하게 배부르게 해 달라는 게 아닙니다. ‘매일의’ 식사 정도라는 말입니다. 헬라어 본문 “오늘 나에게 매일의 양식을 주시고(Τὸν ἄρτον ἡμῶν τὸν ἐπιούσιον δὸς ἡμῖν σήμερο(톤 아르톤 헤몬 톤 에피우시온 도스 헤민 세메론))”에서 ‘ἐπιούσιον(에피우시온)’는 오늘 나에게 필요한 정도의 의미를 가집니다. 오늘만이 아니라, 내일도 포함하지만, 그저 남들보다 더 많은 양식도 아니고 그저 매일매일 필요한 정도를 말합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물질을 하느님에게 청하는 건 그 정도면 충분한 것이죠.     


라틴어를 읽어보겠습니다.
  

Panem nostrum quotidianum da nobis hodie.

(빠넴 노스뜨룸 꾸오띠디아눔 다 노비스 호디에) 

오늘 우리에게 우리 하루의 양식을 주시고     


Panem는 ‘빵’ 혹은 ‘음식’을 의미하는 남성 명사 pānis의 단수 목적격입니다. nostrum은 ‘우리의’를 의미하는 1/2변화 형용사 noster의 남성 단수 목적격입니다. quotidianum는 ‘매일의’, ‘보통의’, ‘일상의’ 정도의 뜻을 가지는 1/2변화 형용사 cōtīdiānus의 남성 단수 목적격입니다. 이제까지의 것을 합하여 생각하면, ‘우리 하루의 양식을’이 됩니다. da는 ‘주다’라는 뜻의 동사 dō의 명령법 현재 능동 2인칭 단수입니다. nobis는 ‘우리’라는 뜻의 nōs의 복수 여격입니다. ‘우리에게’라는 뜻입니다. hodie는 ‘오늘’이란 뜻의 라틴어입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우리에게 필요한 것, 그 이상을 바라는 건 아닐까요. 우린 하느님의 손이 되고 팔이 되어 매일매일 우리에게 필요한 것 그 이상 우리에게 주어진 걸 나누며 우리가 사는 이곳이 하느님의 품,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진 하늘과 같은 땅이 되게 살았을까요. 부끄러운 마음이 있다면, 다시 다짐하며 기도해 봅시다.  

    

Panem nostrum quotidianum da nobis hodie.

(빠넴 노스뜨룸 꾸오띠디아눔 다 노비스 호디에) 

오늘 우리에게 우리 하루의 양식을 주소서.


유대칠 옮기고 씀


[대구에서 그리고 온라인 공간에서 고전 독서와 철학 그리고 글쓰기 교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소소하지만 삶에 녹아드는 독서와 철학 그리고 글쓰기를 더불어 누리고자 한다면, 그렇게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자 한다면, 연락 주셔요. oio-4231-o266로 꼭 문자를 먼저 주셔야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주님의 기도, 라틴어로 읽기, 삶으로 기도하기 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