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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Feb 23. 2024

성모송, 라틴어로 읽고 삶으로 기도하기 2

유대칠의 기도 읽기 

성모송

Ave Maria

(아베 마리아)     


Ave, Maria, gratia plena.

(아베 마리아, 그라치아 플레나)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기뻐하소서! 마리아님! 은총 가득한 분,     

Dominus tecum,

(도미누스 테쿰)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시니,     

benedicta tu in mulieribus,

(베네딕타 투 인 물례리부스) 

여인 중에 복되시며

당신께서는 여인 가운데 복되시고     

et benedictus fructus ventris tui Jesus.

(엣 베네딕투스 프룩투스 벤트리스 투이 예수스)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그리고 당신의 태중 과실 예수님 또한 복되십시다.     

Sancta Maria, Mater Dei,

(상타 마리아, 마테르 데이)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성모님이여! 하느님의 어머님이여!     

ora pro nobis peccatoribus,

(오라 프로 노비스 펙카토리부스)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우리 죄인을 위하여 기도해 주소서!     

nunc et in hora mortis nostrae. Amen.

(눙 엣 인 오라 모르치스 노스트레. 아멘.)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지금 그리고 우리 죽음의 날에. 아멘.     


‘더불어 있음’, 저의 철학을 두고 ‘더불어 있음의 철학’이라고 합니다. 저의 책 『대한민국 철학사』는 그 ‘더불어 있음의 철학’을 위한 첫 초석 다지기였습니다. 저의 철학이 ‘더불어 있음의 철학’이라면 저의 신학은 ‘더불어 있음의 신학’이라 불러도 조금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의 철학은 ‘함께 함의 철학’이나 ‘함께 함의 신학’이기도 하고 ‘같이 함의 철학’이나 ‘같이 함의 신학’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함께’ 그리고 ‘같이’는 비슷한 뜻을 가지지만 조금씩 다릅니다. 우선 ‘더불어’는 무언가에 더하여 함께 한다는 뜻입니다. 주로 명사 앞에 사용합니다. ‘더불어 삶’ 혹은 ‘더불어 숲’과 같이 말입니다. 그 명사를 이루기 위해 함께 한다는 의미입니다. 나, 거기에 네가 동시에 더해져 함께 살아갈 때, 더불어 삶이 가능합니다. 나만이 홀로 앞서고 너를 강제로 끌고 가면 그것은 더불어 삶이 될 수 없습니다. ‘더불어 있음’도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만 홀로 있는 게 아니라, 나의 있음에 더하여 너의 있음이 동시에 더해져 있음, 바로 그것이 ’더불어 있음‘입니다. ‘함께’는 둘 이상의 대상이 같은 행동이나 생각을 나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주로 동사나 부사 뒤에 옵니다. “우리는 함께 산다”, “나는 너와 함께 산다”라는 예를 봅시다. ‘우리’는 둘 이상입니다. 둘 이상이 같은 행동이나 같은 생각을 나누며 산다는 말입니다. ‘나’와 ‘너’도 둘 이상입니다. ‘나’와 ‘너’가 서로 달리 생각하고 서로 다른 행동을 하면서 한 자리에 있으면 그것은 함께 있는 게 아닙니다. 같이 행동하며 같은 생각을 나눌 때 함께 있는 겁니다. 그러면 독재자(獨裁者)의 국가는 ‘더불어’ 사는 국가도 아니고 ‘함께’ 사는 국가도 아닙니다. 국가를 이루기 위해 민중 전체 거기에 관리자가 동시에 더해져 함께 살아갈 때, 더불어 국가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관리자가 권력자로 홀로 독재자가 되어 다른 민중을 끌고 간다면 그건 더불어 사는 국가가 아닙니다. 함께 같은 행동이나 같은 생각으로 국가를 이루는 게 아니니 ‘함께 사는 국가’도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같이’라는 말을 봅시다. 이 말은 둘 이상의 대상이 같은 행동이나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말입니다. ‘함께’와 비슷하지요. 하지만 다릅니다. ‘함께’라는 말은 여럿이 모여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협력한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같이’는 서로 동등한, 즉 서로 같은 입장에서 함께 한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친구들은 함께 좋은 시간을 보냈다.” 이 말에서 ‘함께’는 함께 모여 좋은 시간을 보냈다는 겁니다. 좋은 시간이란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서로 협력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나는 친구와 같이 영화를 보러 갔다”라는 말은 ‘나’와 ‘친구’가 같은 입장, 즉 동등한 입장에서 함께 영화를 본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니 미세하지만 다릅니다.      


성모 마리아께선 주님과 ‘함께’ 계십니다. 그런데 그냥 아들 예수와 한 집에 있었다는 뜻은 아닐 겁니다. 예수만이 홀로 있으신 게 아니라, 마리아님 역시 우리를 이루고 더하여 계셨던 겁니다. 즉 ‘더불어’ 있으셨던 겁니다. 더불어 있는 건 서로 다른 존재를 이루지만, 하나의 존재를 이룹니다. ‘더불어 숲’을 보세요. 서로 다른 여러 나무와 여러 동물이 있지만, 즉 서로 다른 여러 존재가 있지만, 더불어 하나의 숲을 이루지 않습니까. 그렇게 주님과 더불어 마리아 역시 하나의 있음을 이루고 있으셨던 겁니다. 비록 서로 다른 모습이지만 말입니다. 예수와 하나의 존재를 이루고 있으니 복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말은 참 희망의 복음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과 피조물이 더불어 하나의 존재를 이룰 수 있다는 건 우리 피조물이 있어야 할 모습으로 있다면 이미 충분히 복된 존재란 말이 되니 말입니다.      


성모 마리아께선 예수와 ‘함께’ 애쓰셨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그 하나의 목적을 위해 서로 협력하며 ‘함께’ 애쓰셨습니다. 동정녀의 잉태, 쉽지 않은 선택에서부터 이미 ‘함께’ 애쓰신 겁니다. 성모 마리아께선 예수와 ‘같이’ 애쓰셨습니다. 비록 피조물이지만, 하느님께선 강제하지 않으셨고, 성모 마리아께선 스스로 판단하여 주어진 길을 걸으셨습니다. 같이 말이지요. 그렇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성모 마리아께선 예수와 ‘더불어’ 있으셨고, ‘함께’ 그리고 ‘같이’ 이루고자 애쓰셨습니다. 그렇게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셨습니다. 온전히 ‘더불어’ 있고 ‘함께’ 있으며 ‘같이’ 있으니 어찌 둘이라 할까요. 하지만 그 일치는 그저 주어진 게 아니라, 더불어 있고자 하는 자기 결단과 삶으로 가능했음을 잊지 말아야겠지요.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는 삶은 우리에게 모범입니다. 그 복된 삶은 우리에게 모범입니다. 복된 삶이 편하고 즐거운 삶이 아니라, 고난의 길, 눈물의 길이지만, 담담히 ‘더불어’ ‘함께’ ‘같이’ 걸어가는 그 모습이 우리에게 모범입니다.     


라틴어를 읽어봅니다.     


Dominus tecum,

(도미누스 테쿰)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시니,     


주님께서 성모 마리아와 ‘더불어’ ‘함께’ ‘같이’ 하시고, 성모 마리아께서 주님과 ‘더불어’ ‘함께’ ‘같이’하시니, 정말 복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기억하고 이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당장 우린 우리의 이웃과 ‘더불어’ ‘함께’ ‘같이’ 살아야 합니다. ‘더불어 삶’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와 ‘더불어’ ‘함께’ ‘같이’ 있으시듯이 우리 역시 우리의 이웃과 ‘더불어’ ‘함께’ ‘같이’ 있어야 합니다. 이 구절을 읽으며 다짐하며 이 구절 앞에서 우리 자신이 부끄럽지 않아야 합니다. 그때 우리도 복될 것입니다.     


Dominus는 ‘주인’이란 뜻의 남성 명사 dominus의 단수 주격입니다. 흔히 그리스도교에선 ‘주님’이라 옮깁니다. tecum이란 ‘너와 함께’ 혹은 ‘그대와 함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다시 이 구절을 묵상하며 기도해 봅시다.      


Dominus tecum,

(도미누스 테쿰)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


유대칠 옮기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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