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언(妄言)

by 유대칠 자까

망언(妄言)

생각처럼 되는 일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본래 세상은 생각처럼 되지도 않고 생각처럼 있지도 않습니다. 생각처럼 모든 일이 이루어지고 생각처럼 모든 것이 있다면, 그는 유일신(唯一神)과 같은 존재겠지요. 어떤 막힘도 없이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으로 있고 사람으로 살아가는 이상, 그런 일은 없습니다. 참 세상은 내 생각밖에 있고 나는 내 생각 안에 살아갈 뿐이며, 내 생각 밖 세상은 내 생각 안 내 의지처럼 있진 않습니다. 그러니 조심해야 합니다. 이 세상은 내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내 생각 속 세상이 이 세상의 참된 이치라고 말해 버리게 되니 말입니다. 자칫 있지도 있어서도 안 될 나의 아집을 참된 이치라고 말해 버리게 되니 말입니다.

신이 사람에게 계시를 내린다면, 그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알아들을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알아들을 수 있게 내릴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내린 것이 신 그 자체의 영원한 진리가 되지 못하겠지요. 사람이란 존재가 있는 그대로의 신을 그대로 받아들일 만큼 거대한 존재, 신마저도 품을 신보다 더 큰 존재는 아니니 말입니다. 그 약한 존재에게 그 약한 존재의 편에서 그의 언어로 그의 환경에 맞게 신은 자신의 작은 마음을 내보여 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분명 있는 그대로의 신 그 자체는 아니겠지요. 그런데 신이 과거 어느 날 어느 환경에 보여준 그것을 본 과거 누군가가 자신이 본 것만이 영원하고 참된 신 그 자체라고 고집부린다면, 어쩌면 그는 자신이 신 그 자체가 되어 버리고 싶은 것인지 모릅니다. 아니 신을 넘어선 무엇이 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참 살아있는 신은 그의 언어 속에 구속되어 있지 않음에도 그의 언어 속에서 구속한 신만을 신이라 믿으라 강요하면서 말입니다. 다른 언어 다른 환경 속에서 신을 마주한 이들의 신을 조롱하면서 말이죠.

‘망언(妄言)’은 실제로 있지 않은 것을 두고서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정언(正言)’, 있는 그대로 있다 하는 것과 다른 것이죠. 사실 우린 있는 그대로를 말할 수 없습니다. 저기 저 나무 한 그루를 그냥 나무라고 말한다고 있는 그대로의 나무일까요. 그 나무에 둥지를 짓고 살아가는 새에게 나무라는 존재는 우리와 다를 것입니다. 그 나무의 과일을 먹는 산짐승에게도 나무라는 존재는 우리와 다를 것입니다. 나무를 팔아먹고 사는 사람에게 나무는 또 다른 존재겠지요.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 하지만 그렇게 살기는 참 힘듭니다. 부동산업자에게 산은 산이 아닌 투자할 그 무엇일지 모릅니다. 내 생각은 돈으로 세상을 보는데 내 생각 밖 세상은 그렇게 있지 않습니다. 내 생각엔 나의 의지와 욕심으로 만들어진 신이 참된 신인데, 내 생각 밖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린 내 생각 속에 구속되어 실제로 그리 있지도 않은 것을 있다고 말하며 ‘망언의 삶’을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사실 사람의 눈엔 추악하고 더러운 무엇도 우주의 몸짓에선 그저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하나의 몸짓 일지 모릅니다. 우리의 차가운 조롱이 당연한 그 무엇이 아니란 말이죠. 그러나 우린 내 생각이란 틀 속에 구속되어 큰 고민 없이 망언의 삶을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정언은 우리가 이루기 위해 애쓸 무엇이라면 망언은 우리가 머물지 않기 위해 돌아보고 또 돌아보아야 할 무엇입니다. 우린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알 수 없다는 것,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러면 말도 조심하겠지요.

2021년 12월 31일

유대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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