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대칠 자까 May 30. 2024

학설보다 살아가는 동안 얻은 역사적 지혜가 필요하다.

유대칠의 더불어 있음의 철학

내가 이 난처한 시국을 보고 말하겠다는 것도무슨 각별한 학설이라기보다는 살아가는 동안에 얻은 역사적인 지혜의 말입니다.” 

함석헌, 『진실을 찾는 벗들에게』, (파주: 한길사, 2009), 534쪽.     


철학이란 원래 학설을 만들려는 욕구가 아니라, 지혜를 향한 사랑이다. 철학이 다가가 만나려는 건 학설이 아니라, 지혜다. 더 지혜롭기 위해 여러 철학자는 저마다의 생각으로 이런저런 지혜를 제안한다. 철학이 제안하는 지혜는 고난 가운데 참된 지혜가 됩니다. 고난 가운데 우린 나누어짐이다. 누군가는 자기만 생각한다. 그 생각에서 세상을 보니 결국 자기 좋은 것만 바란다. ‘홀로 좋음’만이 그에겐 ‘하나뿐인 좋음’이고 ‘가장 좋음’이다. 그러나 또 다른 누군가는 자기만 생각하지 않는다.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의 고난 역시 무시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에게 가장 좋은 건 ‘홀로 좋음’이 아니라, ‘더불어 좋음’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철학은 ‘더불어 좋음’을 향한 지혜, 바로 그런 지혜를 향한 사랑이 아닐까 싶다. 그 사랑으로 더불어 좋음의 지혜가 온전히 우리 삶과 하나가 된다면, 우리의 삶이 그렇게 서로에게 좋음이 되어 있다면, 그 좋음이 크든 작든 적어도 지금과 같이 홀로 더 강해지자며 경쟁하고 다투진 않을 거다. 자기 이득을 위해서라면 조금의 부끄럼 없이 거짓도 기술이 되어 버리는 세상을 살진 않아도 될 거다.      


학설은 암기할 수 있다. 분석하고 따질 수 있다. 열심히 연구하고 연구해 박사가 될 수도 있다. 아니 그 이상의 무엇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학설이 그 시대의 지혜가 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저 잘 만들어진 논리 속에 존재하는 무력한 가상(假像) 일뿐이다. 함석헌은 자신이 우리에게 하는 이야기를 학설이 아니라 지혜라고 한다. 매우 겸손한 어투로 말이다. 하지만 정말 필요한 건 철저하게 이기적일 수 있었던 시대, 일제강점기와 독재의 시대, 그 홀로 있음의 유혹을 극복하고 더 치열하게 더불어 있음을 외친 이의 지혜다. 이 땅에 철학박사가 없고 이 땅에 정치학박사가 없어 우리가 힘들었는가? 우리에게 학설의 전문가가 없어도 우리의 고난이 외로웠던 건가? 아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 이론과 학설의 전문가가 아니라, 지금 이 시대 우리를 괴롭게 하는 이 고난 가운데 뜻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게 한 지혜, 그 지혜를 온전히 자기 삶으로 살려는 정말 제대로 ‘살아있는 철학자’다. 이론과 학설 속에 숨어 보이지 않는 이들이 아니라, 고난 가운데 힘든 이들의 옆에서 더불어 소리치고 분노하는 지혜로운 이, 정말 ‘살아있는 철학자’다. 이런저런 온갖 학설이야 개인의 지적 호기심으로 두고두고 깊이 연구하며 즐길 수 있지만, 지적 호기심이 없는 이도, 그가 어떤 종교이든, 그가 어떤 지역이든 상관없이 지혜로이 살고자 한다. 이건 숨길 수 없다.      


학생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깊은 의미에서 볼 때 권력욕에 빠진 군인들은 사실은 역사적인 부상병이란 것을 알아야 합니다미워하기보다는 불쌍히 여겨야 하는 사람들입니다우리의 군대는 불행하게도 일본 군대의 계통에서 자라났습니다거기 우리의 비통이 있습니다알지 못하는 동안에 그들의 의식구조가 군국주의로 굳어져 있습니다그들이 그리되고 싶어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역사적인 상처로 그리된 것입니다.”

같은 책, 538쪽.     


참 지혜는 홀로 잘 살자며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미워하자는 말이 아니다. 그들을 죽이자는 말도 아니다. 어찌 보면, 그들 역시 이 거친 역사의 상처다. 적자생존(適者生存)이 세상 사는 유일한 이치로 배우며 그리 믿고 산 이들, 그리고 그들에게 배운 이들, 그리고 그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한 이들, 이들은 그 단순한 논리에 언제나 강자의 편이 되어 생존하려 했다. 강자의 편에서 강자의 눈치만 보다 살다 보니 그들은 자신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의 눈빛은 보지 못했다. 볼 필요도 없었을 거다. 그런 어느 날, 스스로 쿠데타를 일으켜 힘을 얻으니 이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기 이득만 생각하며 살았다. 이제 자신이 일제강점기의 일본이 된 셈이다. 더불어 사는 법보다 홀로 누리는 것에 익숙한 그들에게 이 땅 민중이 보이겠는가? 그럴 생각도 없다. 어쩌면 우리도 그들과 같은 존재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그들과 같은 존재가 되기 위해 돈을 벌고 권력을 추구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더불어의 삶이 아니라, 홀로 누림의 삶을 위해 말이다. 당장 나를 돌아보자. 그리고 부끄럽지 않게 최대한 덜 나쁘게 살아보자. 우리 하나하나가 그렇게 덜 나쁘게 살아가면, 서툴러도 ‘홀로’가 아닌 ‘더불어’ 살아가려 한다면, 이 땅, 그 역사적 상처인 국적만 한국인일 뿐 스스로 우리 밖 지배자가 되려는 저 불쌍한 외로움도 사라져 갈 거다.      


여러분새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아직은 우리가 지는 것 같고어엿한 우리 마음이 다 녹아버리는 것 같지만 새날이 오고 있습니다오고야 말 것입니다.” 

같은 책, 539쪽     


홀로 잘 살아야지, 홀로 더 많이 누려야지 욕심내는 이들의 시대는 사라져 간다. 그게 역사의 이치이고 우리 존재의 이치다. 그 이치를 믿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이치대로 살면 된다. 조금 서툴러도 조금씩 어제보다 덜 나쁜 삶을 살아가면 된다. 그러면 새 시대는 천천히 우리에게 다가올 거다. 덜 나쁘기 위해 애쓰는 우리 하나하나가 주체가 되어 그 시대를 우리 일상의 삶에서 부르고 있을 거다. 물론 당장 눈에 보이는 변혁이 오진 않을 거다. 서서히 다가와 결국엔 우리 삶이 될 거다. 이걸 믿어야 한다. 그리고 그 믿음을 우리 삶으로 증명해 보여야 한다. 그러면 된다. 그러면 충분하다. 그때 학설이 아닌 지혜가 우리 삶과 하나 되어 있을 거다. 정말로 말이다.

이전 01화 우린 딴사람이 됐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