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칠의 더불어 있음의 철학
“고난의 역사는 고난의 말로 써라. 나는 이제야 비로소 역사적 현재의 쓴맛을 알았다. 가슴에 들어오는 보름달을 받아들이는 산속 호수 모양으로 나는 고난의 역사를 와 비치는 대로 반사하였다. 그러나 물이 달이 되지 못하듯이 나는 고난을 말하면서 오히려 참 고난의 뜻을 몰랐었다.”
함석헌, 『뜻으로 본 한국역사』, (서울: 한길사, 2002(선집 제1판 제16쇄)), 21쪽.
내 삶은 고난의 연속이다. 고난은 내 삶을 이루는 원자다. 정말이다. 이 말은 조금도 틀린 말이 아니다. 매시간 크고 작은 고난은 나를 흔들고 그로 인해 나는 쉼 없이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고 또 쓰러졌다. 내 삶은 바로 이런 쓰러짐과 일어남의 연속이기도 하다. ‘내 있음’의 힘, ‘내 생명’과 ‘내 생각’의 힘은 쓰러지고 일어나며 키워졌다. 결국 내 있음과 생명 그리고 생각은 그렇게 고난 가운데 생기고 자랐다. 내 참 본질은 바로 그렇게 진화되어 갔다.
고난 없는 삶, 그런 삶을 나는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굳이 말하라면, 그 삶은 노예의 삶이다. 처음부터 명령으로 움직이는 삶, 자기 생각이란 자기 존재의 다리 없이 그저 누군가의 명령으로 움직이는 속 편히 죽은 채 살아도 산 게 아닌 그런 죽은 채 사는 이들의 삶이다.
고난은 죽으라는 병이 아니다. 고난은 살라는 치열함이다. 그 치열함으로 나는 과거의 껍질에서 새로운 나로 쉼 없이 진화한다. 그 진화의 순간마다 나는 온 힘으로 싸워야 하고 궁리해야 하고 넘어져야 하고 일어나야 한다. 그 순간 어느 하나도 쉽지 않은 고난이지만, 그 고난은 나를 죽이지 않고 살린다. 진짜 나로 살린다. 진짜 나로 살리는 그 치열함, 그 온 힘 다한 치열함이 바로 나의 삶이고 내 고난이다.
진짜 내 철학은 바로 그 고난의 말로 채워져야 한다. 구체적 현실 속에서 온 힘 다해 싸운 그 치열함의 말로 채워져야 한다. 고상한 논리 속에 현실의 아픔을 어설프게 그린 개념으론 고난으로 만들어지고 진화되는 나의 삶에 뜻을 품은 철학을 일굴 수 없다. 나와 내 고난은 달과 그 달의 잔상을 잠시 품은 물의 관계가 아니다. 나는 내 고난이고 내 고난은 나 없이 없으며, 내 고난 없이 나도 없다. 그렇게 내 고난은 이미 나다. 그러니 내 고난을 찾아 다른 철학자의 철학을 찾을 필요 없고 그 철학에 기댄 답에 의지할 거 없다. 이 세상 어떤 철학도 참고서일 뿐, 내 고난을 가장 잘 아는 존재는 나뿐이다. 내가 바로 그 고난이니 말이다. 철학의 시작은 고난 속 자기 자신이다. 자기 고난 속에서 자기 철학은 자기 삶에 뜻으로 잉태되어 성장할 거다.
아무리 위대한 철학도 나의 고난을 나만큼 알지 못한다. 결국 내 고난이며 내 고난 가운데 생기고 자라는 나에게 이 세상 모든 철학은 참고서일 뿐, 결국 정답은 그 고난이 남이 아닌 나의 몫이다. 우리 철학도 우리 고난이 남이 아닌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