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사(開士)
선생다운 선생을 만나는 것은 정말로 큰 복입니다. 9살 때 일입니다. 반 아이들이 시끄럽다며 선생은 짝과 서로 마주 보고 서서 서로의 뺌을 때리라 했습니다. 참 나쁜 선생이죠.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11살 때 일입니다. 샤프 도난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아이들은 저를 의심했습니다. 마침 교회에서 받은 샤프가 그 샤프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참 억울했습니다. 저는 도둑질하지 않았습니다. 선생 역시 아이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모든 일이 친구의 실수로 마무리되었지만, 누구도 저에게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12살 때 일입니다. 그때 선생이란 이는 수업 중임에도 저에게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돈을 주며 박카스 심부름을 보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모두 수업할 때 저는 박카스를 사기 위해 학교 밖 약국에 가야 했습니다.
친구의 어머니는 무당(巫堂)이었습니다. 그 사실이 그 친구와 저의 사이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성당 다닌다며 자신의 신앙심을 자랑하던 선생은 공개적으로 그 친구의 어머니는 무당이라 했습니다. 교회를 다니고 성당을 다니던 이들 사이 제법 독한 조롱의 이야기들이 오간 모양이었습니다. 아직 어린아이들에게 무당이란 직업은 그리 친근하지도 않았고 긍정적이지도 않은 모양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에게 그날,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를 공개적으로 조롱한 그 선생은 큰 아픔이었습니다. 지금도 전 그 선생에게 무엇을 배웠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조롱의 말들은 너무나 선명히 남아 있습니다. 한 친구는 성적이 떨어지자 자기 자신은 공부를 잘하지 못한 선배라며 자신과 같은 선배가 되지 말라는 글을 적은 도화지를 들고 저학년 교실을 돌게 한 선생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선생에겐 장난이나 교육 방법의 일부겠지만 그 친구에게는 30년이 더 지나도 지워지지 않은 상처입니다.
선생, 정말 선생은 어떤 존재일까요? 수업 중인 학생에게 함부로 심부름을 시킬 수 있는 존재가 선생일까요?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모멸감을 주어도 좋은 존재일까요? 어쩌면 독재(獨裁)의 세상, 그는 교실이란 세상 속 독재자였습니다. 선생에게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그저 지식(知識)만은 아닙니다. 그 지식과 관련된 책을 보거나 관련 인터넷 동영상 강의의 도움으로 지식을 구하려면 구할 수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말입니다. 그러나 우린 여전히 ‘선생’을 만나고자 합니다. ‘선생’은 단순히 그러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개사(開士)’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보디사트바(bodhisattva), 흔히 보살(菩薩)이란 한자어로 부르는 산스크리트어 단어의 의역된 한자어입니다. 개사는 글자 그대로만 보면 ‘여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도대체 무엇을 연다는 말일까요? 부처가 될 수 있는 바른 길, 즉 ‘정도(定道)’를 연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바른 길’을 열어 자신의 제자가 그 길로 부처가 될 수 있게 하는 사람, 바로 그런 사람이 바로 개사입니다. 부처는 똑똑한 사람이 아닙니다. 깨우친 사람, 눈을 뜬 사람, 그런 의미에서 부처는 너무나도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개사는 제자를 지혜로운 사람이 되게 하는 길을 여는 사람입니다. 참 좋은 말 같습니다. 진짜 선생, 우리가 기다리는 선생은 어쩌면 바로 그러한 선생일 것입니다. ‘바른 길’을 열어 생긴 그 길을 열심히 나아가 지혜를 이루도록 돕고 응원하는 사람, 정말 진짜 선생은 바로 그런 사람 같습니다.
2022년 1월 1일
유대칠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