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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대칠 자까 Jan 13. 2022

그때가 되면 스스로 그때의 일을 하는 사람

유지승의 금강 마하 반야 바라밀경 (金剛摩訶般若波羅蜜經) 읽기

고교 시절입니다. 아마 2학년 마지막을 보낼 무렵입니다. 버스 정류장에 있던 서점에서 우연히 만난 책이 바로 <금강경>입니다. 정확히는 <금강 마하반야 바라밀경>이죠. 그리고 어쩌면 제가 철학과에 들어가는데 이 책은 제법 큰 기여를 합니다. 고생의 길을 시작하는 그 첫 시작에 나름 역할을 한 책입니다. 그러나 후회는 없습니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도 이 책을 읽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여간 그렇게 20년도 더 지나... 곧 있으면 30년 전의 일이 되는 그날의 그 마음으로 돌아가 다시 읽어봅니다. 대학 시절 정리하고 나름 우둔하지만 깨우친 것을 기반으로 적어가 봅니다. 저는 불자가 아닙니다. 불교학 전문가도 아닙니다. 그러니 불가의 전문성으로 저의 글을 싸우기 위해 읽지는 마세요. 불교의 내용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고 그저 제가 들은 저의 생각 속 스승의 이야기라고 해 두겠습니다.


2022년 1월 13일

유지승 씀   


1. 法會因由分 

如是我聞 一時. 佛 在舍衛國 祇樹給孤獨園 與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俱

여시아문 일시 불 재사위국 기수급고독원 여대비구중천이백오십인구

爾時 世尊 食時 着衣持鉢 入舍 衛大城 乞食於其城中 次第乞已 還至本處

이시 세존 식시 착의지발 입사위대성 걸식어기성중 차제걸이 환지본처

飯食訖 收衣鉢 洗足已 敷座而坐 

반사흘 수의발 세족이 부좌이좌.


1. 법회가 열린 인연

저는 이처럼 들었습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구습고독원에서 천이백오십 명의 큰 비구대중과 더불어 계셨습니다. 그날도 세존께서 공양의 시간이 되자 가사를 차려입으시고 발우를 들고 사위국의 큰 성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성안에서 공양을 받으러 차례로 다니시며 공양을 받으시고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식사를 마치시고, 가사와 발우를 거두고 발을 씻으신 후 자리를 펴고 앉으셨습니다. 


풀이: 제자는 스승의 날은 이렇게 기억하고 있답니다. 제자는 우선 스승께서 그날 많은 이들에게 말씀을 하시기 전 모습을 기억해 내고 있습니다. 눈앞에 스승 싯다르타가 어찌하였는지 그려지는 듯합니다. 스스로 존엄의 자리라며 받들라 명령하지 않고 시간이 되어 스스로 그때에 할 일을 스스로 합니다. 때가 되어, 할 일을 그저 스스로 한다는 것, 그것은 참 대단한 일입니다. 왜냐고요. 그렇지 않은 이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스승이라면서 제자에게 군림하려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사실 싯다르타가 그리는 세상은 위계의 세상이 아닙니다. 사실 불교는 성직자와 수도자 그리고 불자로 나누어진 그러한 종교가 아닙니다. 모두가 수도자, 즉 수행자입니다. 출가 수도자가 있고 그렇지 않은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수행자가 있을 뿐입니다. 불교의 역사에 깊은 족적을 남긴 유마거사는 출가수행자가 아닙니다. 재가 수행자입니다. 그는 전문적으로 출가하여 수도원이니 절이니 찾아 들어가 깨우친 이가 아니란 말입니다. 그러나 그도 대단한 깨우침을 이룬 인물입니다. 수행자뿐인 종교, 모두가 평등한 종교, 바로 그것이 불교입니다. 제자의 기억 속 스승 싯다르타는 때가 되면 스스로 그때에 할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많은 이들이 싯다르타의 지혜를 듣기 위해 모여 있다 해도 그는 자신을 위대하다거나 자신을 높이지 않은 것입니다. 그냥 때가 되면 그때의 일을 하는 누구나 와 같은 그런 존재인 것이죠. 그렇게 싯다르타는 공양을 하고 자리에 앉아 자신의 지혜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을 마주합니다. 


2022년 1월 13일

유지승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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