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유대칠 2021 03 04
친구는 말이 없었다. 고등학생이라고 하기엔 매우 긴 머리였지만, 사실 수많은 놀림 속에 학교를 마치지 못한 상황이었다. 학생이 아닌 그저 청소년이었다. 그 역시 아는 이가 많지 않았다.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 친구는 그저 말없이 종종 약간의 미소를 보일 뿐이었다. 친구의 부모들은 제법 유명했다. 심하게 다투었고 둘 다 집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친구도 친구의 동생도 집을 집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들어가지 않아도 그만이었다. 집엔 대부분 아무도 없었고 있다 해도 다툼의 자리일 뿐이었다.
어른들은 그 친구와 놀리 마라 했다. 나의 어머니만이 거의 유일하게 그 친구를 안타깝게 보았다. 교회 전도사도 목사도 그와 놀지 마라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불량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친구는 그저 말없이 조용히 긴 머리를 하고 앉아있을 뿐이었다. 누구를 때린 것도 아니고 누구의 돈을 앗아간 것도 아니었다. 욕을 하며 다닌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마을에서도 교회에서도 그 친구는 나쁜 친구가 되어 가고 있었다. 정말 점점 아이들은 그와 거리를 두었다.
고등학생이 된 이후 나 역시 야간 자율 학습으로 친구를 보기 힘들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대학생이 된 나는 친구가 범죄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폭력이 심하게 일어난 모양이었다. 결국 말없이 약간의 미소를 보이던 친구는 독한 얼굴에 제법 독한 말을 토해내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오랜만에 내가 본 친구는 과거의 친구가 아니었다. 그렇게 강해 보이는 친구의 주변엔 과거와 다른 많은 아이들이 모였다. 다른 어느 도시에서 여자 아이와 동거를 하고 있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20대에 접어들어 더욱더 힘겨워지는 세상에 친구는 슬프게도 범죄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수년이 지나 우연히 길을 걷다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어느 공장에서 일을 한다 했다. 다행스러웠다. 그리고 다시 독한 모습이 아닌 작은 미소에 긴 머리를 하고 있었다. 오토바이 대신 흔히 여성용 자전거라는 자전거의 앞 주머니에 무엇인가를 가득히 담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휴대폰이 이제 막 흔하던 시대였다. 그는 휴대폰이 없고 나도 휴대폰이 없었다. 나의 삐삐 번호를 전했지만 나는 곧 휴대폰을 개통하였고 삐삐를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친구의 집은 흔적도 없이 재개발이 되었다. 이젠 누구도 친구의 소식을 모른다. 전하고 전하고 전해진 소식엔 어딘가 공장에서 일한다는 이야기도 있고 아프다는 이야기도 있고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느 것이 사실인지 알 수 없다. 단지 그 친구를 생각하면 그 친구를 그리도 힘들게 하던 시선들이 생각난다.
하나도 불량하지 않던 긴 머리에 약간의 미소를 가진 친구를 정말 힘들게 한 것은 누구였을까? 교회에 오지 말기 바라던 전도사일까, 저런 아이와는 놀지 마라 하던 어른들이었을까? 교회에서도 마을에서도 이방인으로만 있던 친구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할까... 마지막으로 본지 이젠 20년이 넘어간다.
2021 03 04
유대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