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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Feb 27. 2024

성모송, 라틴어로 읽고 삶으로 기도하기 4

유대칠의 기도 읽기 

성모송

Ave Maria

(아베 마리아)     


Ave, Maria, gratia plena.

(아베 마리아, 그라치아 플레나)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기뻐하소서! 마리아님! 은총 가득한 분,     

Dominus tecum,

(도미누스 테쿰)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시니,     

benedicta tu in mulieribus,

(베네딕타 투 인 물례리부스) 

여인 중에 복되시며

당신께서는 여인 가운데 복되시고     

et benedictus fructus ventris tui Jesus.

(엣 베네딕투스 프룩투스 벤트리스 투이 예수스)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그리고 당신의 태중 과실 예수님 또한 복되십시다.     

Sancta Maria, Mater Dei,

(상타 마리아, 마테르 데이)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성스러운 마리아시여! 하느님의 어머님이여!     

ora pro nobis peccatoribus,

(오라 프로 노비스 펙카토리부스)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우리 죄인을 위하여 기도해 주소서!     

nunc et in hora mortis nostrae. Amen.

(눙 엣 인 오라 모르치스 노스트레. 아멘.)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지금 그리고 우리 죽음의 날에. 아멘.


‘하느님의 어머님’이란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다들 알다시피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십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선 온전한 사람이며 온전한 하느님이십니다. 사실 이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신비입니다. 사람이면 사람이고 하느님이면 하느님이지 사람이면서 하느님이란 걸 이해하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건 우리네 이성으로 따져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사실 그냥 믿는 겁니다. 물리의 세상에서 두 원자가 합성되고 분리되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人性)’과 ‘신성(神性)’, 즉 ‘사람으로의 본성’과 ‘하느님으로의 본성’이 합성되고 분리되는 게 아닙니다. 온전한 하나입니다. 온전한 하나도 조각날 수 없습니다. 조각이 나는 순간, 하나가 아니라, 여럿입니다. 그냥 여럿의 합성체일 뿐입니다. 내 목숨과 내 삶이 나누어질 수 없습니다. 목숨이 멈추면 삶도 없습니다. 삶이 있는 동안 목숨도 이어집니다. 이 둘은 절대 나누어질 수 없습니다. 여럿이지만 여럿이 아닌 하나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에게 인성과 신성은 절대 나누어질 수 없습니다. 나누어지는 순간, 그저 선하게 산 청년일 뿐입니다. 더는 하느님이 아닌 겁니다.    

  

우리가 작은 예수 그리스도로 사는 길은 어떤 것일까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사랑의 로고스(logos), 사랑의 이치가 우리의 삶과 나누어지지 않고 하나가 되게 하는 겁니다. 그렇게 애쓰는 겁니다. 사람이기에 우린 조금 잘 살고 싶습니다. 어쩌면 조금 더 먹고 조금 더 꾸미고 조금 더 화려한 곳에서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런 욕심이 커지면 커질수록 우린 누군가의 것을 빼앗아 와 더 먹어야 하고 더 꾸며야 하고 더 화려해야 합니다. 이런 욕심에 충실하면, 사랑의 이치가 우리 삶과 떨어져 나가는 겁니다. 남이 되는 겁니다. 그저 욕심쟁이 사람이 하나 있을 뿐입니다. 제법 화려하게 잘 꾸며진 사람 말입니다. 그러나 제대로 신앙에 충실하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성과 신성이 둘이 아닌 하나로 사시며, 우리 모두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놓았듯이, 나를 위한 욕심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사랑이 자기 삶의 모습이 되게 해야 합니다. 사랑의 이치가 자기 삶과 온전히 하나를 이루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는 우리 눈에 보이는 우리의 이웃이며 형제이고 벗으로 오셨습니다. 사람으로 오신 겁니다. 사람으로 오셨으니 가난하고 힘든 이들을 쓰러지게 하는 배고픔의 아픔도 당신 몸으로 아시게 되셨을 겁니다. 그리고 그 부조리의 모습이 우리네 욕심 때문이란 것도 아셨을 겁니다. 그러니 사랑을 그렇게 강조하셨을 겁니다. 부조리의 아픔을 구경꾼이 아닌 스스로 가난하고 아픈 이가 되어 아파하셨으니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당신의 이야기로 그 아픔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아픔을 극복하는 길은 사랑임을 아셨을 겁니다. 그러니 그렇게 사랑을 강조하신 것이지요. 그리고 하느님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니 스스로 자기 생명을 내어주며 사랑을 실천하신 겁니다. 사랑이란 이런 것이어야 한다는 걸 보이신 겁니다. 온전히 사람이시며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렇게 사람으로 우리 아픔을 제대로 아셨고, 신으로 우리 아픔을 품으신 것입니다.     


마리아는 그런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십니다. 하느님이시며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십니다. 사람으로 예수만의 어머니가 아니라, 하느님이시며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십니다. 사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하느님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나누어질 수 없으니 사실 사람으로만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아니라, 온전한 사람이며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십니다.     


마리아께서도 처음 수태(受胎)의 순간부터 스스로 결단하신 대로 하느님의 뜻과 자기 뜻이 하나 되는 삶을 사셨습니다. 구분되지 않은 삶, 사람으로의 욕심으로 하느님과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은 삶, 결국 모두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신 분을 위해 기꺼이 거름이 되는 삶을 사신 분이십니다. 하느님의 뜻과 자기 뜻이 둘이 아닌 온전히 하나 되어 사신 겁니다. 그러니 온전한 하느님이시며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로 이런 분이 없었던 것이겠지요.     


마리아께서 그리하셨듯이 우리도 하느님의 뜻과 우리의 뜻이 따로 둘이 아닌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이를 위해 애써야겠습니다. 그게 신앙이니 말입니다. 또 온전히 하느님이시며 온전히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우리의 삶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권하신 사랑과 사람으로 우리의 삶이 온전히 하나를 이루며 살아야겠습니다. 이 역시 신앙이니 말입니다.      


라틴어로 읽어봅시다.     


Sancta Maria, Mater Dei,

(상타 마리아, 마테르 데이) 

성스러운 마리아여! 하느님의 어머님이시여!     


Sancta는 ‘성스럽게 하다’라는 형용사 Sancta 여성 단수 호격입니다. Maria는 말 그대로 여성 명사 호격입니다. Mater는 ‘어머니’라는 뜻의 여성 명사 māter의 여성 단수 호격입니다. Dei는 ‘신’ 혹은 ‘하느님’이란 뜻의 남성 명사 deus의 단수 소유격입니다.     


다시 한번 우리 신앙이 정말 사랑과 삶이 하나 되어 있는지 돌아보면 기도해 봅시다.    

  

Sancta Maria, Mater Dei,

(상타 마리아, 마테르 데이) 

성스러운 마리아여! 하느님의 어머님이시여!


유대칠 옮기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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