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그냥

철학의 쓸모 - 남 탓

2020 09 28

by 유대칠 자까

다가가 더불어 살아가는 더불어 삶을 배운 적이 없다. 항상 싸우고 이기며 더 많은 것을 누리는 것을 익혔을 뿐이다. 학교도 결국 그것을 배웠다. 더 높은 등수가 되기 위해 다투는 공간이었다. 그렇게 배우고 그렇게 살았다. 그러니 더불어 있다는 것은 힘들었다. 곁에 있다는 것은 다투어야 할 사람이 있다는 것 정도로 알고 살았다. 그렇게 배웠다. 사실 다가가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하지만 다가가야 함을 알았다. 홀로 살 순 없으니 말이다. 나는 항상 우리 가운데 온전한 나로 있음을 아니 말이다. 내 웃음과 울음 그리고 희망과 절망의 자리는 그 더불어 있음의 자리다. 한마디로 살아있는 나의 자리는 싫든 좋든 더불어 사는 우리 가운데 있다. 그런데 더불어 있기는 힘들다. 배운 적이 없다.


어찌하나... 어찌하나...


남 탓이 편했다. 나에게 이것을 해주지 않으니 나도 해주지 않는 거다. 내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쁜 것이다. 다가갈 필요 없다. 그들이 나에게 해주지 않아서 내가 힘든 것이다. 내가 잘못한 것은 없다. 모두 다 저들의 탓이다. 다 남 탓이다.


나는 홀로 있게 되었다. 홀로 울고 홀로 웃으며 말이다. 더불어 있기 위해 다가가지도 못하고 남 탓하며 홀로 말이다.


다가가지 않으면 다가오지 않는다. 나의 애씀 만큼 단단해지는 것이 우리 됨이란 더불어 있음이다. 흙 한알이 땅을 이루지 못한다. 더불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단단한 생명의 어머니인 대지가 된다. 더불어 다가가 땅을 이루어야 한다. 나들로 우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더불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저 이루어지지 않는다. 애써야 한다.


더불어 있음은 내 행위로 이루어져 가는 결실이며 동시에 행위 그 자체다. 다가가 함께 함으로 이루어져 가며 그 결실로 더불어 있음은 더욱 단단해진다.


더불어 있음의 품은 누군가 선물로 주는 것이 아니라 애씀과 행위로 스스로 다져가는 것이다. 남 탓으로 책임을 피하지 말자. 그 피함으로 남겨진 것은 그저 홀로 있음이다.


유대칠

2020 0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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