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칠의 더불어 있음의 철학
“나 하나를 잃어버리면 모든 귀한 이, 어진 이의 말도 거짓이 될 뿐이다. 천하에 거짓을 해가지고 나라가 될 리가 없다.”
함석헌, 『뜻으로 본 한국역사』, (서울: 한길사, 2002(선집 제1판 제16쇄)), 183쪽.
결국 ‘나’를 잃어버리면, 모든 귀한 걸 잃어버린 거다. 더불어 살자고 하지만, 내가 없는데 누가 무엇이 어찌 더불어 살겠는가! 더불어 살기 위해서 우선 나란 존재가 있어야 한다. 나란 존재가 온전히 자기 자신을 따져 묻고 또 물으면서 있어야 한다. 나는 없고 온전히 남만 있다면 듣기는 좋은 말이지만, 자칫 노예가 될 뿐이다. 노예는 자신이 없고 자신에게 명령하는 남이 있을 뿐이다. 생각할 필요 없이 움직이라는 데로 움직일 뿐이다. 자신이 무엇을 할지 고민하지 않는다.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자신이 고민하지 않는다.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온다. 그러니 나 없이, 나를 잃어버린 성공이니 성공도 나의 성공이 아니라, 명령하는 주인의 성공일 뿐이다. 이건 ‘더불어 있음’이 아니다. ‘더불어 있음’은 노예와 주인이 그저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함께 있음’이 아니다.
‘더불다’라는 말은 ‘함께’ ‘같이’ ‘한뜻으로’ 이룬다는 말이다. ‘함께’하는 말은 말 그대로 ‘홀로’가 아니라, 여럿이 함을 의미한다. 조금 더 자세히 생각해 보면, 둘 이상의 사람이 공동의 목표를 위해 협력하여 일하는 걸 의미한다. 그렇다면, ‘한뜻으로’ 일해야 제대로 ‘함께’ 일하는 게 된다. 목수는 망치를 사용하여 일할 뿐이다. 엄밀히 망치와 한뜻으로 일하지 않는다. 즉 목수는 망치와 함께 일하는 것도 아니고 한뜻으로 일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당연히 목수는 망치와 더불어 일하지 않는다. ‘같이 일한다’라는 말은 둘 이상의 사람이 동시에 같은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잘 생각해 보면, ‘같이 일하는 이’는 서로 평등하다. 평등하지 않으면 같이 일하지 않는다. 즉 같은 가치로 서로를 품은 이들이 같이 일하는 거다. 그러나 주인과 노예는 평등하지 않으며 같이 일하지도 않는다. ‘더불어 있음’은 한뜻으로 있으며 동시에 같은 가치로 서로를 품어주는 벗이 같이 일함이다. 그저 물리적으로 같은 자리에 있다고 ‘더불어 있음’은 아니다.
나도 너도 서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있는 이들이 서로를 같은 가치로 있다 품을 수 있는 ‘더불어 있음’을 이룰 수 있고, 한뜻으로 함께 할 수 있다. 자신을 잃어버리면, 이렇게 있을 수 없다. 나로 있지 못하면 더불어 있지 못하고, 당연히 우리로 있지 못한다. 우리는 내가 온전히 나로 있을 때, 그렇게 온전한 내가 너와 더불어 있을 때 가능하다.
“우리의 고난의 역사의 근본 원인은 나를 깊이 파지 않는 데 있다.”
같은 곳.
제대로 우리로 있기 위해, 제대로 더불어 있기 위해, 남 탓을 할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돌아봐야 한다. 남의 생각을 함부로 읽으려 하지 말고,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을 포기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니지, 자기 자신이 자기 이기심으로 남을 함부로 판단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돌아봐야 한다. 자기 삶, 자기 역사, 그 모든 것에 스스로 책임질 때, 그때 나와 우린 제대로 나와 우리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나와 우리의 삶이 그때야 온전히 내 삶이 되고 우리 역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