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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Feb 21. 2024

주님의 기도, 라틴어로 읽기 삶으로 기도하기 8

유대칠 기도 읽기 

주님의 기도

Pater Noster

(빠테르 노스떼르)     


Pater noster, qui es in coelis,

(빠떼르 노스떼르, 뀌 에스 인 쳴리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 아버지, 당신은 하늘에 계시며     

sanctificetur nomen tuum.

(상띠피쳬뚜르 노멘 뚜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당신의 이름은 거룩히 빛나시며,     

Adveniat regnum tuum.

(앗베니앗 레늄 뚜움)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당신의 나라가 오시며,     

Fiat voluntas tua,

(피앗 볼룬따스 뚜아) 

아버지의 뜻이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sicut in caelo et in terra.

(시꿋 인 쳴로 엣 인 떼라)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말입니다.     

Panem nostrum quotidianum da nobis hodie.

(빠넴 노스뜨룸 꾸오띠디아눔 다 노비스 호디에)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오늘 우리에게 우리 하루의 양식을 주시고     

Et dimitte nobis debita nostra,

(엣 디믿떼 노비스 데비따 노스뜨라)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듯이

그리고 당신께선 우리 짐을 우리에게서 덜어주시고,     

sicut et nos dimittimus debitoribus nostris.

(시꿋 엣 노스 디밋띠무스 데비또리부스 노스뜨리스)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마치 우리가 우리 빚진 자의 짐을 덜어주듯이 말입니다.    

Et ne nos inducas in tentationem:

(엣 네 노스 인두까스 인 뗀따치오넴)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그리고 우리를 유혹에 이끌리지 않게 해 주시고,     

sed libera nos a malo. Amen.

(셋 리베라 노스 아 말로. 아멘.) 

하지만 우리를 악에서는 자유롭게 하소서. 아멘.     


‘자유’란 무엇일까요? 자유란 항상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독재자로부터의 자유, 폭압으로부터의 자유, 아집(我執)으로부터의 자유와 같이 말입니다. 불교에선 이를 해탈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해탈 역시 무엇으로부터의 해발입니다. 대표적으로 아집으로부터의 해탈이 그것이지요. 아집이란 우리를 홀로 있게 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내 욕심 그것만이 유일한 정답이라 고집부리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 고집 앞에 자신과 함께 있는 이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의 열심(熱心)도 그들의 애씀도 모두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자기 정답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그런 이들은 대화하지 않고 자기 답으로 세상을 함부로 규정하고 남의 생각도 함부로 판단하며 살아갑니다. 대화로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으며 때론 자기 부족함을 인정하고 변해가려는 마음이 없습니다. 변함없이 오직 자기 욕심, 그 욕심으로 만들어진 자기 정답만 고집합니다. 대화로 보이지만 잘 들어보면 자기 이야기만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란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이지만, 동시에 다르게 될 수 있는 자유입니다. 어떤 힘으로 규정된 이는 자기 힘으로 자신을 다르게 하지 못합니다. 노예를 생각해 봅시다. 노예는 주인에게 규정된 자입니다. 그러니 주인의 명령으로 존재합니다. 주인의 명령과 무관하게 자기 마음대로 자기 자신의 삶을 개척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노예에겐 자유가 없습니다. 주인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도 아니고 자기 힘으로 자기 삶을 다르게 하지도 못하니 말입니다. 그런데 잘 보면 아집에 사로잡힌 이는 다른 이의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운 것 같지만, 자기 자신의 욕심에 사로잡혀 다르게 되지 못합니다. 다른 이의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자기 욕심에 사로잡혀 욕심이 시키는 것 이외 다른 걸 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만이 더 좋음을 누리고자 하는 그 욕심, 자기 자신만 더 참된 존재라며 고집부리고 다른 이의 애씀과 노력을 무시하는 그 욕심이 ‘악(惡, malum)’입니다.      


하느님께서 직접 창조한 이 우주는 참 좋습니다. 참 아름답습니다. 어느 하나 다른 것보다 더 좋으려 하지 않고 사라질 때 사라지고 드러날 때 드러나며 참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악은 나만 홀로 더 놓으려는 욕심에서 시작됩니다. 나만 더 좋으려는 욕심은 그 욕심을 위해 모든 걸 수단으로 사용해 버립니다. 하느님조차 천국 가기 위한 자기 욕심의 수단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런데 우린 그런 욕심에서 벗어나기가 참 어렵습니다. 자기만 더 좋아지려는 마음에서 벗어나기가 참 어렵습니다. 첫 교회는 지하무덤에 있었지만, 이 세상 가장 낮은 곳에 있었지만, 죽음의 자리에 있었지만, 박해의 자리에 있었지만, 사랑이 있었습니다. 아프고 힘든 자의 벗이었고, 세상 가장 낮은 곳이라 이 세상 가장 낮고 힘든 자들이 모여 하느님에게 안긴 따스한 하늘나라의 품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진 곳이었습니다. 지하무덤, 말 그대로 죽음의 자리지만, 하느님의 품 가운데 참 생명의 자리였고, 박해의 자리지만, 참 행복의 자리였습니다. 나만이 홀로 더 좋으려는 마음이 아니라, 우리 모두 더불어 좋으려는 따스한 마음이 서로에게 하느님의 따스한 품이 되는 주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성당과 교회의 십자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고 거대한 성당과 교회가 욕심 가운데 이의 궁전처럼 화려하지만, 하늘 높이 올라 있어도 하늘나라와 무관한 차가운 곳이고, 화려하지만 죽음의 공간이 품은 뜨거운 생명력은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우리 욕심으로 가득 찬 이 땅의 악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소서. 이 기도는 그렇게 이루어달라는 기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욕심에서 벗어나 악의 길로 가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악의 길에서 자유롭겠다는 다짐, 나만 좋으면 그만이란 우리네 삶 익숙한 모습에서 벗어나 다르게 살아보겠다는 다짐, 이젠 더불어 모두를 위해 살아보겠는 다짐, 바로 이것이 우리를 악으로부터 자유를 달라는 기도의 뜻이 아닐까요.   

   

라틴어를 읽어봅시다.      


sed libera nos a malo. Amen.

(셋 리베라 노스 아 말로. 아멘.) 

하지만 당신은 우리를 악에서는 자유롭게 하소서. 아멘.     


sed은 ‘그러나’라는 뜻의 접속사입니다. libera는 ‘자유롭게 하다’라는 뜻의 동사 līberō의 2인칭 단수 현재 능동태 명령법입니다. 명령이라기보다는 여기에선 부탁이겠지요. ‘당신은 자유롭게 해주세요’라고 말입니다. nos는 ‘우리’라는 뜻의 인칭대명사 nōs의 복수 목적격입니다. a는 탈격 명사와 함께 사용하는 ‘~으로부터’라는 뜻의 전치사입니다. malo는 ‘나쁜’ 혹은 ‘악한’이란 뜻의 1/2변화 형용사 malus의 중성 단수 탈격입니다. “허나 당신께선 악으로부터 우리를 구하소서”정도의 뜻이겠습니다.     


어찌 기도해야 할까요?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엔 이기심을 드러내는 구절은 없습니다. 홀로 잘 살아야겠다는 기도가 아니라, 더불어 잘 살자는 기도입니다. 오히려 홀로 잘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악에서 구해달라’는 청을 하며 홀로 잘 살겠다는 그 나쁜 마음으로부터 자신을 멀리 떨어뜨리며 다짐합니다. 다시 한번 마지막 구절을 기도해 봅시다.     


sed libera nos a malo. Amen.

(셋 리베라 노스 아 말로. 아멘.) 


하지만 당신은 우리를 악에서는 자유롭게 하소서. 아멘.


유대칠 옮기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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