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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Jan 04. 2022

정정(正定)

정정(正定)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일까요? 우린 산을 산으로 보지 못합니다. 오늘도 뉴스엔 부동산 이야기가 빠지지 않습니다. 땅이 돈인 세상입니다. 산도 돈입니다. 생수 회사의 편에서 생각하면 물도 돈입니다. 땅도 물도 다 돈입니다. 요즘 청정 공기를 캔에 담아 팝니다. 공부하다 머리가 멍해지면 종종 사용합니다. 그러고 보면 공기도 돈입니다. 서울로 강의 가는 길, 전봇대에 붙은 광고지엔 결혼도 투자(投資)라고 합니다. 그러면 결혼도 결국 돈이네요. 우린 산을 보지만 돈을 보고 물을 보지면 돈을 봅니다. 결혼을 위해 누군가를 만나러 가지만 사실 돈을 만나러 갑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누군가는 나도 돈으로 볼지 모릅니다. 나는 나로 보지 못하고 나를 돈으로 보는 것이죠. 그런 사람과 아무리 오랜 시간 나와 사귀어도 그는 나를 만나지 못합니다. 나보다 돈을 만나겠지요.     

종교도 철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싯다르타는 욕심을 버리라 했는데 다들 욕심을 한가득 가지고 불상 앞에서 절을 합니다. 자기 욕심을 들어달라면서 말입니다. 예수도 욕심을 버리고 이웃 사랑하자 했는데 참으로 화려한 옷을 입고 가난한 이들이 도달할 수 없는 높은 곳에 앉아서 가난한 사람을 도우라 설교하고 강론합니다. 참 이상하죠. 그러니 그런 말을 들은 이들은 그 말을 귀에는 담지만, 삶에는 담지 못합니다. 강론하고 설교하는 이들도 그렇게 살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저 한 번씩 가난한 이들을 보며 눈물 한 번씩 보이면 그것으로 그만입니다. 종교도 결국 크고 화려해지길 합니다. 그들이 믿는 신은 그러한 것을 좋아하나 봅니다. 그리니 신을 향하여 돈으로 다가가려 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돈이 모든 것의 보이지 않는 이유가 됩니다. 신이 되어 버립니다. 철학도 마찬가지입니다. 길을 걷다 벗을 만나 삶에 대하여 진지하게 궁리하며 더불어 답을 만들던 소크라테스와 같은 철학자는 이제 없습니다. 철학도 연구비를 받기 위해 합니다. 연구비를 많이 받고 책을 많이 팔면 그것이 좋은 철학자인 그런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결국 철학도 돈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정정(正定)’이란 말이 있습니다. 번뇌(煩惱)로 어지러운 생각, 그 생각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도 모두 어지럽습니다. 자기 마음이 어지러운데 어찌 자기 마음을 통해 보는 세상이 어지럽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올바른 마음으로 올바르게 세상을 보면 다릅니다. 어지럽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보게 됩니다. 있는 그대로 산을 보고 또 물을 보게 됩니다. 돈에 가려진 산과 물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산과 물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다투지 않습니다. 산을 돈으로 보는 이들은 더 벌려고 다툽니다. 친구든 가족이든 각자의 욕심 앞에 모두는 믿을 수 없는 적입니다. 그러니 다툽니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를 보면 산은 돈이 그냥 산입니다. 그리 보면 그의 삶도 달라집니다. 너무나 당연히 말입니다.      

2022년 1월 4일

유대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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