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삶, 유대칠의 철학사 강의
아리스토텔레스, 감각 인식을 긍정하다.
여러분, 우리가 무언가를 알게 되는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예를 들어, 여러분이 오늘 처음으로 어떤 새로운 개념을 배운다고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게 될까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질문에 대해 서로 완전히 다른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플라톤은 감각을 부정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감각을 긍정했습니다. 그리고 이 차이는 결국 “진짜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플라톤은 “진짜 나는 영혼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몸은 진짜 내가 아니라, 오히려 영혼이 갇혀 있는 감옥입니다. 그러니 감각으로 무언가를 인식한다는 것은 감옥 안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것과 같습니다. 현실 세계에서 우리가 감각을 통해 인식하는 것들은 결국 불완전한 것들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참된 진리를 찾을 수는 없다는 것이 플라톤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플라톤은 진리를 어떻게 찾을 수 있다고 보았을까요? 그가 제시한 것이 바로 ‘상기설(想起說)’입니다.
플라톤의 상기설에 따르면, 우리가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사실 ‘새롭게 아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던 것을 기억해내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영혼은 이 몸에 들어오기 전, 이미 참된 진리를 알고 있었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깨닫는 것은 그것을 떠올리는 과정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감각을 통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본래 알고 있던 것들을 다시 떠올리는 것이 ‘앎’의 본질이 됩니다.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인 플라톤과 달리 “진짜 나는 몸과 영혼이 결합한 실체”라고 보았습니다. 영혼만이 진짜 ‘나’가 아니라, 몸과 함께 존재하는 전체가 ‘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플라톤처럼 감각을 부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몸을 통해 이루어지는 감각 인식은 인식의 출발점이자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이성이 다루는 모든 것은 감각을 통해 들어온 것이다.” 즉, 감각을 통해 경험하지 않은 것은 이성이 사고할 수도 없습니다. “감각에 없으면, 이성에도 없다”라는 말이 바로 여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태어나서부터 아무런 감각 경험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눈으로 본 적도 없고, 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으며, 냄새를 맡거나, 맛을 보거나, 손으로 무언가를 만져본 적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과연 무언가를 ‘생각’할 수 있을까요?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에서 보면, 절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식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그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1. 감각 인식: 먼저 우리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면서 외부 세계를 접합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처음으로 사과를 본다고 합시다. 빨갛고 둥글고, 달콤한 냄새가 나며, 손으로 잡으면 매끈합니다.
2. 경험의 축적: 여러 번 사과를 보고, 만지고, 먹어보면서 사과에 대한 경험이 쌓입니다.
3. 이성이 추상화: 이제 우리의 이성은 여러 개의 개별적인 사과들을 보면서 “아, 이것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이 있구나!”라고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 공통된 개념을 ‘사과’라고 이름 붙입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점은, 이성이 다루는 모든 개념은 처음에 감각을 통해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과를 본 적이 없으면 ‘사과’라는 개념을 떠올릴 수 없고, 음악을 들어본 적이 없으면 ‘음악’이라는 개념을 사고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플라톤의 상기설은 왜 틀렸을까요? 아리스토텔레스의 편에서 보면, 사람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면, 감각을 통해 경험하는 과정이 전혀 필요 없다는 말이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실제로 감각을 통해 배우고, 경험을 통해 성장합니다. 만약 플라톤의 말대로라면, 갓 태어난 아기들도 이미 모든 진리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아기들은 감각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점점 더 많은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플라톤의 상기설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보았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식 이론을 좀 더 쉽게 이해해 볼까요?
예를 들어, 여러분이 수학을 배우는 과정을 생각해 봅시다. 플라톤은 “너희는 이미 수학적 진리를 알고 있어. 단지 기억해내지 못할 뿐이야.”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아니야, 너희는 수학을 처음부터 배우는 거야. 먼저 감각적으로 경험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논리를 쌓아가면서 이해하는 거지.”
또 다른 예로, 어떤 아이가 불을 처음 봤다고 해봅시다. 플라톤의 입장에서는 “그 아이는 원래 불이 뜨겁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기억해내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할 것입니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아이는 불을 직접 만져본 경험을 통해 ‘불은 뜨겁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라고 설명할 것입니다.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식을 실제 경험과 감각을 바탕으로 설명하려 했습니다. 플라톤처럼 신비로운 상기설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죠. 감각을 부정하면 우리가 현실을 이해하는 과정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식 이론의 차이는 진짜 ‘나’가 무엇인가에 대한 차이에서 출발합니다. 플라톤은 “나는 영혼이다.”라고 보았기에, 감각적 경험은 의미가 없고, 이미 알고 있던 것을 기억해내는 것이 인식이라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나는 몸과 영혼이 결합한 실체다.”라고 보았기에, 감각적 경험을 중요하게 여겼고, 감각을 통해 이성이 학습하고 추상화하는 과정을 인식의 핵심으로 보았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생각이 더 맞다고 보나요? 우리의 인식은 정말 이미 알고 있던 것을 기억하는 과정일까요, 아니면 감각을 통해 세상을 배우는 과정일까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차이를 이해하면,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배움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대칠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