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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Jan 12. 2022

혼침(惛沈)

혼침(惛沈)     

세상은 점점 편해진다는데 이상하게 마음의 짐은 점점 더 무거워진다. 사실 과거에 비해 정말 편해졌다. 굳이 시장이나 가게 갈 것 없이 손에 든 스마트폰으로 물건을 살 수 있다. 저 멀리 남의 나라 책도 손에 든 스마트폰이 살 수 있다. 참 편하다. 굳이 은행을 걸어가지 않아도 어디서든 은행 일을 볼 수 있다. 진짜 너무나 편하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다. 영상 통화는 기본이고 지구 곳곳에 흩어진 이들이 인터넷으로 한자리에 모여 회의를 할 수 있다. 언제 어디서든 원하기만 하면 각기 다른 곳에 있다 해도 가상의 공간 속에서 만나 회의를 할 수 있단 말이다. 정말 참 편하다. 진짜 너무나 편하다.      

그런데 마음의 짐은 가볍지 않다. 오히려 더 무거워진 느낌이다. 왜일까?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모두가 더 편해진 수단으로 더 빠르게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달려가는 세상, 저마다 1등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세상, 한 명이라도 더 이기기 위해 노력하는 지금이 힘들어 무거울 수도 있다. 또, 우리의 편함을 위해 더 힘들고 더 아픈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있어 그럴 수도 있다. 더 편한 우리의 소비를 위해 많은 택배 노동자들이 죽었다. 더 편하고 더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따라가지 못한 많은 상점은 문을 닫았다. 그리고 사람을 대신할 기계들이 발달하면서 누군가는 더 편하게 돈을 벌게 되었지만, 더 많은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다. 더 편해진 세상은 이렇게 더 많은 이들의 아픔과 희생으로 유지되고 있다.      

‘혼침(惛沈)’이란 말이 있다. 몸과 마음을 무겁게 하고 침울하게 하며 무기력하게 하는 마음의 작용이다. 그냥 가만히 있다가 혼자서 아무 이유 없이 혼침으로 힘들어하진 않는다. 어쩌면 아집 가득한 이 세상이 우리를 혼침에 빠져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노력보다 더 중요한 배경, 누구의 자식이고 어느 대학을 나왔는가가 노력보다 중요한 세상, 결국 가지지 못한 이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힘겹기만 한 세상, 바로 이 세상이 우리를 혼침으로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죽으라 노력해서 번 시급(時給)으로, 죽으라 애쓴 그 월급(月給)으로 미래를 준비하기는커녕 지금 당장 살아가기도 힘든 이 세상이 우리를 침울하고 무기력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죽으라 노력해도 결국 누군가의 더 편한 세상을 위해 쓰이다 버려지는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니 가난하고 힘없는 이에게 혼침의 힘겨움은 그냥 일상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혼침의 힘겨움에서 홀로 벗어나 힘내라는 말, 참 잔인하다. 어찌 홀로 벗어나겠는가. 홀로 벗어날 수 없어 그리된 것을 말이다. 오늘도 이 짐이 참 힘겹기만 하다.      

2022년 1월 12일

유대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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