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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Jan 02. 2022

기어(綺語)

기어(綺語     

귀에 단 이야기가 있습니다. 듣고자 하는 이야기죠. 자신의 욕망을 긍정하는 이야기는 들으면 들을수록 참 좋습니다. 무엇인가 불안하던 욕망이 마침내 벗을 만난 느낌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그 이야기는 사실 ‘독(毒)’입니다. 자신을 죽이고 자기 자신을 독으로 만드는 진짜 무서운 독입니다. 아집(我執)으로 단단해진 자신을 더욱 단단한 아집에 가두는 '독'일뿐입니다. 그런 달콤한 이야기는 이기고 살라 합니다. 지지 말라합니다. 참 달지요. 누가 지고 살고 싶겠습니까. 그렇게 이기고 살기 위해 싸우며 삽니다. 그런데 누구나 다 이기는 사람이 되진 않습니다. 그러면 아프지 말라 합니다. 자연에서 쉬라 합니다. 그러다 또 이기며 살라 합니다. 지지 말라합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더 단단한 아집이란 감옥으로 들어갑니다. 한번 찰나(刹那)의 삶을 살다 가는 것이 ‘우리’의 운명입니다. 무엇을 가지려 해도 무엇도 가질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운명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의 참모습입니다. 그런데 무엇인가 더 가지기 위해 자기 자신마저 개발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입니다. 기억하세요. 자기 자신은 개발의 대상이 아닌 삶의 주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런데 달콤한 이야기는 그만 이 사실을 잊게 만듭니다. 아집, 그 욕심으로 아픈 우리는 그 달콤한 이야기로 더 아파집니다. 더 깊게 아파집니다. 그래서 귀에 달콤한 이야기는 결국 독이란 말입니다.     

‘기어(綺語)’라는 말이 있습니다. 비단결과 같이 발라 붇는 말입니다. 너무나 귀에 달콤한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 조금만 거리를 두고 생각하면 아무 뜻도 없고 득이 될 것도 없는 말입니다. 경우에 따라선 누군가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 사용되기에 막상 나에겐 아무 쓸모도 없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쓸모없는 말이 이런저런 포장으로 지혜의 말이 되어 있는 것이 요즘의 모습입니다. 참 서글픈 기어의 세상입니다.      

죽어서 천국 갈 것이라는 달콤한 말에 이 현실의 부조리와 아파하는 이의 눈물에 그만 눈을 감고 오직 죽어갈 세상을 바라보며 삽니다. 그 아집에 나쁜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죠. 기어에 속아 아집에서 벗어나지 못해 자기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독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돈과 권력으로 강한 사람이 되면 행복해질 것이라며 우리 자신의 욕망에 단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게 돈과 권력을 향하여 달려가다 어느 순간 돈과 권력만이 자신의 벗이지 누구에게도 참된 벗이 아닌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치입니다. 모두를 돈과 권력을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이에게 누가 참된 벗으로 다가갈까요. 그렇게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욕망에 단 이야기가 자신을 무너뜨린 것이지요.      

기어의 세상, 자기 욕망에 단 이야기만을 들으려는 세상, 결국 자기 아집 속에서 자신은 자신에게도 그리고 그가 살아가는 세상에도 독이 되는 존재가 되어 버릴 것입니다. 참 무섭지요. 기어는 ‘자기 자신에게도’ 독이고 ‘자기 자신도’ 독으로 만들어 버리니 말입니다. 그러니 자기 욕망에 단 이야기에 조심하세요. 그 이야기는 독입니다. 기어는 독입니다.     

2022년 1월 2일

유대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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