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칠의 라틴어 시편 묵상하기
시편
Psalmi
유대칠 옮김
시편 1편
Psalmi, CAPITULUM 1
1. 복된 자, 그는 불경한 이의 충고를 따르지 않고, 죄인의 길에 머물지 않으며, 역병의 의자에 앉지 않는 자입니다.
1.beátus vir qui non ábiit in consílio impiórum et in via peccatórum non stetit et in cáthedra pestiléntiae non sedit
2. 하지만 주님의 뜻은 그분의 법 가운데 있으니 그는 낮이든 밤이든 그 법 가운데 깊이 생각합니다.
2.sed in lege Dómini volúntas eíus et in lege eíus meditábitur die ac nocte
3. 그리고 그는 흐르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고, 자기 시간이 되면 자기 과실을 맺을 것이고, 그 잎은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번창할 겁니다.
3. et erit tamquam lignum quod plantátum est secus decúrsus aquárum quod fructum suum dabit in témpore suo et fólium eíus non défluet et ómnia quaecúmque fáciet prosperabúntur
4. 불경한 이들은 그렇지 않으니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바람이 땅바닥에 흩날리게 하는 먼지와 같기 때문입니다.
4.non sic ímpii non sic sed tamquam pulvis quem proícit ventus a fácie terrae
5. 그러므로 불경한 이들은 심판에서 잘되지 않을 것이고, 죄인들은 의로운 이의 충고에서도 잘되지 않을 겁니다.
5.ídeo non resúrgent ímpii in iudício neque peccatóres in consílio iustórum
6. 주님께서는 의로운 이들의 길을 아시며, 불의한 이들의 나아갈 바는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6.quóniam novit Dóminus viam iustórum et iter impiórum períbit
시편 1편 4절 묵상
헬라어로 쓰인 「창세기」는 “καὶ εἶδεν ὁ θεὸς τὸ φῶς ὅτι καλόν(까이 에이덴 호 테오스 또 포스 호띠 깔론)”이라고 하고, 라틴어로 쓰인 「창세기」는 “et vidit Deus lucem quod esset bona(엣 비딧 데우스 루쳄 쿼드 에셋 보나)”라고 합니다. 우리말로는 “그 빛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다”라고 합니다. 헬라스어로 된 「창세기」는 “그리고 하느님께서 빛을 보셨고, 빛은 아름다웠다”라고 옮길 수 있습니다. 라틴어로 된 「창세기」는 “그리고 하느님께서 그 빛을 보셨고, 빛은 좋았다”라고 옮길 수 있습니다. 저는 헬라스어로 된 말이 조금 더 깊이 다가옵니다. ‘καλόν(깔론)’이란 말은 ‘아름다운 것’과 ‘사랑스러운 것’ 그리고 ‘탁월하게 잘 작동되고 있는 것’을 부르는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첫 세상은 어느 하나 탁월하게 작동하지 않은 게 없습니다. 탁월하게 잘 작동하고 있다는 말은 어느 하나 자기 욕심으로 더 앞서려고 하지 않고 때에 따라 물러서기도 하고 때에 따라 앞서기도 한다는 말입니다.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나지 않으면 추합니다. 아름답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처음 창조하신 세상은 아름다웠습니다. 물러설 때 물러서고 앞서 때 앞서며 더불어 살던 세상이란 말입니다. 살 때 살고 죽을 때 죽는 건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우리 자연의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며, 가장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입니다. 하느님께선 그 모습을 보시고 아름답다고 하신 겁니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이 무너집니다. 다른 이보다 조금 더 앞서야겠고 조금도 물러나지 않고 계속 앞서며 살겠다고 마음먹고 사는 우리 사람이 등장한 겁니다. 욕심으로 사는 우리가 하느님께서 아름답다 감탄한 세상을 망치기 시작했습니다. 나만이 더 많이 누리며 가난한 이를 만들고, 나만 홀로 더 꼭 잡고 살겠다며, 자기 소유를 부여잡으며 돈 없어 죽어 가는 이들을 만들었습니다. 나만이 더 똑똑하고 나만이 더 거룩하다 고집부리며 무식한 이를 만들고 천박한 이를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아집과 욕심으로 세상은 점점 그 아름다움을 잃어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욕심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바람에 흩날리는 먼지와 같습니다. 서로 이용하고 서로 이기기 위해 애쓰며 살기에 쉼 없이 다투며 살게 됩니다. 다툼을 멈출 수 없습니다. 다툼은 홀로 더 좋게 있으려는 욕심에서 시작되며 철저하게 홀로 있음을 남깁니다. 쉼 없이 다투고 쉼 없이 어떻게 이기고 어떻게 더 많은 돈을 벌까 생각하는 이에게 마음의 벗은 쉽지 않으니 바람에 날리는 먼지와 같이 외롭게 흩어져갈 뿐입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지요? 바람에 흩어지는 먼지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지요. 그렇지 않으면,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덕에 살면 그들에게 자기를 내어주고 살아가는 착한 나무와 같은 사람을 살고 있는지요. 스스로를 돌아보며 1편 4절을 묵상해 봅니다.
4. 불경한 이들은 그렇지 않으니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바람이 땅바닥에 흩날리게 하는 먼지와 같기 때문입니다.
4.non sic ímpii non sic sed tamquam pulvis quem proícit ventus a fácie terrae
유대칠 옮기고 묵상하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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