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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Jun 28. 2024

김명순의 시, '유언(遺言)'

유대칠의 시읽기

유언(遺言)

김명순  

   

조선아 내가 너를 영결(永訣)할 때

개천가에 고꾸라졌던지 들에 피 뽑았던지

죽은 시체에게라도 더 학대해다오.

그래도 부족하거든

이 다음에 나 같은 사람이 나더라도

할 수만 있는 대로 또 학대해보아라

그러면 서로 미워하는 우리는 영영 작별된다

이 사나운 곳아 사나운 곳아.     


유대칠의 어설픈 주관적 감상문     

조선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를 산 ‘김명순(金明淳 1896∼1951)’의 말이 참으로 강렬하다. 조선이 김명순을 영결하는 게 아니라, “내(김명순)가 너(조선)를 영결할 때”라니 얼마나 강렬한가. 김명순이 조선을 떠나보낸다는 말이니 말이다. 그 조선은 얼마나 그를 힘들게 한 것인지. “죽은 시체에게라도 더 학대해다오. 그래도 부족하거든 이 다음에 나 같은 사람이 나더라도 할 수만 있는 대로 또 학대해 보아라.” 자신의 시체마저 괴롭히고 그것도 부족하면 다시 태어나도 괴롭혀 보란 말, 그 강렬한 부정은 조선이 얼마나 그를 괴롭혔는지, 그 마음에 부정이 얼마나 강인한지 알 수 있다. 학대할 거면, 학대해 봐라! 나는 조금도 너에게 내어줄 것이 없다는 선포이고 울분이니 말이다. 세상과 이별할 때의 말, 유언(遺言), 김명순의 유언, 그 유언은 조선과의 이별, 자신을 향한 조선이란 틀 속 수많은 폭력을 향한 강인한 거부다.      


평양 갑부의 딸, 그러나 이 말로 김명순을 그릴 순 없다. 1915년 그는 당시 일본육사생도이며, 이후 ‘친일인명사전’에 그 이름을 올린 초대 육군참모총장 이응준에게 성폭행당한다. 1917년 단편 소설 「의심의 소녀」로 등단하며 자신의 길을 가지만, 성폭행당한 그를 향한 세간의 비난은 그의 길을 그냥 두지 않았다.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KAPF)의 실질적 지도자였지만 동시에 친일파이기도 한 시인 김기진(金基鎭, 1903~1985)은 김명순을 ‘부정한 혈액’이라며 조롱하였다. 방정환(方定煥, 1899~1931)은 그를 남편을 다섯이나 갈아치우고도 처녀 행세한다며 거짓에 근거한 조롱을 망설이지 않았다. 갑부의 딸이지만, 그의 어머니가 갑부의 첩, 그것도 기생 출신이란 점을 두고 ‘더럽고 음탕한 피’, ‘더러운 자궁’이라며 그의 조선은 그를 조롱했다. 순결하지 못한 이라며 개신교계 학교로부터 제적당하고, 이어 옮긴 가톨릭계 학교에서도 그의 혼을 향한 폭력은 멈추지 않자, 그는 결국 종교를 버린다. 그의 조선도 그의 종교도 그는 버린다. 버리며 치열하게 살았지만, 그의 마지막은 슬픔으로 가득했다. 결국 조선을 버리고 이국의 땅 일본에서 땅콩을 팔며 가난 속에 살다 길지 않은 삶을 마감한다. 조선, 그 조선을 가득 채운 여성을 규정하는 차가운 시선, 그 시선을 유지하고 당연한 것으로 믿은 남성의 폭력, 그리고 그 폭력이 일상인 조선, 그 조선에선 괴로움뿐이었던 김명순, 그의 시에게 그의 그 외로운 외침이 읽힌다. 마음이 아프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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