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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Feb 20. 2024

주님의 기도, 라틴어로 읽기, 삶으로 기도하기 7

유대칠의 기도 읽기 

주님의 기도

Pater Noster

(빠테르 노스떼르)     


Pater noster, qui es in coelis,

(빠떼르 노스떼르, 뀌 에스 인 쳴리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 아버지, 당신은 하늘에 계시며     

sanctificetur nomen tuum.

(상띠피쳬뚜르 노멘 뚜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당신의 이름은 거룩히 빛나시며,     

Adveniat regnum tuum.

(앗베니앗 레늄 뚜움)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당신의 나라가 오시며,     

Fiat voluntas tua,

(피앗 볼룬따스 뚜아) 

아버지의 뜻이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sicut in caelo et in terra.

(시꿋 인 쳴로 엣 인 떼라)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말입니다.     

Panem nostrum quotidianum da nobis hodie.

(빠넴 노스뜨룸 꾸오띠디아눔 다 노비스 호디에)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오늘 우리에게 우리 하루의 양식을 주시고     

Et dimitte nobis debita nostra,

(엣 디믿떼 노비스 데비따 노스뜨라)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듯이

그리고 당신께선 우리 짐을 우리에게서 덜어주시고,     

sicut et nos dimittimus debitoribus nostris.

(시꿋 엣 노스 디밋띠무스 데비또리부스 노스뜨리스)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마치 우리가 우리 빚진 자의 짐을 덜어주듯이 말입니다.    

Et ne nos inducas in tentationem:

(엣 네 노스 인두까스 인 뗀따치오넴)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그리고 우리를 유혹에 이끌리지 않게 해 주시고,     

sed libera nos a malo. Amen.

(셋 리베라 노스 아 말로. 아멘.) 

하지만 우리를 악에서는 자유롭게 하소서. 아멘.     


‘나’만 더 좋게 살고 싶습니다. 어쩌면 솔직한 우리 속내입니다. ‘나’만 더 좋게 살면, ‘나’만 더 큰 소리로 내 있음을 자랑할 수 있을 겁니다. ‘나’만 홀로 말입니다. 그런데 하느님 나라는 그런 ‘홀로 있음’의 나라가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는 모두가 ‘더불어’ 잘 사는 나라, 바로 ‘더불어 있음’의 나라입니다. 나만 홀로 더 잘겠다는 이기심의 나라가 아니라, 서로에게 서로가 희망이 되어 살아가는 이타심의 나라가 바로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우리에게 말한 하느님의 나라 역시 이러합니다. 내 욕심이 내 삶의 힘이 되어 사는 그런 이들의 나라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잘 살아감을 위해 애쓰는 사랑의 나라, 바로 그 사랑의 나라가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이 전하는 하느님의 나라는 이렇게 따스한 곳입니다. 나만 홀로 잘 사는 차가운 이기심의 나라가 아닌 우리 모두 더불어 잘 사는 따스한 이타심의 나라가 하느님의 나라이니 말입니다. 예수께서 우리 모두를 위해 수난의 길을 마다하지 않으셨듯이, 그렇게 나 역시 우리 가운데 너를 위해 수난의 길을 마다하지 않을 때, 그런 이타심의 나, 사랑의 나, 이런 나들이 우리를 이루어 산다면, 어찌 그 나라가 차가울 수 있겠습니까. 이 땅 모든 걸 품으며 이 땅 모든 것을 있게 하는 하늘 같은 하느님의 사랑, 그 사랑이 나의 삶에 녹아들어 너를 향한다면, 그렇게 서로에게 서로가 사랑의 마음으로 다가가 서로를 품는다면, 어찌 그 나라가 하느님의 나라가 아니겠습니다. 그런 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너무나 당연히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우리가 사는 바로 여기 이 땅에서도 이루어진 그런 나라겠지요.      


이런 나라의 가장 큰 적은 나만 더 잘 살아야겠다는 ‘유혹’입니다. 그 유혹은 우리를 무너지게 합니다. 우리를 흩어지게 합니다. 흩어진 우리는 홀로 외로운 무엇이 되어 있을 뿐입니다. 기뻐도 홀로 기쁘고 슬퍼도 홀로 슬픕니다. 참 외로운 곳입니다. 그렇게 외로운 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나만이 홀로 더 좋겠다며 너의 아픔에 고개 돌린 이들이 외롭게 맞이하는 마지막 그들의 모습이 바로 지옥입니다. 그러니 우리를 지옥으로 이끄는 가장 독한 독이 바로 나만이 홀로 더 잘 살고 싶다는 욕심의 유혹입니다.      


그 유혹에서 우리를 건져 달라 기도하지만, 그 기도는 그 유혹에 빠지지 않겠다는 강한 자기 다짐이어야 합니다. 나만이 홀로 잘 살겠다는 욕심의 유혹, 그 유혹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다짐과 그 다짐에 따른 실천이 있을 때, 하느님께서 이미 우리를 그 큰 사랑의 품 안에 꼭 안고 계심을 지식이 아닌 믿음으로 깨우치게 됩니다. 그때 그 믿음이 그대로 우리 삶이 될 겁니다.     


라틴어를 읽어보겠습니다.      


Et ne nos inducas in tentationem:

(엣 네 노스 인두까스 인 뗀따치오넴) 

그리고 우리를 유혹에 이끌리지 않게 해 주시고,     


Et은 ‘그리고’ 혹은 ‘~와’란 뜻의 접속사입니다. ne는 ‘~ 하지 않기 위해’라는 뜻의 접속사입니다. nos는 ‘우리’라는 뜻의 인칭대명사 nōs의 복수 목적격입니다. inducas는 ‘안으로 이끌다’라는 뜻의 동사 indūcō의 접속법 현재 능동 2인칭 단수입니다. 2인칭이니 주어는 ‘당신’, 즉 하느님이십니다. in은 탈격 명사와 함께 사용할 때는 ‘~안에’란 뜻이고 목적격 명사와 함께 사용할 때는 ‘안으로’란 뜻입니다. tentationem은 ‘유혹’이란 뜻의 여성 명사 tentātiō의 단수 목적격입니다. 그러니 in tentationem은 ‘유혹 안으로’가 됩니다.      


유혹 안으로 이끌어 들어가지 않게 우리 욕심을 덜어냅시다. 욕심을 덜어내는 만큼 우리에게 그 유혹은 힘을 잃을 겁니다. 유혹이 우리에게 무력할 때 우린 나만이 홀로 사는 삶이 아닌 모두 더불어 잘 사는 더불어 있음의 삶이 우리의 일상이 될 겁니다. 하늘의 삶이 땅에 사는 우리의 일상이 될 겁니다. 어쩌면 이게 신앙의 삶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다시 기도해 봅니다.      


Et ne nos inducas in tentationem:

(엣 네 노스 인두까스 인 뗀따치오넴) 

그리고 우리를 유혹에 이끌리지 않게 해 주소서.


유대칠 옮기고 씀


[대구에서 그리고 온라인 공간에서 고전 독서와 철학 그리고 글쓰기 교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소소하지만 삶에 녹아드는 독서와 철학 그리고 글쓰기를 더불어 누리고자 한다면, 그렇게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자 한다면, 연락 주셔요. oio-4231-o266로 꼭 문자를 먼저 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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