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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Jan 05. 2022

여여(如如)

여여(如如)     


김국환이란 가수의 ‘타타타’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런데 ‘타타타’라는 이 말은 사실 불교의 고전어인 산스크리트어 단어입니다. 산스크리트어의 글로 쓰면 तथाता(tathātā)입니다. 이 노래는 사실 매우 불교스럽지요. 그렇다고 종교성을 가진 노래란 것이 아니라, 불교가 생각하는 우리 모두에게 지혜가 될 만한 이야기를 담은 노래란 뜻입니다. 노래 가사처럼 죽으면 옷 한 벌 가져가지 못하는 것이 우리 현실입니다. 어쩌면 절대 부인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린 죽고 죽으면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있는 그대로는 이렇게 완전한 가난입니다. 굳이 이야기하면 가난보다 더 심하게 우린 이 우주에 빚을 지고 태어났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이 몸, 이 몸도 나의 것이 아니라, 많은 식물과 동물이 죽어 그 죽은 존재의 기운을 받아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요. 그러니 우린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존재이면서 앞서 존재하는 혹은 더불어 존재하는 많은 인연에 빚을 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 존재가 가진 원죄(原罪)란 것 혹은 업(業)이란 것은 바로 이러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태어나 있는 것만으로 우린 많은 생명의 죽음으로 살아가니 말입니다. 그런 우리가 더 욕심을 내니 지구 전체가 아픈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어쩌면 지금 문제가 되는 환경문제란 것도 바로 이런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원래 빚으로 있으며 미안해해야 하고 고마워해야 하는데 더 욕심을 내니 난리가 난 것이죠.      

‘여여(如如)’라는 말이 있습니다. 산스크리트어 ‘타타타’의 한자어 번역어입니다. 이 말은 있는 그대로의 세상, 즉 만물의 본질을 뜻합니다. ‘여여’는 ‘진여(眞如)’라고도 합니다. 이 역시 ‘있는 그대로의 것’ 혹은 ‘꼭 그러한 것’이란 말입니다. 한마디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이란 뜻이죠. 아집(我執)으로 힘들고 서로 다투고 지고 이기는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장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은 어쩌면 ‘여여’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말입니다. 우린 죽습니다.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무엇이 되어 살아도 죽어서는 그 무엇도 아닌 그저 다 흩어져 버리는 먼지일 뿐입니다. 그것이 우리 자신의 가장 분명한 진실입니다. 바로 이것을 알게 되면, 그 앎이 우리 삶이 되면, 이 세상 가득한 다툼이란 것이 참 아쉽습니다. 결국 사라지고 결국 가지지 못하는데 말입니다.      

‘무소유’는 우리에게 선택이 아닌 운명이란 사실 그것이 우리 자신에 대한 결코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진실이란 것을 기억하고 또 그렇게 살아야겠습니다. 그러면 참 자유로워질 수 있을 듯합니다. 참 편하게 살 수 있을 듯합니다. 우리에게 ‘참 자유’, ‘산 자유’를 주는 가장 소중한 그러나 아집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애써 고개 돌리는 바로 그 ‘진리’, 그 ‘진여’, 그 ‘여여’는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냥 우린 아무것도 아니란 사실입니다. 꼭 기억하고 그리 살아야겠습니다. 난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2022년 1월 5일

유대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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