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구(惡口)
아픈 말이 있다. 듣고 있으면 참 마음이 아파진다. 그런데 막상 그 말을 하는 이는 그것이 얼마나 나쁜 짓인지 모를 때가 있다. 참 슬픈 일이다. 자신이 지금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기에 그는 또 다른 이에게 또 다른 아픈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것이다. 막을 수가 없다. 그 말을 듣고 있으면 그냥 마음이 아프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아파서 화를 내게 된다. 그렇게 듣는 이도 독한 말을 한단 말이다. 남의 아픈 말에 아프니 자신도 독하게 아픈 말을 해 버리는 것이다.
‘악구(惡口)’라는 말이 있다. ‘추악어(麤惡語)’ 또는 ‘조악어(粗惡語)’라고도 한다. 불가(佛家)에선 남을 괴롭게 하는 나쁜 말 혹은 남을 화나게 하는 나쁜 말을 이렇게 부른다. 악구, 쉽게 생각하면 ‘나쁜 입’이다. 그 입은 남을 아프게 하고 또 아파서 화나게 한다. 화로 해결되는 것도 없는데 화나게 한다. 생각보다 우리 일상엔 그런 말이 많다. 조롱(嘲弄)의 언어들이 그러하다. 남을 아프게 하고 남을 화나게 한다. 시험에 떨어진 이에게 공부도 못하는 놈이라고 욕을 한다면, 아프게 하는 말이고 화나게 하는 말이다. 그런데 굳이 그렇게 ‘나쁜 말’을 왜 하는 것일까? 왜 스스로 ‘나쁜 입’이 되는 것일까?
아집으로 살아가는 가진 자들은 자신보다 약한 이들을 조롱하는 맛을 즐긴다. 아주 못된 짓이다. 자신으로 인하여 아파하고 화내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성공을 확인한다. 참 못된 성공이다. 그런데 우리의 행복이란 것이 이런 못된 성공과 무관하지 않을 때가 많다. 많은 이들이 공부하는 이유도 남을 이기기 위해서다. 남을 이겨 더 많은 것을 누리고,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공부한다. 그래서인지 부자 부모의 엄청난 지원 속에 좋은 대학교 들어가 사회의 지도층이 되었다는 이들 가운데 참 실망스럽게도 자기 자신만 생각하며 살아가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본다. 사회에 못된 짓은 참 잘한다. 부끄러움을 느끼지도 못하니 말이다. 아집(我執)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부끄러움은 없다. 필요하다면 또 다른 무엇을 얻을 욕심에 사과(謝過) 비슷한 말을 할 수 있지만, 마음 깊이 부끄러워하지는 않는다.
가난한 사람은 배운 것이 없어 ‘자유(自由)’와 ‘주체성(主體性)’을 모른다는 말, 참 나쁜 말이다. 아프게 하고 화나게 한다. 지방의 사립대를 무시하며 하는 ‘지잡대’라는 말, 참 나쁜 말이다. 아프게 하고 화나게 한다. 인터넷 공간에 차고 넘치는 것이 사실 그런 말이다. 조롱의 언어가 일상이 되어간 현실이 참 아프다. 철학(哲學)이니 신학(神學)이니 공부한 이의 언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과 다르면 조롱하고 무시한다. 그 조롱과 무시에서 자신의 정체성(正體性)을 확인한다면, 그 정체성은 참 못된 정체성이다. 아집 가득한 참 독한 정체성이다. ‘나’ 아닌 ‘너’를 부정하고 확인하는 ‘나’라니 참 못된 정체성이다.
‘악구’의 세상이다. 남을 아프게 하면서 자신의 성공과 정체성을 확인하는 세상, 참 무서운 세상이다. 영혼을 향한 주먹질이 ‘악구’다. 그 주먹질이 일상이 된 세상, 정말 참 슬픈 세상이다. ‘나’라도 내 말의 주먹에 준 힘을 조금은 빼야겠다. 어쩌면 그것이 더불어 삶의 시작이며, 아집에서 벗어나는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2021년 12월 30일
유대칠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