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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Mar 12. 2024

라틴어 시편 읽기 시편 1편 6절 '의로운 삶 살기'

유대칠의 라틴어 시편 묵상하기

시편 

Psalmi     


유대칠 옮김     


시편 1편

Psalmi, CAPITULUM 1     


1. 복된 자, 그는 불경한 이의 충고를 따르지 않고, 죄인의 길에 머물지 않으며, 역병의 의자에 앉지 않는 자입니다. 

1.beátus vir qui non ábiit in consílio impiórum et in via peccatórum non stetit et in cáthedra pestiléntiae non sedit 

2. 하지만 주님의 뜻은 그분의 법 가운데 있으니 그는 낮이든 밤이든 그 법 가운데 깊이 생각합니다. 

2.sed in lege Dómini volúntas eíus et in lege eíus meditábitur die ac nocte 

3. 그리고 그는 흐르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고, 자기 시간이 되면 자기 과실을 맺을 것이고, 그 잎은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번창할 겁니다.

3. et erit tamquam lignum quod plantátum est secus decúrsus aquárum quod fructum suum dabit in témpore suo et fólium eíus non défluet et ómnia quaecúmque fáciet prosperabúntur 

4. 불경한 이들은 그렇지 않으니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바람이 땅바닥에 흩날리게 하는 먼지와 같기 때문입니다. 

4.non sic ímpii non sic sed tamquam pulvis quem proícit ventus a fácie terrae 

5. 그러므로 불경한 이들은 심판에서 잘되지 않을 것이고, 죄인들은 의로운 이의 충고에서도 잘되지 않을 겁니다.

5.ídeo non resúrgent ímpii in iudício neque peccatóres in consílio iustórum 

6. 주님께서는 의로운 이들의 길을 아시며, 불의한 이들의 나아갈 바는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6.quóniam novit Dóminus viam iustórum et iter impiórum períbit     


시편 1편 6절 묵상     

의로운 이는 복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의로운 이가 될까요?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의로운 이는 의로운 일로 ‘박해받는 이들’입니다. 박해, 즉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이란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이들에게 예수께선 직접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라 하셨습니다. (마태오의 복음 5장 10절) 가만히 생각하면 의로운 이의 복은 좋은 것을 먹고 마시고 입는 복이 아닙니다. 화려한 복이 아닙니다. 그런 복을 두고 고난의 삶이니 박해의 삶이니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의로움을 위한 고난은 무엇이 있을까요? 어떤 것일까요?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고 우리 일상에서의 삶을 두고 생각해 봅시다. 간단하게 생각해 보면 욕심부리지 않는 삶입니다. 자기 하나 잘 되겠다는 욕심은 남을 이길 생각만 하게 합니다. 이길 생각이 커지면 거짓을 만듭니다. 없는 일로 말을 만들고, 사소한 일들을 크게 만들어 남을 이기려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거짓을 조금도 거리낌 없이 합니다. 그게 바로 욕심입니다. 욕심은 누구와도 더불어 살지 못합니다. 심지어 하느님 역시 그 자리에 더불어 있지 못합니다. 그렇게 만드는 게 바로 욕심입니다.     


고난의 삶을 산다는 건 자기 혼자 잘 먹고 잘살기 위해 고생하는 삶을 산다는 게 아닙니다. 그 고생은 어찌 보면 자기 미래 성공을 위한 투자이지만, 고난은 미래 성공을 따지고 계산하며 사는 게 아닙니다. 지금 해야 해서 하는 것, 그래서 나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지만 지금 해야 해서 해야 하는 것, 그것을 따라 살아가는 게 고난입니다. 고난의 삶을 산다고 미래 나에게 더 큰 소유와 더 큰 기쁨이 찾아오지 않습니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을 한 이유는 미래의 성공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지금 당장 죽을 수 있지만, 기꺼이 우리 모두를 위해 해야 하는 일이라서 하는 겁니다. 자기를 버리면서 말이죠. 그게 고난입니다. 마치 예수께서 십자가 고난의 길을 가셨던 것 같이 말입니다. 그 길은 참 외롭습니다. 제자 페트루스(베드로)의 세 번에 걸친 배신을 보세요. 그런데 그래도 가는 게 고난입니다.      


나 하나 잘 되자는 욕심으로 살면 눈에 보이는 화려함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고난의 삶은 눈에 보이는 화려함이 아니라, 보아야 하는 거룩함을 위해 나 하나 홀로 있음이 아니라, 우리 모두 더불어 있음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그런 고난의 길을 가는 이, 비록 아프고 힘들지만, 그런 고난의 길을 가는 이는 이미 하늘나라가 허락되는 겁니다. 이미 자기 온 삶을 통해 하늘나라를 이 땅에 이루며 사는 이니까요.      


의로운 이의 길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고난의 길이지만 사라지지 않고 낮고 아픈 곳에서 이 세상 부조리에 죽어가는 이의 옆에서 그들과 더불어 살아갈 겁니다. 화려한 옷을 입고 위선 가득한 입으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자기 온 삶으로 아프고 힘들 이들의 자리에서 살아갈 겁니다. 높고 높은 자리가 아니라, 낮고 낮은 자리에서 말입니다. 그러나 불의한 이들, 자기 욕심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욕심으로 서로 다투며 서로가 서로에게 고통의 이유가 될 겁니다. 누구의 성공은 또 다른 누구의 아픔이고, 누군가의 아픔은 또 다른 누구의 기쁨인 그런 지옥에서 그들은 사라져 갈 겁니다. 화려하고 높은 자리지만 그렇게 그들은 사라져 갈 겁니다.    

  

시편 1장 6절을 묵상해 봅니다.      


6. 주님께서는 의로운 이들의 길을 아시며, 불의한 이들의 나아갈 바는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6.quóniam novit Dóminus viam iustórum et iter impiórum períbit


유대칠 옮기고 묵상하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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